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던 세상

2008/07/31 02:20 / 생각
이제 그 고대하고 기대하던 세상이 왔습니다. 자사고, 국제고, 외고에 몰입할 교육의 패러다임이 왔습니다. 전교조가 무서워 공정택에 한표 찍어 준 서민들, 그나마 남은 중산층들은 좋겠습니다. 희망이 생겼으니까요, 개구창에 쳐 박아도 시원치 않은 싸가지 자식을 싸가지 있게 만들기 보다는 자사고며 국제고에 보내면 되는 기틀? 따위를 마련했으니 말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강남구에서 영어몰입식 교육시키듯 몰입해서 몰아 부치니까 강북에 있는 모든 구에서 이겨도 궁극의 승리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확! 깨네요. 솔직히 이 순간, 촛불 들고 개지랄 떨던 유모차며 계몽도 안되는 글이나 씨부렁 대며 뒷구녕으로 지 살궁리나 하던 진보 지식인들이나 모조리 병신육갑이란 생각 밖에 안듭니다. 염병알~ 촛불이 문화네 어쩌네 하며 광장에 나와 쇼를 해대는 것이 지도부의 존재와 조율보다 더 나은 21세기형 시위라며 입바른 개소리를 하던 청와대 쥐새끼와 같은 부류들은 다 어디 갔나 묻고 싶군요. 그러니까 결국 촛불은 엿 바꿔먹어도 되는 쇼였다, 이게 성립되는 거죠. 생각도 없고 할 것도 없는 대다수의 심심한 놈, 딱히 할 것 없는 놈, 마누라에 떠 밀린 놈들이 촛불 들고 가족이며 친구 단위로 모여 뒤에서 쇼하고 쇼보고 앞에선 하염 없이 잡혀 가던 현실을 단박에 보여 주는 리얼리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현실이지 않냐며 자괴하던 자들이 마치 월드컵 응원하듯 광장에 나와 아무런 각성 없이 놀고 돌아 갔다는 것 밖에 달리 설명할 꺼리가 없습니다. 그것을 짐짓 시민의 힘인양, 온갖 계층의 참여인 양 떠벌리던 사람들이 존재 합니다. 그 인간들 이번 기회에 좆 잡고 집구석에서 반성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심심하지도 않고 할 것도 있고 마누라가 돈이나 벌어 오라고 떠미는 수요일에 이상한 놈 처럼 투표소를 찾아 촛불의 의미 따위를 되새길 인간이 없었다는 겁니다. 결코 각성이 안되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촛불이고 민주주의고 말하지도 행위할 수도 없는 거세적 인간들이었다는 결론을 아니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고대하고 기대한 세상이 오게 된겁니다. 젠장, 소주도 받아줄 위장이며 소장, 대장이 있어야 하는 건데, 이 사회를 같이 사는 인간들의 정말 이해 못할 계급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받아 줄 배알이 없습니다. 분명 이런 배알 좋은 놈들 있을 겁니다. 촛불 들었던 사람들에 대해 지나친 비하네, 지나친 일반화네 하며 솜씨 좋게 포장하는 씨방새들의 주둥아리가 있을 겁니다. 이게 촛불 들었다는 사람들의 한계! 되겠다는 생각 입니다. 째고 꼬매고 지 좋(좆)대로 양자 비판하고 균형 좋게 살아가며 가진 것도 없으면서 무식한 병신들이 기대하던 그런 세상이 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2008/07/31 02:20 2008/07/31 02:20
DrunkenSTAR 이 작성.

노무현 정부가 문구까지 다 마련하고 협상도 다 진행해 놓고 정치적 판단 때문에 도장 찍는 일을 이명박 정부한테 떠 넘겼다는 논리다. 앞으로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이 다 해놓은 정책들, 이를테면 되지도 않는 747 을 하기 위해 한미FTA 가 절대 필요한 논리도 어쨌든 노무현이 저질러 놓은 한미FTA 이니 역시 설거지 되겠다는 말과 같다. 이 무슨 강남 땅부자가 파출부 하겠다는 소리인고. 허허.. 설거지를 무슨 허드렛일로 아는 강부자 고소영 정권의 안락함 되겠다. 아침밥 먹고 그릇은 그대로 씽크대에 쳐박아 두고 부랴부랴 출근해야 하는 우리 맞벌이 부부들이 파김치가 되어 퇴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게 씽크대에 쳐박힌 설거지 되겠다.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설거지 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생활로 깨달아 버린다. 식모나 파출부를 쓰는 강부자 정권이 절대 알 수 없는 우리네 생활 되겠다. 노무현이 저질러 놓은 것을 마지 못해 설거지 해준, 그 허드렛일을 대신 해줬다는 변명은 설거지 자체를 너무 비하하는 것 아닌가. 허허.. 제 식구 먹여 살리려고 남의 집 설거지를 해주는 이 거룩하고 숭고한 노동자인 우리네 파출부 아주머니며 제 식구의 먹고 삶에 있어서 설거지가 기본일 수 밖에 없는 것을 평생토록 몸소 실천하시는 우리네 어머니의 고귀한 삶의 한 부분을 너무 하찮게 보는 것 아닌가 말이다. 역시 명박스럽다.
2008/07/30 00:52 2008/07/30 00:52
DrunkenSTAR 이 작성.

