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루머를 들은 적 있는, 할 수도 있겠지 하던 막연한 세계를 전속력으로 우리 앞에 끌어다 놓으신 신묘한 분이 계신다. 이명박이라고, 대한민국의 서민들이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부러움을 이미 몸소 실천하여 누리신 분이다.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증명된 온갖 특혜는 모두 찝쩍거리시더니 단물 빠진 자본 권력을 뱉고 정치 권력을 잡아 보시겠다고 한다. 특혜와 성역으로 퀄트된 이런 분이 대통령 되도 되나? 그 퀄트를 찢어 골고루 나눠주시려나.
자기 돈 자기가 쓰는데 누가 뭐라 해, 기업 CEO 였던 양반이야 국가도 기업이라는 논리에 빠지지 않는 준거는 '잘 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잘 살고 싶은 서민적 생각이 지금보다 더한 윤택함을 추구하고 이러한 생각을 공정하게 비판할 수 있는 마땅한 재료가 없는 마당에 기업처럼 국가를 운영하여 평균 연봉 7~8천짜리 공기업처럼 만들고 거기다가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기필코 경부운하를 뚫어 내어 환경도 좋게 하고 관광도 할 수 있게 해준다니 얼핏 우리나라 만만세 필이다. 모두가 풍요로우니 저절로 복지가 되고 민주주의도 이룩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이데올로기적 민주주의에 대한 채감이 거의 없는 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그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직접 투표로 뽑는 지점에서 멈춘다. 수많은 사상가, 정책입안자, 학자, 정치인들의 복잡한 이론적 민주주의의 커튼을 치운 민중적 민주주의란 누구나 먹고 일하고 교육 받는 환경을 말한다. 하지만 동시대의 인민들에게 이러한 민주주의는 경제를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민주주의 속에 인민을 잘 먹이고 입히는 개념이 빠질 수 없지만, 민주주의의 공화적 의미 즉 공공성과 공동체적 선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사회가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다.
민주주의를 바로 경제로, 자본적 자유로 인식하는 사회에서는 이명박과 같은 공공의 적이 순순히 부러움의 대상, 성공한 사람쯤으로 대접 되는 이치가 성립된다. 세계를 짧게 인식하는 사회일수록 잘 사는데 필요한 비용의 획득을 노동 그 이상의 가치로 여기고 소비에 대한 책임보다는 무한대의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자본의 무한 자유가 사회적 복지를 가져올 것이란 정치적 발언은 보이지 않는 손을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는 자본이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가에 밀집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과정을 지켜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으로 특혜를 맛보고 온갖 비리로 자본축적의 영웅적 과정을 거친 이명박씨에 열광하는 이성이 마비된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에 목마른 기업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하는 사태를 보면서도 국가를 기업처럼 운영해야 한다는 이명박씨의 약속에 수긍하는 정체성을 상실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강자의 세계관으로 무장된 지도자가 반드시 추구하는 것은 강자 중심의 사회, 즉 민중을 경쟁만이 존재하는 관계로 규정하고 강자가 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도구를 철학하는 것만이 삶의 이유가 되는 무시무시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좋은 정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정부이다.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논리와 강자의 생리가 의식화된 이명박씨가 과연 좋은 정부를 만들고 민중적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 있는 자인가? 이명박씨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이것은 보편적 상식을 넘어 명백한 진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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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애초부터 정규직은 없다. 노동을 할 수 있어도 자본이 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노동을 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의 존재는 비정규직이고 언제든지 버림 받을 수 있다. 노동을 하는 자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소외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연대와 투쟁, KTX 승무원들이 현재까지 견디는 방법이다. 오늘 이랜드 사태에도 노동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작 연대와 투쟁 뿐이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페이소스인 KTX 승무원과 월급 80만원을 지키기 위한 우리 어머니들이 이토록 투쟁을 벌여야 하는 사회는 명백히 재앙이다. 오늘날 이랜드 사태를 통해 노무현 정부와 이상수 등을 규탄해야 할 의무는 우리 모두의 당연한 몫이다. 하지만, 불행이도 이러한 운동적이며 공공적 책임에 무감각한 부류도 역시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는 엘리트 화이트 칼라들, 취업 공부만 있을 뿐 직업 공부가 없는 대학생들, 여전히 로또로 인생 역전만 희망하며 현실과 현장을 직시하지 못하는 소시민들의 존재 부정이 이들의 투쟁을 자신들의 불편만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얼마나 악랄한 패러독스가 가득한 세상인가, 기업과 자본에 봉사하는 법안을 만들어 놓고 일명 '보호법' 이라는 수사로 진실을 가리고 그게 두려워 비정규직을 공권력이란 폭력의 이름으로 때려 잡는 사회가 과연 인간이 살만한 사회인가. 우리는 무엇으로도 투쟁할 수 있다. 이랜드가 130억 헌금으로 모시는 그 잘난 예수보다 더 신성한 노동으로 존재를 규정할 수 있다. 우리의 신성한 가치는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명백한 생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정규직 아니다. 잘 사는 것을 돈 잘 버는 것으로 규정하는 당신, 정규직이라며 안도하는 당신, 잘 생각해보라 당신 정규직 아니다. 안이한 생각을 거두고 자본과 권력의 폭거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이랜드 사태를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마초 속에 남성 우월과 남성 권익 보호가 분리되어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 전원책과 같은 악질 마초주의자의 거성 선언 따위에 타이거 마스크를 쓴 대한민국 남성들이 열광한다. 그동안 마초 만큼 악랄한 패미니즘에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시간을 보상 받으려는 몸부림은 처절하고 눈물 겹다. 군대 가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감히 앉아쏴들 한테 2% 우월한 지위 내지는 권위조차 보장 받을 수 없다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토로한다.
