이 물음에 이명박,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 양정례 친박연대 의원은 답을 해주길 바랍니다. 남대문도 국민들이 돈 걷어서 다시 지었으면 한다는데 그럼 남대문은 공공인가요 민영인가요? 세금으로 지분 꾸린 공기업을 기업에 팔고 다시 기업에서 발행하는 주식을 국민들이 사주면 어떻겠냐고 하는 어떤 정신 나간 분께, 그럼 그 기업은 원래 누구 건가요? 이거 잘 생각해보면 내집 사고 월세내는 격 아닌가요?

국민들이 '집집마다' 금붙이며 달러를 숨겨 놓고 내놓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 몰상식한 의원 두 분께, 질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를 국민의 달러 돈으로 되사주면 국가는 공공인가요? 민영인가요? 그래도 공공인가요? 우리가 왜 공공인가요? 사적 이익을 위해 달러 돈 들여 국가를 산 건데. 그래서 민영이라면 그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시키면 되고 경쟁에서 도태되면 미련없이 버리면 되는 것 아닌 감요? 중국펀드에 월급쟁이 종자돈 다 날린 제 투자 감각으로 봤을 때 당신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 희망 없거든요, 근데 왜 투자를 해야 합니까? 이거 이거 묻지마 투자 조장하는 것 아닙니까? 아하 그렇군요, 국민이 되사준 국가의 투자 약관에도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겠군요.

'본 국가는 운영실적에 따라 이익 또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그 결과는 국민에게 귀속 됩니다.'
뭐 이런거?
2008/10/09 12:24 2008/10/09 12:24

소통

생각 2008/09/12 17:05
국민 : 질문 있습니다~
2MB : 어이~ 청수~ 모해? 입막고, 손가락 분질러~

청와대지정패널 : 질문 있습니다~
2MB : 헤헤~ 헤헤~ 헤헤~ 헤헤~

'질문 있습니다', 청와대지정패널들과의 잡담은 언어와 의미가 집나간 비열한 웃음소리의 동음반복이었다.
2008/09/12 17:05 2008/09/12 17:05
2008년 8월6일
욕을 안할라고 했지만 저절로 나온다. 참말로 개좆같은 짓을 하는 개같은 나라다. 에라이.. 씨발놈들.
[지나는 시민 때리는 경찰에 돈까지 준다?] 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요즘 블로그에 욕이 많다. 낯뜨겁다. 자랑삼지 못할 인격인데도 괜히 스스로 손해 보는 짓 하는 건 아닌지 생각도 했다. 이쁘고 아름답고 거창삼삼한 단어 골라서 쓸 걸.. 하지만, 욕지거리 좀 있는 블로그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는 거리에 있다. 나라? 요즘 이건 블로그에서는 진짜지만 거리에선 가짜다. 거리엔 민주공화국이며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는 진짜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좆같은 짓을 하는 개같은 나라, 즉 가짜 나라가 존재할 뿐이다. 실용도 실용 나름이고, 신자유주의도 신자유주의 나름이다. 영장 없이 48시간 구속하는 연행의 건을 당하는 사람에겐 48시간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 시간이면 이 가짜 나라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썬탠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나라에선 그걸 5만원에 가격 형성을 하고 거리에서 팔고 있다. 백골단이란 수요가 있고 100번을 쉬지 않고 거리에 나오는 시민이란 공급이 있다. 거리에서 보고 있자면 좀 덜 폭력적일 때에 한해 두 사람이 양팔을 끼워 연행하든데 그럼 2만5천원씩 나눠가질 수 있도록 관리 되는지 궁금해진다. 실용은 개좆같은게 실용이다. 개좆은 유용하다. 한번에 몇마리씩 번식할 수 있도록 돕고, 그래서 낳게 되면 인간에게 이로움을 준다. 우울증도 치료해주고, 맹인의 길잡이도 하며, 독신자의 로망인데다가, 기빠진 사람들의 보신으로까지 몸 바칠 수 있도록 기능하는 그야말로 실용적인 거시기 되겠다. 개좆같은 짓만 해도 나라가 실용적은 된다. 그나마 실용적이지도 않으니 개좆이 들으면 어디가 좆들이대냐고 하겠다.

