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깃발을 들었다. 깃발은 처음 드는 것이라 좀 겁이 났다. 그랬을까, 순간 '깃발 앞으로' 란 외침이 대오의 앞에서 부터 전달 되어 이어졌다. 나중에 안 이유지만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면 깃발을 흔들어 소화분말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 깃발은 앞에 선다. 오늘은 어떤 세상이건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보다 분명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명박의 치졸한 말 바꿈이나 인간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반성 따위가 이명박이나 이 정권의 덩어리들에게 바란다는게 얼마나 순진한 인간다운 정념인지 깨달았다. 시민들은 흥분했다. 백주 대낮에 주부, 국회의원, 노인의 사지를 들어 연행하더니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연행했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자유발언이나 연좌 따위로 시간을 끌지 말자고 들썩였다. 새문안 교회 골목으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진입을 시도했다. 틈은 좁았다. 어김없이 소화기 분말이 뿌려졌고 순식간에 전경 2명이 끌려 나왔다. 몇명은 발길질을 했고 몇명은 그들의 무장을 해체 시켰다. 나는 순간 풀어줘라 고 소리쳤다. 전경 둘은 대오 끝으로 끌려갔고 뒤쫓아간 사람들은 풀어주라는 쪽과 풀어주지 말라는 쪽으로 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풀려났고 전경 무리로 돌아 갔다. 살수차가 머리 위를 맴돈다. 방송을 하던 여경은 불법집회, 폭력행위를 중단하라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한다. 이 여경도 이준기에게 충고를 하던 현직 경찰관처럼 한번도 불법이나 폭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투다. 매일 밤마다 해방구가 되는 세종로사거리의 시민들에게 불법이나 폭력이니 하는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불법은 불복종으로 그 폭력은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적어도 스스로 학습한 시민들이다. 여기저기서 프락치와 조중동 기자들이 잡혀 시민들에 둘러 쌓여 있다. 서슬 퍼런 시민 수백명에 포위되어 언어적 린치를 당하고 있는 이들의 눈은 잔득 겁에 질려 있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행한 패악질을 반성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이명박과 한덩어리다. 절대 반성하고 재학습할 인간들이 아니다. 새문안 교회 골목은 앞에서 살수하고 골목 뒤에서 막으면 여지 없이 토끼몰이가 되는 지형이다. 빠져 나와야 했다. 겨우 1~2천명이선 어렵다. 이쪽은 뚫어 내기 힘들다. 여기저기서 주차장 담을 넘어 다시 진입을 시도하고 뚫렸다는 섣부른 정보가 전달되었다. 대오 끝으로 나오자 금강제화 골목을 막고 있던 전경버스 한대에 밧줄을 묶어 시민 수십명이 끌어 내는 중이다. 세종로 사거리와 새문안 교회 골목, 금강제화 골목, 시민들은 세방향에서 진입을 시도 중이지만 대오가 뭉쳐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도부의 부재. 지도부가 시위를 조직적으로 이끌 필요성 보다는 지도부가 없는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곳곳에서 부상이 더 심하다. 곧 살수차에서 무시무시한 압력의 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애초에 소통이란 이 정권의 두뇌속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 립서비스 마저도 철회했기 때문에 더욱 빨리 살수될 것이다. 이명박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호사다. 하지만 이제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 사람들은 추가 협상을 했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촛불 들고 소풍 나온 사람들의 입은 이처럼 가볍다. 이런 사람들이 도로 이명박을 만든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이, 주권자가 요구한 사항이 관철 될 때까지 절대 물러서자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 정도에서 물러 난다면 시민행동과 항쟁의 역사에 깊은 패배주의를 남길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종말을 의미한다. 아직은 민주주의다. 이명박은 우리 힘으로 하야 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2008/06/26 03:46 2008/06/26 03:46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사에 기리 남을 치졸하고 지독한 집단이다. 이명박이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해서 정신상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양보라는 것을 작금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창피스러운 민주적 선거가 이 나라의 정체성이다. 이명박 정권이 선전하고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란 바로 거리에서 일어나는 무차별적인 공권력 남용, 폭력적이며 불법적으로 일어나는 강제 연행, 게다가 노인 초등학생 국회의원 할 것 없이 매우 공평하게 이뤄지는 대민중 폭력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다.