의료, 건강, 경쟁

2008/07/25 01:29 / 생각
애니콜, 사이언, 모토롤라가 박터지게 경쟁하는데도 핸드폰은 왜 정부 보조금 없인 구입하기 힘든지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없다면 감히 경쟁을 통해 비급여 의료 행위, 즉 인플란트 같은 보험 적용 안되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 진다고 말해선 안된다. 건강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된다고 개인을 비판하는 사람과 담배를 파는 기업이 '내일' 을 버젓이 얘기하도록 두는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마음껏 석유를 태우고 최소한 16년은 사회 적응 훈련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건강은 개인이 오롯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서로 도와야 하는 공공의 문제인데 이러한 공공의 영역에 자본적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서로 도울 필요가 없는 자본 증식의 원리가 도입되기 때문에 결국 공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공멸하지 않는다. 공멸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사회에서 공공은 강부자와 고소영을 제외한 나머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고 기사
2008/07/25 01:29 2008/07/25 01:29
DrunkenSTAR 이 작성.

수배자

2008/07/22 17:49 / 생각

날이 덥다.
문득,
원석선배가 걱정이다. 진걸팀장은 구치소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이 여름을 어떻게 견딜까...
문득,
이 미친 사회에 기대어 남달리 바쁜 척, 고달픈 척 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다.
그들이 걱정이다. 핑계는 그만하고 이번주엔 꼭 통인동에 들러 술 한잔 하자고 청해야 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07/22 17:49 2008/07/22 17:49
DrunkenSTAR 이 작성.

아파트의 질적인 면은 그대로인데 브랜드만 바꿔 포장만으로 사적 이익을 늘리려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주민90%와 독도는 우리땅 이라며 규탄, 촛불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닮아 있다. 현재적으로 독도가 명백한 우리땅이 아닐 수도 있는 구조가 된 이유는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막연한 태도와 독도 이슈를 다룰 때마다 행위하는 의미 없는 규탄 의식이다. 복잡한 블록 경제와 강대국의 제국주의가 팽배한 국제사회에서 미래적으로 당연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독도는 그런 맥락의 요로에 서 있다. 일장기를 태울 수는 있어도 독도가 왜 우리 영토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해봐야 세종실록지리지와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래로 논리된다. 독도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연구된 독도를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는 작업 또한 부진하다. 그러하다 보니 독도는 우리땅이란 것을 보여주는 쇼만 난무하다. 자기들이 먹어 보인다고 절대 안전해줄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를 카메라 앞에서 먹어 보이는 쇼 처럼 산넘고 물건너 너도 나도 독도에 상륙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하다 못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네가 독도 수비대에 자원하겠다고 허무한 발언을 하는 수준이다. 이런 수준의 정치인과 이런 수준이 먹히는 국민이나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독도가 이슈화된다. 둘째는 독도를 국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제단하려는 정권의 반민중적 의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독도는 하나의 통과 의례다. 왜냐하면 정작 자신에겐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뉴타운 좋아하고 경제성장이 유일한 삶의 대안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이 오로지 성장 일변도 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제사회에서 어떤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자본 글로벌로 대변되는 제국주의와 블록 경제체제에서 상호 연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미국, 일본과 자본경제적 관계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특히 일본과의 재구성에는 과거사에 대한 입장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일본은 끊임 없이 이 재구성을 도모 했고 한국정부는 과거사 청산을 건전한 역사관으로 대한 적이 한번도 없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차관을 들여 오며 일본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했다. 노무현도 일본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으며 이명박은 더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만이 있을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즉, 성장만을 강조하도록 만든 국가 체제는 미국과 일본의 자본적 제국주의에 배타적일 수 없고 따라서 독도를 온전한 민족적 역사관으로 대할 수 없는 정권의 딜레마가 깔려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독도이슈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 이슈에서 보여준 국민의 순정적 발현은 독도 문제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하게 다르다. 독도는 이승만 정권의 평화선 설정 때부터 지배계급이 국민을 정서적으로 동원하는 하나의 국가기능체계로 자리 잡았다. 우리 민족에게 반일 감정만큼 폭발적인 것은 없다. 최소한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좌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야말로 초당적이며 초국가적인 정서로 도출된다. 하지만 한꺼풀 벗기고 나면 이러한 정서적 조응이 실은 반일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적 자본과 정치권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심을 결코 지울 수가 없다. 성장만을 원하는 국민, 이러한 국민을 위해 자본 제국주의와 조응할 수 밖에 없는 국가에서 독도는 결코 역사적이고 민중적인 의미로 다가 올 수 없다. 이미 독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의 정서를 통합시켜 국가 기능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소스가 되었다. 독도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권이 바라는 것은 그 소스가 작동하여 과격한 규탄 방식이 범국민적으로 도발되고 이에 조응하는 언론 플래이를 원할 뿐이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의미 없는 규탄에 나서기에 앞서 이 사회가 지금처럼 성장 일변도로만 나아가야만 하는 것인지, 포장된 사적이익에 복무해야만 하는 것인지 따져 보고 사회적 건전한 정서와 제도를 되돌아봐야 할 때이지 일본대사관 앞에서 켜는 촛불은 지배계급이 망쳐 놓은 친일, 독도 문제에 동원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순정적이라 할 수도 없다. 따라서 독도를 정권의 작동을 위한 퍼포먼스로 전락시키는 현재의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
2008/07/17 16:58 2008/07/17 16:58
DrunkenSTAR 이 작성.