짐짓 고귀한 척 하는 최시중이 어청수니 하는 무리들은 거리의 껌이다. 씹히고 밟힌다. 어차피 이명박 내지는 이명박으로 아우라 되는 권력에 영혼을 바쳤으니 껌이 되도 알길이 없는 좀비들이다. 거리의 얘기만 해보자, 경찰, 복잡한 전투경찰제도 따위는 내려 놓고 어쨌든 경찰로 보고 맞닥드려보자. 시뻘건 눈에서 5만원짜리 광선이 나온다. 살기등등, 방패갈갈 한다. 어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살수차가 등장한다. '미국산 쇠고기 안먹고 싶어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와요' 다 잊어 버린다. 그들도 잊어 버린다. 국민이란 사실을 잊도록 교육 받는다. 폭도다, 포획 대상이다, 어젠 더했다. 5만원짜리 상품권이다. 거리의 얘기다. 그 거리에서 경찰을 우리의 아들이다? 라고 소리친다고? 그 경찰의 어미, 아비에게 이 따위 오만방자한 족보 들쑤시는 주장이 어딨겠는가. 대오에서 시민들에게 끌려 나온 전경과 그를 잡아 끄는 시민들에게 "놓아줘", "때리지 마" 갈기갈기 소리친 적이 있다. 그러다 다시 앞을 보면 광선 뿜는 눈알을 깃대로 꽉 찍어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난 폭도인가? 거리에서 잡혀 갈 수 있다. 정말 눈알을 찍었으면 잡혀 가야지, 잡혀 가다가 귀싸대기 한대 맞았으면 그럴수도 있겠다. 눈알 찍은거에 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근데, '부시 오지마, 싫어',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어, 광우병 걸리지 말자', '이명박 물러가, 난 맘에 안들어' 라고 외치는데 잡아 가려면 좀 품위는 지켜야지, 명색이 법의 수호, 민중의 지팡이라면.. 기자들 카메라 막고 개같이 패고 몸이 구겨져라 쑤셔 넣고 인도고 상점이고 나발이고 어쩌고 5만원짜리 상품권을 포획하는 짓은 개좆을 다루는 개장수가 할 일이지 경찰의 품위가 아니다. 거리의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할 거라면 변호사라도 선임할 수 있게 면담할 수 있게는 해줘야지. 그래 도로교통법위반이지? 맞아... 도로교통법위반은 변호사 선임이 안된다. 개좆같네 실용적이라서, 맞아 헌법은 실용적이지 않아.

그러니까 가짜 나라다. 법은 국민들만 지키면 되고 법의 집행자들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실용적이네, 역시 개좆같네. 엇, 그러고보니 저 댓글 이제 이해가 되네. 우린 개좆같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힘겨운 저항과 '짓' 을 하고 있는거지. 인간을 실용적으로 대접하지 않으며 양심에 맞게 표현하고 서로 모여 토론하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나라를 위해 말이지. 맞네. 그럼 진짜 나라는 어디있나? 이거 누구 한테 빼앗겨 이렇게 힘들게 찾아 와야 하는 것일까? 독도? 그래 이것도 이젠 미국한테서 찾아 오는 신세지.. 바쁘네, 일본에서도 찾아야 하고 미국에서도 찾아야 하고.. 진짜 나라는 어디 있는가? 빼앗긴 나라에도 개좆은 있는가? 말되네. 근데 왜 이렇게 허무한거야...
2008/08/06 20:25 2008/08/06 20:25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나서 주셔서 너무 기뻤다. 게다가 진보성향의 기독교 단체와 불교계까지, 시민들은 한동안 다치지 않았다. 이제 7월5일이 되었다. 그간 두달 동안 노무현이 고향마을에서 막걸리 취기에 적어도 촛불에 있어서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파렴치 따위는 초월하게 되었다. 누구나 고향마을에서 불알친구들과 막걸리 한잔 하면 자신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변명할 수도 있고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두루 '방법'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파렴치를 잊고 말았지만, 대추리에서 수십명의 시민이 군과 경찰에 다굴 당하고 시내 한복판에서 농민 전용철, 홍덕표가 집회 도중 사망한 그때가 지금보다는 민주주의가 더 있었다고 추억한다. 노무현은 UFO적인 인간이다. 미확인된 이념으로 작동하는 인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현실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가 그를 추억하는 한 말이다. 민주주의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조금 다른 것은 지금 거리의 무브먼트가 직접적인 사적이익의 사안인지, 조금만 비켜서면 충분히 무관심해도 될 사안인지의 차이다.

