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를 위해 투표한 가난한 자의 어리석음에 대한 개탄이 이어지지만 정작 가난한 자는 여전히 부자가 되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희망이 있으니 부자가 되기까지 가난을 견뎌낼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가난은 몇대를 걸쳐 대물림되어 왔고 가난한 아비는 부자가 되는 희망을 제자식에게 끈질기게 주입시켜왔다. 그래도 변화가 없다. 가난은 계속되었다. 아비는 병들고 아팠으며, 자식은 비정규직이다. 현대판 수난이대를 겪고 있지만 사회나 부자를 탓하지 않는다. 되려 부자의 습관과 생활 따위를 답습시키지 못한 아비 탓, 사회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한 그야말로 능력이 부족한 자식 탓으로 애써 돌려 놓고 세상을 마감하고 만다. 가난한 아비가 자식에게 물려 준 건 가난이 아니다. 그들이 물려 받고 물려 줄 것은 가난을 견뎌내는 허튼 희망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루쉰(노신)의 구절이면서 수많은 루쉰의 아포리즘 가운데 가장 오역이 심한 부분이기도 하다. 루쉰은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얘기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희망이란 많은 사람들의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실천적 행위를 하기 전에 사람들이 어떤 길을 걸어 가기 위해서는 완전한 절망을 직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가 품는 어리석은 희망은 절망을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희망이 될 수 없고 곧 그 길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쇠고기시장이 미국에 개방되고 한미FTA 의 비준을 통해 공식적으로 농업은 산업에서 제외될 것이다. 원자재 가격은 향후 20년~30년동안 지속될 것으로 OECD 는 분석하고 있다. 교육비는 가난한 자가 부자의 교육수준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벌어져 버렸다. 이제 가난한 자는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기 위해 소득의 80% 를 투자해야 할 것이다. 연료는 연료를 먹는 내연기관의 가격을 1년안에 따라 잡고 말 것이기 때문에 물자는 반년만에 제가격을 모두 감가상각시킬 것이다. 상속세를 내리고 종부세를 내리고 도리어 간접세를 올리는 국가 정책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종부세를 낼 때 혜택을 받을 것이란 꿈처럼 기분 좋은 희망에 부풀어 단숨에 20% 씩 오를 소주의 주류세를 참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겐 현재도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할 것이기 때문에 물려 줄 것이라곤 감가상각된 희망 뿐인지도 모른다.
어느 진보적인 언론조차도 희망만이 살 길인 것처럼 얘기한다. 부자가 가난한 자의 재화와 잉여를 지속적으로 빼앗아 가도, 죽어라 모은 종자돈이 원자재가격 인상과 인플레이션, 변동환율로 가치가 하락되는 세상일지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선동한다. 보수 언론은 더욱 심해서 그것이 '너희들을 구원하는 조치' 라는 거짓을 끈질기게 주입시킨다.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도대체 그 실현불가능한데다가 구체적이지도 않는 희망 자체를 가지는 유행에 열광하고 만다. '넌 희망이 뭐니?', '난 희망 없는데', '바보 희망도 없이 어떻게 사니.. 내 희망은... 로또 1등!' 도대체 누가 쪼다인가?
세상은 후퇴하고 있지만 더욱 디테일해지고 있다. 의료, 교육, 세금, 연료, 식품, 하다못해 옆동네 뉴타운에 배아픈 달동네 알박이까지 세상은 제로섬게임의 공식을 구체화시킨다. 가난한 자는 허튼 희망 말고는 절대 부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부자는 달동네 독거노인의 고쟁이 푼돈에서 부터 맞벌이 부부가 가까스로 모은 종자돈까지 탐내고 쓸어 갈 수 있는 공식을 세워놓았다. 이건희가 수조원때의 비자금을 축적하여 정관계에 뿌려 대는 동안 가난한 자는 간접세로 노동자는 근로소득세로 사라진 돈을 매꿨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삼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부국강병? 그렇다, 그것이 가난한 자들의 어리석은 희망이다. 자신이 생산한 잉여에 대한 관심은 거세하고 국가와 삼성과 같은 부자들의 구걸에 자신들의 노력을 자발적으로 갖다 바치는 행위는 그야말로 노예근성이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 노예에서 해방되는 날을 실천하는 것도 아닌 노예의 지위가 박탈될까봐 전전긍긍하는 희망만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이익과 자유를 포기한 이상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노예의 삶을 절망하지 않는 이상 희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도 희망' 이란 따위는 현혹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정부와 정권이 세상을 강철로 만들면 만들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 길을 걸어 갈 것인가? 아니면 그저그런 희망을 일기장에 끄적이며 내일도 노예인 삶에 감사할 것인가. 절망하지 않는 노예에게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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