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 정치적 발언으로는 그렇다. 정치적이란 범주는 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으로 요약될 수는 없다. 정치는 사람간의 소통을 다스리는 일이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도 생각을 발언하고 실천하는 사람의 설득력에 따라 다른 사람을 그 의도대로 다스리곤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자기의 말에 10명이 동의하면 무슨 일이든 하기 편하다. 10명이 리더쉽과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은 생활 속의 권력에서 더 많은 수 더하기 법으로 정해 놓은 몇가지 규칙만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을 쟁취하기 위한 선거판의 에너지는 인간의 의지 중 전쟁 다음이 아닐까 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섬긴다는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데 왜 국민들은 촛불집회며 탄핵서명 운동까지 주어 담기 힘들 일을 벌이며 대드는 것일까? 게다가 50% 이상의 국민이 동의한 명실상부한 권력을 말이다.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가 보자, 주위에 10명을 객관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주어 담지 못하는 발언들은 일련의 열공모드와 정보 탐색으로 정리된 합리에 의한 것이 었을 때 다른 10명으로 부터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화법도 중요하고 태도도 중요하지만 다른 10명으로 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는 덜 생각하고 덜 정리된 발언과 실천적 삶이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동의를 얻을 수 없었을 뿐이다. 매우 합리적인 상태를 끌고 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대게 나이를 들먹이고 고향을 들이대고 더 나은 주머니 사정을 토대로 유흥의 길로 유혹하게 된다. 어쨌든 동의는 시켜야 되니까.
이명박 정부는 지난 선거에서 어쨌든 국민의 동의를 얻었다. 경제를 살리고 잘 살게해주겠다는 정치적 발언으로 말이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더 이성적이며 합리화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선거는 합리적인 것 보다는 에너지를 원한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이해하는 논리적 시간은 먹고 사는 일상에서 빼내어 누리는 어떤 사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후끈한 에너지가 넘치는 한마디 구호만있다면 어떤 비합리도 용서할 수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탄생했다. 경제를 살릴 수도 못사는 사람을 구원할 수도 없는 비합리성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찾아 낼 수 있는 이상한 정권으로 출범했고 사람들은 이를 기꺼이 축복해주었다. 이은하의 대운하송, 김장훈의 발차기, 송윤아의 시낭송 과 더불어 말이다.
이런 축복이 얼마나 되었다고, 1만명 촛불집회와 1백만명 온라인 탄핵서명 따위에 귀를 귀울이겠는가. 점점 파고 들어가 보니 1만명 집회에 60%가 중고생이었고, 1백만명 탄핵서명 발의 또한 고등학생이 했다질 않나, 정치적 발언과 경찰의 엄포를 적절히 섞고 미국에서 때마침 지원사격을 해주는대다가 그동안 껄끄러웠던 조선일보마저도 괴담 운운하며 몰아 가고 있으니 애들 부침에 너무 나선것은 아닌지 수위 조절을 해도 될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투표권도 없고 잉여생산력도 없는 것들이 절반이상 나섰다니 웃기고 자빠질 상황인터다. 조갑제의 말대로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그들의 꼰대들이 용돈으로 통제를 해도 될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나머지 사람들은 으례 그랬듯 배후 세력에 조종된 좌파 빨갱이들로 몰아 세우고 집시법으로 몇놈 잡아 넣으면 온라인에서 한두 사람씩 '반성' 이나 '후폭풍' 따위를 거들먹거리며 서로 치고 받다가 '미국산 쇠고기 먹고 보니 싸고 괜찮네' 하며 감사해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거리에 나온 못살고 야자 빼먹으며 앞으로 경쟁력 떨어질 학생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들의 구호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비합리적인 노인네와 그들이 섬길 국민은 따로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따라서 예전에 흑인과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었던 코카서스 미국인들의 이성처럼 10대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야 말로 합리적인 민주적 결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통일이 되면 안되고 행여 잘못되어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출신에게 민주주의적인 투표권을 주어선 안된다는 생각도 이들에겐 합목적적이다. 이들에겐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어서는 안되는 부류가 따로 있다. 이들의 권력과 권력이 지탱해주는 이들의 자본에 부적격한 낙오된 부류들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기적처럼 탄핵되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반성해도 절대 잃을 것은 없다. 그들에게 권력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어떤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나 존경 따위는 더더욱 아니며 누구나 잘살게 하기 위한 호혜평등의 인간성의 정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본을 좀 더 축적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가장 유리한 도구로서 권력이 필요한 것 뿐이다. 애초에 미국산 쇠고기는 국민들이 싸게 사먹을 것이지 돈 있는 정부 관료와 한나라당 인사들이 함께 먹을 고기는 아닌 것이다. 큰 생색 내는 것처럼 미국 쇠고기 자본가들에게 시장 내어 주고 미국 금융시장에 눈치 않보고 호기 좋게 투자해서 돈 좀 만질 수 있으면 이들이 섬기는 부류의 국민들에게 환영 받는 것이다. 광우병 따위로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면 되는 문제다. 이런 시장 논리야 뻔하다. 없는 놈은 먹고 나중에 죽는 논리. 이 정부가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는 1억짜리 일본산 쇠고기와 마침 가격이 떨어진 미국내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부자들의 얘기다.
이들의 관심은 쇠고기와 광우병이 아니다. 미국적 세계화가 가져올 금융의 한결 나은 변화를 예고한 한미FTA 가 그들의 목표다. 돈 냄새는 여기서 나는 것이다. 광우병은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게는 과학적이라는 오래 걸릴 단서를 달아 두면 절대로 그들이 갚을 일이 없는 외상값 같은 것이다. 돈에 밝고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발동한 한미FTA 를 해치면서 까지 외상값을 갚을 부자는 없다. 미국산 쇠고기는 착취해야 할 부류에게 던져주는 당근이다. 돈을 더 찍어 내지 못한다면 못사는 사람들을 모아 그나마 푼돈이라도 글어야 할 판에서 싼 미국산 쇠고기는 그야말로 맛있는 당근 아니겠는가. 그걸 안먹겠다니.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를 찬양할 것이다. 비합리적인 정권이 들어야 할 국민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돈에 있어서는 명확한 부자들이다. 비합리적인 정권을 선거에서 미친 듯이 뽑아 준 비합리적인 부류들의 목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어쨌든 궁극에는 마지못해 먹을 수 밖에 없다는 비합리적인 합리화를 감행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오래 걸리는 과학이나 설득하고 이해해야 하는 합리보다 폭발적인 분노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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