정권이 시위의 불법성에 대처하는 폭력적 자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때는 군과 철조망도 동원되었고 두명이나 비명횡사했다. 어청수가 지금 사용하는 물대포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사회적 인간의 폭발적 의지가 동일했을 때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이나 될까? 그건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크기에도 관계가 있다. 집회는 언어의 근원과도 일치한다. 의지는 언어를 생산하고 언어는 인간들끼리 모여 대화를 통해 작동한다. 모이지 않는 이상 의지도 언어도 집회도 아무것도 일어 나지 않는다. 10만명? 20만명? 이 정도 인간이 모여 집회를 할만한 공공 장소가 서울에는 없다. 조중동이나 이명박 일당이 말하는 합법적 집회란 인도에서나 가능하다. 선거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모두 완성될 수는 없다. 뽑았으니 믿으라는 교조적인 담화는 소망교회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의지는 이명박이 말은 할 수 있어도 절대 실천할 수 없는 소통에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모여서 대면해야 하는데 도대체 서울엔 이 강력한 인간의지가 모일 장소가 없다. 그러하니 어떠한 철학도 필요치 않은 무리들은 이 부분만 물고 늘어지며 불법, 위법만을 강조하면 된다. 철학이 없으니 불법말고 다른 논리를 만들면 더 추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퇴진과 함께 폭력 비폭력은 거리의 절대 화두 중 하나다. 폭력과 비폭력은 촛불을 든 시민들만의 화두는 아니다. 저들, 즉 권력을 비호하는 일당에게도 그런 비슷한 화두가 있다. 철학은 없고 더러운 기름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불법에 대처하는 그들의 기계적인 폭력말이다. 거리에서 공권력은 권력을 지키는 경찰로 대리된다. 이 나라에 공권력이란 장애인과 여성, 노인은 카메라 없는 곳에서 패라고 명령하는 직업경찰과 멋도 모르고 인간들을 족치는 2년짜리 비정규직 전투경찰더미가 전부다. 솔직히 그 거리에서 나쁜놈은 몇명 밖에 안된다고 구분하는 시민을 보면 성자를 보는 듯 하다. 나는 그만큼 넉넉한 오지랖을 가지지 못한 것 일까. 촛불을 든 시민 중에도 나쁜놈과 좋은놈이 있다고 구분이 가능할까. 어청수는 가능하다고 한다. 물대포에 형광물질을 넣어 뿌리면 물대포 맞은 놈은 나쁜놈이라고 구분 가능하다고 한다. 촛불소녀가 웃는다. 저는 나쁜년인데요.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과 방패를 든 경찰로 나뉜다. 이건 의지와 명령의 차이다. 육체를 타고난 인간은 어차피 그 자체가 폭력이다. 우리가 나눠야 하는 것은 폭력과 비폭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어떤 폭력이냐는 구별이 가능해진다. 여성을 넘어 뜨려 발로 차는 인간이 있다. 그냥 쳐다 보는 인간과 발로 차는 인간의 면상을 후려치는 인간과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좁은 도시에 10만, 20만이 더 많은 사적이익을 도모할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모일 만큼의 언어가 작동하고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인간 의지가 있다. 이것을 불법이라는 집시법 위에 두고 이 인간들을 토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그 민주적 의지를 제단할 수 있을까? 폭력이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폭력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역사이며 역사가 오늘을 비춘다. 명령이 의지를 이겨 본 적이 없다.

이제 오늘 국민이 승리 했다고 선언하자고 한다. 900여명이 강제연행 되었고 10명이 구속됐다.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되고 있고 조중동은 여전히 설레발치고 있다. 이명박은 뒤에 숨어 대폭 개각할 듯 하더니 소폭 개각하고 지들끼리 재신임 중이다. 거지 같은 인권은 동물적으로 변질되고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과 통신은 각종 탄압의 전조를 울리고 있다. 게다가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대중들을 위해 공약한 이명박의 대표적인 공약인 747 은 미국소 주저 앉듯 앞대가리 부터 4로 시작할 조짐이다. 우리는 무엇을 승리한 것일까? 신부님, 마음속에서 그렇게 가다듬고 외쳐야 하는 건가요? 고해성사 하듯요? 우리는 아무것도 승리한 것이 없다. 앞으로 시민들이 계속 촛불을 들 것이니 조바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나마 주최자인양 하던 국민대책회의도 뿔뿔이 흩어 졌다. 어느 누구도 음향기기나 무대차를 촛불집회에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의지가 있다. 시민들이 더 다치지 않게 승리를 선언해주시는 32인의 지식인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감사하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월드컵 그날 처럼 시청광장에서 미쳐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도 며칠 촛불집회 하다가 물대포 맞고 방패에 찍혀 백병원 들락 거리다가 어느날 승리를 선언해 버리고 말 것인가? 아직 우리는 승리하지 않았고 의지가 남아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 따위를 할 것이 분명한 미래지향이 이 거리에서 목도 되고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승리를 선언하는 고해성사에 반대한다.
2008/07/05 03:08 2008/07/05 03:08

