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달전, 구글로 부터 들어온 인바운드 영업에 대해 회사 내에서 말이 많았나보다. 언어가 달라도 구글 유저 인터페이스의 아이덴티티는 글로벌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와 문화의 발전은 다분히 자생적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인터넷을 닮아 있지 않고 기술의 진보 측면에서도 결코 그들과 뒤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이나 서비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한국적 상황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패턴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라는 점이다. 그동안 200억에 달하는 R&D 투자를 계약하고 여러 포탈 업체의 인수설까지 가십되던 구글의 한국 시장 진출 전망에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 중에 하나가 바로 구글의 메인페이지와 검색 결과 페이지의 새로운 구성이었던 것은 업계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회자된 이야기다.
즉, 검색 포탈이 주도하는 한국의 인터넷 시장에서 검색과 다양한 사용자 어플리케이션 통합 위주의 구글 전략을 일부 수정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사업 방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라는 점은 http://www.google.co.kr 의 모습에서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을 유지할 경우, 구글은 여러 나라에서 적용하고 있는 전략을 한국 시장에 그대로 도입하여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변화를 꾀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전세계 검색 시장의 60% 를 차지 하고 있는 구글의 고자세가 중국의 보안 당국 앞에서 그들의 민주적인 철학을 버린 사례는 비즈니스를 위해 얼마든지 현재의 구글에서 변화할 수 있다는 탄력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까? 구글이 한국의 몇몇 웹에이전시에 검색 서비스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한국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제안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와 같이 접수 되었다.
구글의 영업 문의를 드롭(영업, 제안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용어)결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영업이나 제안 요청을 접수 받고 참여를 결정하는데 검토해야 하는 지표는 대략 1)사업성이 있는가? 즉 사업을 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 예산이 있는가? Profit 을 낼 수 있는가? 라는 기본 사업성에 관한 Check Point 를 만족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2)내부 자원이 있는가? 즉 사업을 수행할 인적 물적 자원이 있는지 파악한다. 자원이 있고 없음 뿐만 아니라 자원은 있되 해당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자원인가 판단한다. 3)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즉 단기적으로 사업성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영업 시너지를 높일 수 있으며 향후 어떤 시점에 이익을 날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있거나 직접 수익이 아닌 간접 가치가 증대될 수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우선 순위는 당연히 사업성이다.
제 아무리 구글이라도 없는 건 없는 것이다. 구글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삼는 입장이라면 구글의 사업역량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구글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한국적으로 개편하는 프로젝트, 즉 구글 유저 인터페이스의 로컬화라는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로컬화를 통해 구글이 이룰 목적과 그 사업 자체를 논하는 입장 과는 별개로 취급되어야 한다. 예산은 있는가? 견적을 보고 결정할 것이란 말은 일단 예산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일정은 어떻게 되는가? 보고하고 협의 중이란 말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란 뜻이다. 당장은 살펴본다는 말은 아직 의사 결정도 타당성 검토도 내부적으로 진행중이란 뜻 되겠다. 언제 할지도 모르는 사업에 사람을 투입시키고 보는 것은 경영상의 도덕적 해이와 진배 없다. 의사 결정은 어디서 하는가? 