이젠 집회에 지도부와 투쟁 전선과 조직이 필요할 때다. 더 이상 이 정권의 말기적 정신분열 현상을 두고 보며 한가하게 밤샘 토론 따위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젠 쇠고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을 정확하게 겨냥한 노선이 필요하다. 이 정권은 절대 소통이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절대 깨달을 수 없는 무지한 집단이다. 이 정권이 촛불 집회 따위로 계몽될 것이란 것도 바뀔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얼마나 순진한 유아적 발상인지 전혀 새삼스럽지 않게 각인된다. 촛불 집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창피스러운 정권이 탄생된 신자유주의적 마음을 반성함으로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촛불은 바로 이명박을 겨눠야 한다. 어느 교양머리 없는 국회의원 따위가 촛불 짓이 천민 짓이라고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천민들이 정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 보여줄 때다.

2008/06/25 18:01 2008/06/25 18:01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 당신이나 나나 살아봐야 한 10년, 15년 살라나.. 그러니 미국쇠고기 먹고 안먹고 우리 한테 뭐가 중요해, 우리 자식들하고 손주들한테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야, 광우병은 10년 넘어서야 발병한다자나, 그러니 당신들 안먹는거 하곤 아무 상관 없다고 했어, 암튼 미국산 쇠고기는 들어오면 안돼"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칼국수를 드시고 오신 내 어머니 얘기다. 내 어머니는 한나라당 모 의원 여성후원회 회장으로 선거 개표날이면 한나라당 지역구 사무실 맨 앞자리에서 개표 상황을 시청하신다. 어머니와 나는 노무현정부 때부터 정치적으로 앙숙이다. 나는 노무현을 지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머니는 나를 '노빠' 로 아셨다. 노빠, 당시 나로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정체성이었기에 시시콜콜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성토했지만 어머니는 노무현의 막말을 안다리 걸어 노빠로 규정된 나를 넘기려 안간힘이셨다. 그래도 어디서 노빠는 빨갱이라고 얘기하는 자리에서 당신도 같이 노빠는 빨갱이라고 얘기하시진 못하셨단다. 그렇게 되면 아들이 빨갱이가 되고 아직 당신들의 기억에 빨갱이는 노빠로 쉽게 규정 내리기 힘든 어떤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빨갱이가 될 수 없는 사회적 계급 속에 빨갱이가 되려고 노력중인 종족 쯤으로 치부하고 산다.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지금의 이념이나 정치성향에 관계 없이 전쟁과 남한 사회의 스팩타클한 정치적 현상을 모두 겪은 세대에게 아직은 그날의 가난과 두려움이 남아 있고 그것을 오늘날의 신자유주의가 깨끗이 보상해주지도 못한다. 우리는 어쩌면 외적 가난과 두려움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내적 가난과 두려움 때문에 항상 불안한 분열증과 싸우고 있다. 광우병이 우려 되는 미국산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은 그러한 내적 증후를 외적 실체로 승화시킨 강력한 사회적 현상이다. 역사가 중대하게 기록할 이 현상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여전히 정치를 내세우고 데모꾼들의 배후를 싸잡아 5공 때처럼 린치를 걸 태세인데다가 뉴라이트 계열 조직과 극우보수주의자들이 드디어 빨갱이론을 내세워 촛불의 빨감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주의자이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이명박을 찍었던 세대일지라도 해방전후 한국 사회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었던 순수한 세대는 이 문제를 빨갱이나 정치의 문제로 절대 인식하지 않는다. 어려운 시대에 자식을 온몸으로 지키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지금의 순수한 보수 세대들은 이 문제를 자식을 지키는 일로 생각한다. 아무리 이명박을 지지해도 자식들보다 지지해줄 수 없는 노릇인 것이 바로 이 광우병 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문제라는 것을 너무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촛불을 빨갱이로 물아 부치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을 이 순수한 보수주의자들은 '니들은 자식 안지키냐' 라는 한마디로 물리친다. 미국산쇠고기 문제는 윗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고 반응하는 조건 반사가 아닌 것이다.