주성영

생각 2008/06/17 02:40

천민도 모르고, 자본주의도 모르고, 하물며 민주주의도 모르는 사람이 '법의 지배' 따위를 논하는 건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단 얘기되겠다. 게다가 생명도 생명 같지 않고 상업주의도 상업 같지 않은 이 마당에 생명과 상업을 합치면 그것이 마트고, 전국적인 마트화를 꽤하는 것이 그들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애꿋은 촛불이 마트란다. 이런 쪼다를 요즘말로 '듣보잡' 이라고 하는데... 듣보잡들이 모를 말이라 주구장창해도 뭔 말인지 모른다.

2008/06/17 02:40 2008/06/17 02:40

나의 투쟁

생각 2008/05/28 15:30
몇 달 전부터 내가 사는 아파트는 간판을 바꿔다느라 분주하다. 입주 당시의 아파트 브랜드를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일을 하는데 입주자대표회의와 조합은 입주민들에게 부당한 동의서를 요구했다. 신규 브랜드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간판 변경과 기타 도색작업 등이 필요한데 이에 필요한 비용을 평수별로 분담금을 부과한 것이다. 이 분담금을 내지 않을시는 소유재산에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협박도 일삼는다. 나는 이런 독소 조항이 있는 동의서를 거부했다. 하지만 주민 80%는 자신들의 재산이 브랜드를 바꿔달아 자산가치가 증대할 것이란 희망으로 동의서에 서명을 했고 서둘러 분담금을 입금하고 있다. 독소 조항도 독소 조항이지만 아파트 간판만 바꾼다고 그 브랜드의 상업적 가치가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 아닐진대 너도나도 포장을 바꾸는데 혈안이다. 누군가는 손쉽게 자기집을 구입했을지는 몰라도 대게의 사람들은 지리한 현실과 꿈 같은 꿈으로 어렵게 자기 집 한칸을 마련한다. 이마저도 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축에 든다. 그런 집은 브랜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구가 안전하게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갑작스럽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오래도록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서 중요하다. 그러한 공간에 건설회사의 상업적 브랜드는 그 안의 고귀한 삶에 어떠한 간섭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파트가 집이 아니라 상업적 가치의 브랜드화 되면서 집이라는 인간적 의미를 쉽게 팔아 먹어 버린다. 그 집에 제식구가 브랜드와 관계 없이 행복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은 브랜드로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 브랜드의 개명은 이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 다른 수요자에 어필하여 조금이라도 더 높은 가치를 받아 챙기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서 간판을 바꾸고 도색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사는 사람의 삶이 윤택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80%의 이런 선량한 상업적 식민들이 있기에 그것을 등에 업은 조합이나 대표회의는 그것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소수자들에게 온갖 악랄한 횡포를 일삼는다. 이권만을 쫒는 조합에는 이성이나 양심, 인간의 영혼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믿는 무식한 폭력만이 존재한다. 나는 걱정이다, 저런 아비와 어미에게서 자란 아이의 장래가 결코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다. 이미 이 상업적 세대는 계몽이나 반성이 불가능하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난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남들이 해놓은 것을 받아 먹으며 기생하며 이권을 챙긴 사회암적 세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식을 믿는 사람들이 80% 이며, 우리나라의 법철학은 다수결 중심적이다. 즉, 반대해도 할 수 없다. 다수가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고 다수가 하자고 하면 따를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의 법은 애초에 약자나 소수자를 보호할 의지나 근거가 없는 강자의 철학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하다 보니 80% 정도의 상업적 동의는 법적으로 유의미하다. 법적으로 말이다. 결코 수긍할 수 없는 법적 근거로서 말이다.