요즘

2008/07/14 16:29 / 생활

한참을 놀았더니 이를테면 책을 본다던가, 자료를 검색하고 모아 정리 한다던가, 깊이 생각한다던가, 노트에 또박또박 기록해 놓는다던가 하는 예전엔 습관이었던 것들이 도무지 성가시다. 에어콘은 줄창 켜 놓아 한낮 열기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데 의욕마저 축 늘어져 버렸다. 덥다는 핑계가 나로부터 성립이 안된다. 바보된 기분이다. 한창을 열중하던 일을 놓고 보니 비로소 내가 버린 것은 순도 100% 짜리 가치관 불일치, 부조리의 뭉치가 아니라 한부분의 거대한 생활이었던 것이 확실해졌다. 그러하니 발동 걸릴 시간이 필요 한지도 모를 일이다. 걱정 안하고 두었던 다른 모든 생활이 염려스러워진다. 이 일을 어쩌나... 성가시다고 죽을 수도 없고, 살아야 할 일은 살아야 할 일인데 겹겹이 좋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예전에도 있었다. 그때는 쫄딱 망했었다. 그때를 통해 자양분이 되었다면 최소한 망하진 않겠지 싶지만, 두려움... 이건 여전하다. 머리는 각성이 되는데 심장은 개조가 불가능한가 보다. 바람도 안분다, 옥상에 너른 빤스라도 날리면 그 희망에라도 기댈텐데. 소주 세병만에 인사불성이고 담배가 하루 두갑으로 늘었다. 지방간은 한캔 제대로 자리를 잡는 듯 하고 예전엔 쉬었던 사람들이 요즘은 왜이렇게 어려운지, 가슴속이 온통 공황이다. 나에게는 이미 IMF 가 온 듯.

2008/07/14 16:29 2008/07/14 16:29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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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나서 주셔서 너무 기뻤다. 게다가 진보성향의 기독교 단체와 불교계까지, 시민들은 한동안 다치지 않았다. 이제 7월5일이 되었다. 그간 두달 동안 노무현이 고향마을에서 막걸리 취기에 적어도 촛불에 있어서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파렴치 따위는 초월하게 되었다. 누구나 고향마을에서 불알친구들과 막걸리 한잔 하면 자신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변명할 수도 있고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두루 '방법'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파렴치를 잊고 말았지만, 대추리에서 수십명의 시민이 군과 경찰에 다굴 당하고 시내 한복판에서 농민 전용철, 홍덕표가 집회 도중 사망한 그때가 지금보다는 민주주의가 더 있었다고 추억한다. 노무현은 UFO적인 인간이다. 미확인된 이념으로 작동하는 인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현실이 아니다. 최소한 우리가 그를 추억하는 한 말이다. 민주주의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조금 다른 것은 지금 거리의 무브먼트가 직접적인 사적이익의 사안인지, 조금만 비켜서면 충분히 무관심해도 될 사안인지의 차이다.