"어머니, 이명박이 조금만 잘해서 경제가 살아나고 정치를 조금만 세심하게 잘 하고 물러나면 다음 타자인 김문수, 원희룡, 오세훈이 나와서 또 집권할까 봐 나는 그게 더 두려워"
"잘해야 그런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인데..."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못했다. 어머니도 그런 좋은 세상이 오려면 이명박이 잘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미덥지 못하신 듯 말끝이 먹힌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0년, 15년 밖에 못 사실 세대나 그 보다 더 살아 이 사회를 이롭게 끌어 갈 모든 세대가 다같이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얘기하는 중이다.

2008/06/05 18:03 2008/06/05 18:03
아침에 출근하다보니 무심한 담벼락에 관할 경찰서에서 부쳐 놓은 푯말이 보인다. "경찰은 항상 국민의 편에서 생각합니다" 경찰은 담벼락에 팻말 뿐만 아니라 무심한 도시 곳곳에 국민을 향한 갖가지 애정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영화배우 이준기씨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촛불문화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올려 놓았나 보다. 이를 보고 어느 현직 경찰관이 반론을 한 기사를 보았다. 요지는 '촛불문화제는 더 이상 현행법상 평화로운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해산 시킬 수 밖에 없다' 는 것이다. 짐짓 이준기씨한테 어른으로써 충고와 타이름까지 덧부치는 글을 보니 오늘 아침 무심한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찰의 푯말의 생각났다. 역시, 립싱크인 것을 확인시켜 줄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현직 경찰관에게 현행법 좀 무시해주고 마음속의 얘기를 들어 달라고 관념적인 요청을 할 이유는 없다. 그 또한 추후도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한발도 전진하지 않는 호두껍질의 단단함을 천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위법행위자는 경찰의 연행에 순순히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현직 경찰관의 비애는 그래서 강제적일 수 밖에 없는 연행의 절차를 '강제적' 이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절대 불법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찰의 행위는 '항상' 정당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하니 촛불집회에는 비보이가 나와 랩에 맞춰 공연하고 이를 구경하고 돌아가면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는 촛불집회를 그저그런 '하이 서울 패스티발'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상황이 아주 평화롭지 않고 게다가 집시법 14조에 의거 주최자는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의 질서를 문란케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15명의 전의경이 시위현장에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쓰러지고 머리 터지고 방패에 찍힌 촛불집회참가자들 수를 취합해 들이 대고 부등식을 하자는 얘기인가? 누가 더 얻어 터졌는지, 그런 것을 상호 견주어 보자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보호 할 사람에게 맞는 것과 보호 받을 줄 알았던 사람에게 맞은 것의 차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투다. 글세, 경찰과 국민의 차이가 어떤 차이인지 경찰임용교육과정엔 없는 것일까?

도로점거만을 준법의 준거로 삼는 현직 경찰관의 말은 역시 현직은 현직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얄굿게 들릴까. 이는 오래도록 우리 사회의 무분별한 준법의식에 또아리를 튼 대표적인 인식의 한계와 같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킬 민주화의 과정에도 이 무단 거리 점거의 준법의식은 경찰의 주된 자세였다. 민주화건 뭐건 광장과 거리를 지키는 경찰의 모습은 민주화 이후에도 똑 같은 경찰의 모토다. 왜 민주화가 필요한지, 왜 저들은 저런 주장을 하는지, 경찰의 수동적이며 관성적인 거리지키기의 강제적 연행방식을 알면서도 왜 저들은 거리로 나오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지한 인식의 한계가 오늘 서울 거리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할 수 밖에 없는 방점인 것이다. 민주화를 이루는 것도 미친소를 먹지 않는 것도 교통 보다 중요하지 않고 그런 주장이 있다면 조용히 집구석에서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반민주적인 경찰들이 짐짓 충고어린 말투로 가증스러운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한계를 양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율적으로 주장해본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왜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들은 사용자들의 영업을 방해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연행될까? 왜 사람들은 경찰이 수십명을 연행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도 다음날 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올라타고 '나를 연행하라' 며 스스로를 고발할까? 마음속의 울림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옮다고 믿고, 그렇지 아니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표현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거리에서도 누군가는 우리 모두 미친소를 먹지 않아야 된다고 외치는데 누군가는 재미나게 공연 감상하다가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연행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정말 불가피하게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자유권을 내던지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그런 주장을 집에서 소리 높여 평화롭게 외치면 국가는 그것을 들어주었던가? 현직 경찰관인 당신이 경찰이 될 수 있었고 당신이 가정에서 민주적이며 사람답게 살아 가며 당신의 가족 모두가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만 하는 고귀한 일이 오직 당신이 어느날 고시학원에서 밤낮으로 공부한 경찰 시험 때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집회, 결사, 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할 어떠한 공권력이나 외부 압력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이 나라의 헌법이고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당히 거부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마땅한 권리이며 존엄인데다가 그것이 1987년부터 이 나라가 작동한 방식이다. 자신들도 연행될 수 있고 얼마간 자유를 박탈당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계에 지장을 받을 것인데도 왜 거리에 나와 저항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뤘던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과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누가 이해시켜주지 않아도 그것을 이어 받을 수 밖에 없는 시민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잡아 가라, 잡아 가지 말라고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찰들이 한가롭게 거리점거를 운운할 때 시민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학습하고 그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20년전 항쟁의 그것보다 더한 시대정신을 지닌 시민들이 뭉치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한번이라도 그런 이유를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현직 경찰관이라면 그 정도는 알고 경찰관을 해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 집시법 2개 조항을 들먹이며 가당치도 않는 충고를 늘어 놓기 전에 말이다.