나는 이 80%에 주목한다. 이 80%는 우리 사회의 도처에 존재하는 80% 다. 이 80%는 사회전체적으로 약자이면서 미래에 강자가 되고 싶은 헛된 희망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분포와 같다. 제 아이가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안타깝지만, 자신의 아이가 똑똑하다고 믿고 싶고 게다가 MB식 성공까지 보장 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짐짓 현실직시한 양 행동하는 사람들의 분포다. 자신들의 욕망이 아이를 위해서는 인간적인 것이 되는 부모 됨됨이의 왜곡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포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도 이명박의 자사고 정책이나 서열화 따위는 궁극적으로 인정하는, 즉 자신의 아이는 똑똑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런 학교가 필요하다고 믿는 이명박 지지자들의 분포다. 이제 이런 80% 와 홀로 수개월동안 대치하고 나니 너무 피곤하다. 이 80%는 분담금을 내지 않는 소수가 자신들의 분담금으로 도색한 브랜드의 가치를 분담 없이 취하려 한다고 난리인 분포다. 그래서 법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 선다. 법은 어차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종사하는 교양 없는 자본 식민들의 편에서 이해 못할 용어들을 쏟아 낼 것이다. 우리 사회를 좀 더 신중히 대하려 해도 그런 이성이 받아 들여 질 수 있는 곳인지 매우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방금 전 강남경찰서로 어제 촛불문화제에서 강제연행된 후배를 면회 갔다 왔다. 면회를 거부 당했지만, 먼저 면회한 사람들의 전언으로는 '48시간 자고 나올테니 걱정말라' 는 것이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해서 혼자서만 그거 안먹겠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라 생각하는 몰지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우리 사회의 80%는 20%의 희생으로 나중에 생길 이권을 취하거나 이롭게 바뀐 사회현상을 공기처럼 거저 마실 사람들이다. 나는 이 후배와 또 강제로 자발적으로 연행당한 사람들의 활동만큼 동참을 하지 못했고, 그런 부실한 오지랖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저 마실 사람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최소한 이 사회를 같이 살아 갈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면 짐짓 양식있는 양 행동하며 브랜드만 갈아 치우는 일에 열중인 이명박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교양으로 아이를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면 내 욕망의 성공신화가 써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기는 죽어도 싫다.
2008/05/28 15:30 2008/05/28 15:30

어떤 국가

생각 2008/05/15 18:41
촛불집회를 다녀온 수많은 시민들이 스스로를 고발하고 나섰다. 민주공화국인 나라에서는 어떤 표현에 대해 국가기관에 자수하고 스스로 자유를 내던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의 말을 막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다. 이것은 안드로메다의 해괴한 정치 이념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라고 믿고 있는 나라에서는 최소한 그런 이성과 양심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광우병, 미국산쇠고기 문제, 그래서 죽고 사는 것, 중요하다. 죽고 사는 건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이라 믿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죽고 사는 문제가 '소통' 을 못해 생긴 것이라며 3일동안 정부 각 부처를 돌며 강조했다. 그리하여 소통의 관용을 이렇게 실천하고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 사법처리', 'MBC PD 수첩 고소', 'EBS 지식e 17년후 편 방송금지', '고3 학생 촛불집회 배후추궁', 이명박정부는 CEO 라면 나라 경제를 살릴 것이란 전혀 과학적이지 않는 근거로 탄생한 정권이다. 수많은 CEO 들이 사익을 위해 비자금을 만들고 세금을 포탈하며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잉여를 벽에 걸어두는 나라에서 'CEO 라면' 이란 정권 탄생의 근거가 통했다는 것이 그야말로 안드로메다적이다. 그렇다, 정작 기업에서 기업조직에서 이유 없이 추궁 당하고 근거 없이 해고되며 사장, 부장 꼴보기 싫어 매일 아침 때려치고 싶은 욕망이 굴뚝 같은 근로자들조차 'CEO 라면' 이란 이유를 믿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궁극의 초현실주의다.

CEO 는 CEO 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거창하게 말할 수는 있어도 정작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다. 대신에 CEO는 민주주의란 이익을 내는데 매우 거추장스러운 시스템이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기업에는 홍보 라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라면 다양한 표현, 제할말 다하는 표현, 어떤 표현 등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통을 위한 길이 따로 필요 없다. 기업의 홍보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제할말 다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라 믿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외계의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명목으로 닦여진 일방통행일 뿐이다. 이러한 일방통행에는 매력적인 거짓말이 99%다. 왜냐하면 기업의 홍보는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이익에 대해서 얘기하기 때문이며, 그 외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적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매력적인 것에 돈을 쓸 준비가 된 소비자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게의 CEO 는 이러한 일방통행을 소통이라 믿고 있다. 게다가 CEO 는 소비자를 민주적이며 주체적인 어떤 개인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이익이 미덕인 기업을 운영할 자격이 없는 이상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CEO 마인드를 설파하고 CEO 의 능력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근거는 그야말로 기업의 홍보와 다를 것이 없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면 소통이란 선전을 굳이 국가가 나서서 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홍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가지가지의 표현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광우병, 그래서 죽고 사는 문제,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소통으로 불리워질 때 민주주의는 없는 것이다. 소통을 국가가 나서서 선전할 때 국민은 국민이 아니라 소비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정작 살았으나 죽은 것이다.
2008/05/15 18:41 2008/05/15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