구글의 글로벌 특성상, 당연히 이 부분은 탑메니지먼트가 결정할 사안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최고 의사결정권자까지 공유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그것만으로도 몇달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 즉 사업 의지가 약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게다가, 구글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단기간안에 한국적으로 바꾼다는 전략은 포탈화 전략이라던가 서비스 전략 차원에서 검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고부가가치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전체 사업성은 매우 떨어진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자원은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구글의 의사결정이 글로벌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언어 소통 가능자가 필수일 것이다. 투입 예상 인원 중에 단 한명이라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런 자원이 없다. 구글의 파급효과상 많은 유저들의 평가에 직면해야 함으로 상당한 수준의 HCI 및 UI 지식 베이스와 함께 상당한 숙련도의 기술자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당장은 그런 수준의 기술자가 없다. 이왕 노동임금을 받고 하는 것이라면 잘해야 하는 것이 상호간의 비즈니스 신의일텐데 내부 자원이 아주 없기도 하고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도 하여 뺄 자원이 없다면 본 프로젝트를 할 수 없음으로 결정한다. 이런 저런 판단을 유보하고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것도 경영을 하는 사람으로써 일종의 직무유기다. 마지막으로 전략적인 판단에서 구글은 네이버 보다 휠씬 매력적이다. 하지만, 앞의 두가지가 너무 충족이 안되는 경우, 지나친 욕심은 판단을 흐릴 수 있다. 본 건에 대해서는 아깝긴 하여도 이번엔 상황이 허락치 않으므로 드롭이다. 다른 프로젝트를 잘하고 있고 그리고 계속 잘한다면 기회는 있다. 없어도 지난 일을 아쉬워하지 말고... 따라서 구글의 제안을 드롭한 이유가 되겠다. 사업성 판단해서 안되는 건 구글 할아버지가와도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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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대게가 지루한 일상사에 마치 찬란하게 빛나는 스릴과 일탈을 대리만족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각자 경험했던 현실의 일탈을 대비시키는 재미가 솔찮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라마의 구조가 출생의 비밀, 삼각구도, 근친상간과 같은 소재를 비켜가지 못하고 나름 세속 친화력을 과시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티비 드라마를 교양머리 없는 군상들의 수다 쯤으로 격하시키는 사람들에게 하얀거탑은 그야말로 거탑이 아니라 적당한 눈높이를 제공한다. 인생에 그 따위 세속적 구도는 정말 수다일 뿐이고, 시종일관 진지하고 야망을 향하는 인간들의 권모술수가 비단 정치권이나 높은 계급의 전유물이 아님을 신중하게 읆조린다. 물론, 해방이후 우리 사회에서 의사란 계급이 하찮게 취급 받아온 적은 없지만... 적어도 계급간의 갈등이 아닌 계급 내의 정치적 술수가 어떤 거대한 이념적 의미를 가지지 않고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임을 티비 드라마가 얘기한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할만 하다. 정치도 세속의 일이다, 다만 정치적이란 의미가 정치를 한다는 어느 한 계급에 국한되어 회자되었고 게다가 정치계급을 대체로 참 나쁜 계급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에서 일상적이고 일반화된 정치적인 관계를 티비 드라마가 정치적으로 풀어 내어 진지한 재미를 준다는 것이 나름 상쾌하다. 적어도 이런 상쾌함은 김명민이나 김창완의 출중한 연기만으로 아우라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랜만에 볼만한 드라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매해 1월 전사 워크샵을 통해 앞으로 1년간 회사의 사업계획과 단기적 전략과제를 발표하고 공유한다. 전략 부분은 내 담당이기에 한창 전략 보고서를 다듬고 조율하는 중이다. 전략을 세우면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절차와 Activity 의 구성이다. 전술적 절차에는 대체로 도입기, 성장기, 평가기 등의 단계를 거치는데 이러한 구성에서 언제나 걸리는 부분이 평가기다. 희망차게 출발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평가하여 수정하거나 발전시키고 평가에 따라서는 폐기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전략을 수립한 자가 평가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맞지 않다. 피평가자가 평가의 기준을 마련해본들 책임을 회피할 수단을 기준 안에 만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희망찬 수립을 해놓고 냉정하고도 치밀한 평가 기준을 마련할 만큼 인간은 겸손하지 못하다. 나 또한 수립한 전략의 모든 부분을 구성해 놓았지만, 평가 단계만을 빈칸으로 방치하고 고민중이다.