이준기씨에게 띄우는 현직 경찰관의 글
2008/05/29 14:53 2008/05/29 14:53

아침이슬

생각 2008/05/27 13:08

이렇게 된 이상,
다시 아침이슬이다.
아가야, 이제 아빠도 촛불을 들어야 겠다.
아가야, 울지마, 아침에 새 세상과 함께 돌아 올테니..

2008/05/27 13:08 2008/05/27 13:08

류근일의 두려움

생각 2008/05/27 12:49

류근일은 걱정스럽다. 그동안 '대한민국 진영' 이 광우병 괴담으로 반미 수준이 아닌 그동안 온갖 패악적 문필로 막아 왔던 남한이 미국의 괴뢰였다는 사실이 들통 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은 옳은 말을 하는 지식인과 거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빨갱이와 폭도로 몰아 매장시키는 데는 익숙했지만, 이명박이 실용주의로 넘나드는 이념의 줄넘기에 발맞추기에는 이미 너무 늙어 버렸다는 것을 그들의 지지 진영으로 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더 조급증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설마 입에 담아 공포스러운 민중혁명이라도 일어 나는 날엔 망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강부자도 제가 착취할 땅을 잃으면 난민에 불과한 것을. 이제는 짐짓 이명박을 훈계하고 나서지만, 이명박의 사상은 조선일보도 이익이 되어야 청와대로 불러 꼬리곰탕을 먹을 수 있는 스탠스이니 도무지 주적 개념이 없는 듯 한 행태가 답답할 것이다. 도대체 청와대는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 그나마 경찰추산 촛불 집회 참가자가 줄어 드는 것을 보고 받으며 '거봐 쎄게 나가면 되는 거야' 라며 케잌을 커피에 찍어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게 아니면 이런 시급한 시국에 한가롭게 중국 마실이나 나갈 수 있는 것인지. 류근일은 행여 후진타오의 해남도 별장으로 초대라도 받았으면 어찌할 뻔 했는지 가슴을 쓸어 내렸을까? 이번 투쟁에는 다행이 화염병도 깨진 보도블럭도 없다. 하지만 류근일 따위가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동안은 최소한 '독재타도' 라는 구호는 듣지 못했는데, 이제 구호의 끝에서 더 이상 구호가 먹히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화염병도 등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벌써 부터 경찰과의 충돌을 예사로 알고 스스로 잡아 가라며 닭장차에 매달리는 희안한 일까지 있다니 더욱 걱정이다.