남성들이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위치에 남성다움이란 사회적 위치를 주장할 때는 대게가 여성의 여성다움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다움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지점에서 불거진다. 남성이 하는 일에 감히 여성이 끼어드는 불쾌한 감정에 변명을 늘어 놓자면 대체로 생리하면서, 임신하면서 남성의 일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들 뿐이다. 군가산점 논란의 원초적 문제인 군대 갔다 오는 일이 생리하면서 임신하면서 할 수 없는 일이고, 고로 남성의 영역이며, 소위 남성만의 뺑이치기에 대해서 사회적 존경심이 겨우 2% 인 것은 공무원 시험을 볼 남성의 입장에서는 기가찰 노릇인 셈이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 대립을 극복할 수 없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대립으로 마초와 패미니스트를 출범시켰다. 지배와 피지배의 봉건적 갈등을 넘어 점잖케도 각자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하는데, 군대 갔다 온 것을 무슨 대단한 남성다움쯤으로 생각하는 부류나 아무대나 생리며 임신을 갖다 부치는 부류도 매한가지로 글러 먹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남성은 여성이 지킨다며 씩씩하게 군대가서 엄마며, 여자친구 생각에 눈물 흘리는 대게의 장정들이 휠씬 건전한 마초, 건강한 보수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건전한 마초들을 악질적인 사회적 마초로 변질시키는 것은 그들 자신의 실재적 고생이 실은 헌법적 의무가 아니라 100분 토론 같은 데서 남성과 맞짱뜨며 감히 남성의 일에 왈가 왈부 하는 여성 때문이라는 인식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러한 인식을 불쏘시게 하는 골수 마초의 역할은 더욱 갈등 구도로, 흑백 구도로, 상식선을 넘어서는 공상적인 주장을 펴는데 있다. 최근 이러한 본좌적 역할을 이끌어낸 전원책이란 양반이 그러한데, 마초의 진영에 영웅으로 떠오른 이 분의 주장은 대게가 인간의 평등을 크게 훼손하고 평등과 차별을 정리하지 못한 남성적 열등감에 매몰된 빈약한 상상력으로 떡칠이 되어 있다.
어중간한 중도 따위를 버려야 하는 극단적 노력은 가상하나, 가정을 지키는 것과 억압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군가산점 논란에까지 대입 시킨 마초 특유의 일갈거성은 폭력과 상식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군전역자들에게 여성 때문에 군대 갔다 왔고, 게다가 2%의 자존심도 지킬 수 없게 된 절박한 대결에 대동 단결할 것을 선언한다. 전원책의 해로움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빈곤한 상식과 구태에서 한발작도 전진하지 못하는 시대 의식이 거성이나 본좌라는 천박한 대중적 이미지로 포장되어 모든 남성, 전역 남성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하겠지..
이미 위헌이 된 2% 논란이 상식이 아님을 주장하는 그에게 상식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라는 점을 충고 하고 싶다. 더불어 나는 여성을 싸잡아 하등 생물 쯤으로 비하 하는 전원책의 발언을 비아냥 거린 이안이 통쾌하게 느껴지던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온통 신세를 진 기분이다. 신세가 대체로 폐를 끼치는 일이다 보니, 결혼이 지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란 내가 아는 모든 삶을 한자리에 모아서 정중히 신세를 짐을 인사했다는 것이다. 겨우 두 세시간만에 삼십칠년 생활을 구겼다가 편 기분이다. 진선생님 앞에서 후들후들 다리가 떨렸던 이유는 아마도 곧 뒤돌아 내 현재와 과거를 한꺼번에 맞닥들여야 할 먹먹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는 의지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상황이 행동을 조율하는 곳이기에 나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행동했고 퇴장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는 예의 바른 결혼 멘트는 식상하다. 수많은 역할모델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애써 감당을 회피했던 '노릇' 이란 전통적인 굴레를 좋고 싫고 혹은 옳고 그른 어떤 느낌이나 인식도 할 수 없는 순간, 왜 사람들이 여행갈 생각 밖에 안난다는 욕구에 매몰될 수 밖에 없는지 깨달았다. 결혼을 하며 그토록 전통과 고정관념을 거부하며 사는 어떤 타인의 삶이 결코 간단치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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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2007/07/28 17:08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남을 헐뜯는 분이라면 나라님이 될수 있겠는지요
정정당당하게 비젼과 지도력으로 승부하면 국민들이 짜증안날것입니다
남 똥구멍만 조사하는 것을 국민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경제를 살리느냐 죽느냐 인데 말입니다
88올림 같은 특수가 경제를 살릴수 있다고 다들 말합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88보다 5배의 효가가 있다고 합니다
경제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필요합니다
DrunkenSTAR_JACK 2007/08/01 09:24 편집/삭제 댓글 주소
사람들이 그럽니다. 그렇게 허물을 캐서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그런 분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은사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 오신 분들이 계시는 거죠. 경부운하 따위에 매몰되신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