정권이 시위의 불법성에 대처하는 폭력적 자세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때는 군과 철조망도 동원되었고 두명이나 비명횡사했다. 어청수가 지금 사용하는 물대포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사회적 인간의 폭발적 의지가 동일했을 때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이나 될까? 그건 그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가에 달려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크기에도 관계가 있다. 집회는 언어의 근원과도 일치한다. 의지는 언어를 생산하고 언어는 인간들끼리 모여 대화를 통해 작동한다. 모이지 않는 이상 의지도 언어도 집회도 아무것도 일어 나지 않는다. 10만명? 20만명? 이 정도 인간이 모여 집회를 할만한 공공 장소가 서울에는 없다. 조중동이나 이명박 일당이 말하는 합법적 집회란 인도에서나 가능하다. 선거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가 모두 완성될 수는 없다. 뽑았으니 믿으라는 교조적인 담화는 소망교회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민주주의의 의지는 이명박이 말은 할 수 있어도 절대 실천할 수 없는 소통에 있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모여서 대면해야 하는데 도대체 서울엔 이 강력한 인간의지가 모일 장소가 없다. 그러하니 어떠한 철학도 필요치 않은 무리들은 이 부분만 물고 늘어지며 불법, 위법만을 강조하면 된다. 철학이 없으니 불법말고 다른 논리를 만들면 더 추해진다.

미국산 쇠고기, 이명박 퇴진과 함께 폭력 비폭력은 거리의 절대 화두 중 하나다. 폭력과 비폭력은 촛불을 든 시민들만의 화두는 아니다. 저들, 즉 권력을 비호하는 일당에게도 그런 비슷한 화두가 있다. 철학은 없고 더러운 기름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불법에 대처하는 그들의 기계적인 폭력말이다. 거리에서 공권력은 권력을 지키는 경찰로 대리된다. 이 나라에 공권력이란 장애인과 여성, 노인은 카메라 없는 곳에서 패라고 명령하는 직업경찰과 멋도 모르고 인간들을 족치는 2년짜리 비정규직 전투경찰더미가 전부다. 솔직히 그 거리에서 나쁜놈은 몇명 밖에 안된다고 구분하는 시민을 보면 성자를 보는 듯 하다. 나는 그만큼 넉넉한 오지랖을 가지지 못한 것 일까. 촛불을 든 시민 중에도 나쁜놈과 좋은놈이 있다고 구분이 가능할까. 어청수는 가능하다고 한다. 물대포에 형광물질을 넣어 뿌리면 물대포 맞은 놈은 나쁜놈이라고 구분 가능하다고 한다. 촛불소녀가 웃는다. 저는 나쁜년인데요.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민과 방패를 든 경찰로 나뉜다. 이건 의지와 명령의 차이다. 육체를 타고난 인간은 어차피 그 자체가 폭력이다. 우리가 나눠야 하는 것은 폭력과 비폭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어떤 폭력이냐는 구별이 가능해진다. 여성을 넘어 뜨려 발로 차는 인간이 있다. 그냥 쳐다 보는 인간과 발로 차는 인간의 면상을 후려치는 인간과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 좁은 도시에 10만, 20만이 더 많은 사적이익을 도모할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모일 만큼의 언어가 작동하고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인간 의지가 있다. 이것을 불법이라는 집시법 위에 두고 이 인간들을 토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정자들이 그 민주적 의지를 제단할 수 있을까? 폭력이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폭력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역사이며 역사가 오늘을 비춘다. 명령이 의지를 이겨 본 적이 없다.

이제 오늘 국민이 승리 했다고 선언하자고 한다. 900여명이 강제연행 되었고 10명이 구속됐다. 미국산 쇠고기는 유통되고 있고 조중동은 여전히 설레발치고 있다. 이명박은 뒤에 숨어 대폭 개각할 듯 하더니 소폭 개각하고 지들끼리 재신임 중이다. 거지 같은 인권은 동물적으로 변질되고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과 통신은 각종 탄압의 전조를 울리고 있다. 게다가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대중들을 위해 공약한 이명박의 대표적인 공약인 747 은 미국소 주저 앉듯 앞대가리 부터 4로 시작할 조짐이다. 우리는 무엇을 승리한 것일까? 신부님, 마음속에서 그렇게 가다듬고 외쳐야 하는 건가요? 고해성사 하듯요? 우리는 아무것도 승리한 것이 없다. 앞으로 시민들이 계속 촛불을 들 것이니 조바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나마 주최자인양 하던 국민대책회의도 뿔뿔이 흩어 졌다. 어느 누구도 음향기기나 무대차를 촛불집회에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의지가 있다. 시민들이 더 다치지 않게 승리를 선언해주시는 32인의 지식인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감사하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월드컵 그날 처럼 시청광장에서 미쳐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도 며칠 촛불집회 하다가 물대포 맞고 방패에 찍혀 백병원 들락 거리다가 어느날 승리를 선언해 버리고 말 것인가? 아직 우리는 승리하지 않았고 의지가 남아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인간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 따위를 할 것이 분명한 미래지향이 이 거리에서 목도 되고 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승리를 선언하는 고해성사에 반대한다.
2008/07/05 03:08 2008/07/05 03:0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