그렇다. 이번 투쟁은 양상이 다르다. 어차피 정부는 고시할 것이고 쇠고기를 처먹어라 할 것이다. 남한이 미국의 괴뢰였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 왔던 지난 친미독재정권들의 스마트함이 밥 먹여주냐며 걷어 차 버린 이명박 정권의 실용주의는 위태롭다. 류근일이 보기에도 그것은 좌우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 진영' 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정권이 시민에게 지는 척이라도 해왔던 것이 지난 잃어 버린 10년인데다가 아직도 민주화의 관성을 간직한 386 이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곧 유권자가 될 10대들까지, 그것이 아무리 괴담이고 맹목적일지라도, 거리에서 MB탄핵을 외치며 각성하고 있는 사태를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일 것이다. 겨우 5년 집권으로 끝날 역사가 100일지난 정권에게서 청사진으로 비춰지는 데다가 이 투쟁이 행여 시민들의 승리로, 행여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날에는 조중동도 같이 몰락할 것만 같은 참담한 분위기는 더더욱 혹독하다. 류근일으로서는 살아 남기 위해 더 악랄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08/05/27 12:49 2008/05/27 12:49

17일 촛불집회에 김장훈이 참가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놀랐었다. 이명박 정부 축하사절단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온 것일까? 몇달만에 이명박 정부를 축하하던 자가 가졌던 신의의 가치가 들불같은 촛불과 함성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버라이어티 같은 인식의 전환을 두고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무대만 있다면 어디서든지 노래 부르고 그의 전매특허인 발차기를 할 수 있다는 강변이야 말로 그가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사회에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어떤 자세의 크기만큼이나 해로운 것이다. 어쨌든 그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축하하며 힘찬 발차기를 내질렀던 여의도는 그냥 무대도 아니며 그 무대를 보는 사람들은 그 발차기가 이명박은 지지하되 정책 따위는 지지 하지 않거나 또 어떤 맥락이 다르거나 하는 복잡한 제단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이명박정부는 지지하지 않지만 취임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만으로 박수 정도는 몰래 쳐줄 용의가 있는 반동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장훈 본인도 그랬을까? 그러니까 모 그런 역설을 발차기로 승화시킨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뻔뻔스럽게도 이명박 정부가 싸질러 놓은 쇠고기똥을 주어 담으려는 촛불집회에 나와 취임식에서도 등장한 발차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모르게 바쁜 스케줄을 축내며 눈물 흘리고 후회하고 반성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민간인들이야 환호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 앞에 용기 있게 나아가 자유발언 따위를 하지 않으면 그 고독한 눈물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겠지만 김장훈이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자신의 착한 일들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이 다반사 인데 취임식의 발차기와 미친소 너나 먹어 발차기가 개별적 인식을 가진 독립적인 발차기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맥락을 제단하고 인식을 고차원적으로 발현시키면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부류들이 지금껏 한국사회에 미친 해로움은 비단 멀리 찾을 일도 아니다. 인식인지 사상인지 노동인지 비즈니스프랜들리 인지 정계진출인지 사리사욕인지 이런 것들을 한번에 섞어 버린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같은 이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철학적 지식을 버라이어티하게 설교할 줄은 알지만 정작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철학적 고민이 얕은 김용옥 같은 지식인도 있다. 그러하다 보니 어떤 때는 새만금에 카지노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새만금 사업 도로 물리라고 포크레인 앞에서 피켓을 들 수 있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그들의 언어를 해독치 못하는 무식한 우리의 뇌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도 이런 부류들이 다행스러워 하는 것은 그들이 아무렇게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도록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언어를 싸질러놓아도 언론이나 미디어가 그것을 번역하여 똑똑치 못한 우리들의 뇌속에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라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건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때 들은 노래를 추억과 함께 입속에서 오래도록 되새김질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의 녹음된 CD 만으로도 족하다. 굳이 똑똑치 못한 사람들의 뇌와 입속까지 경련을 일으키게 몸소 나와주실 일은 필요치 않다. 김장훈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무대에 나오기 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 생각이 무대에서 노래도 되고 발차기도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그의 해로움은 이용득과 김용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쇠고기 협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반대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반대하지 않는다? 사안데 따라 다른 싸질름, 그리고 번역은 버라이어티나 언론이, 이런식의 패악질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가 마치 CD 의 오토리버스처럼 펼치는 착한 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라고 과격하게, 때로는 아주 순진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는 것만 같아 아주 불편하다. 이런 뻔뻔함 어디서 많이 본 아우라 아닌가? 참으로 실용주의적이다.

2008/05/20 01:26 2008/05/20 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