집사람이 바람을 피워도, 방명록에 댓글이 안올라와도 그 탓을 '노무현 때문이야' 로 돌리는 세상에서 그 당사자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겠다, 작년에 이미 포기했다 고 말하며 당당히? 맞섰다. 대중이 여론 형성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댓글에 대한 취급이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역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관념을 배제한다고 해도, 평가를 포기하고 스스로 독불장군을 선언한 대통령의 자세는 시정잡배의 시덥지 않은 짝다리와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임기 초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은 언론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집권 정부와 보수 언론이 다루는 사회 현안들(한미 FTA,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비정규직 문제, 새만금 사업, 사회 양극화 등등)이 기본적으로 같은 인식의 틀안에서 정책적으로 반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서로를 공격하고 공격 당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 하다. 따져 보면 노무현 정권이 보수 세력과 다른 정책은 두가지, 전시작전권환수와 햇볕정책 밖에 없다. 결국, 노무현 정권은 보수 세력과 정책적으로 코드가 맞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이 노무현 정권을 탄압? 하는 이유는 이미 그를 좌파로 규정했던 원칙을 깨고 있지 않는다는데 있고, 영원한 친북세력인 김대중 정권의 대북 햇볕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는, 현재 집권 정부의 정책이 보수 세력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찰떡 궁합을 과시해야 할 때에, 무능이란 이름으로 정권을 비난한다는데 있다. 정책적 코드는 같지만, 추진 절차가 무능하다는 섬세한 지점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언론을 비롯한 보수 세력이, 어쨌든 그들의 원초적 본능인 기득권 수호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는 지점은 대게가 대북 정책부분과 인사 말고는 거의 없다. 노무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한 그들의 정신 세계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진보 세력에서는 일찍이 노무현 정권을 좌파로 규정한 적이 없다. 이는 진보세력이 좌파 정권이라 규정하고 동의한 적이 없는 노무현 정권을 보수 언론의 강력한 무가지로 떠밀어 낸 결과이거나, 진보세력이 노무현 정권과 충분한 거리를 두는데 게을렀다는 증거가 된다.
노무현 정권은 그들에게 최대의 적은 언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언론은 우리 사회의 불량식품이란 정의를 만들어 냈다. 국정 파탄의 원인에 있어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보며, 언론에 대한 불량식품의 정의가 노무현 개인의 인식인지 정권의 인식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이쯤되면 분열도 이만저만한 분열이 아니다. 독재와 독불, 파탄과 시행착오의 단어적 차이를 넘어서서 인간의 뇌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판단이성을 잃어 버린 외로운 야생짐승의 목놓은 울부짐과 흡사할 뿐이다. 4년전 노무현 정권을 출범시키고, 탄핵을 온몸으로 막아 섰고, 집권정당에 과반수 의석을 밀어줬다. 대게의 대중적 국민들이 행사할 수 있는 참정권을 모두 사용하여 정권의 탄생부터 그를 밀어주고 막아주었을 때 밥벌이가 가장 숭고한 서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인간답고 숭고하게 살고 싶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참정권을 다 사용한 정치적 대중과 밥벌이가 숭고한 경제적 서민에게 개혁법안은 고사하고 민생법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집요한 양극화의 덜미는 서민을 더욱 뒷걸음질치게 하고 나서야 이제 바라는 것이 평가에 관심 없다, 즉 간섭하지 말라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최고 권력자가 더 이상 평가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독재가 아니고 단순한 어려움의 토로일 수가 있을까? 평가 받지 않는 자가 세우는 정책이 어떻게 민주적일 수 있을까? 사회의 생산과 체제를 새롭게 편성해 나가기 위해 세운 전략이 비전 2030 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을 모델로 세운 이 전략을 거들먹거리면 응당 보수 언론에서 반색을 하고 사설이라도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 만능주의로 가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부치면서 벤치마킹 대상이 초자본주의, 패권주의, 극우세력이 득실대는 미국과 일본이라며 공공연히 밝히는 것을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냉수 마시고 속 차리길, 중요한 건 경제가 아니라 사상이다. 사상은 사회와 민생을 돌보지 않은데 그 빛깔을 낸 정책을 만들려니 그 과정에 무능이라는 보수세력의 단어가 창궐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토록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단정하건데 보수 우파가 이번 대선에서 집권할 것이다. 물론 그곳에 단한표도 던질 생각이 없지만, 이 부분은 명백히 노무현 때문이다. 지킬 기득권도 없는 밥벌이만이 숭고한 서민들조차도 사회적 분배와 평등의 가치가 경제성장보다 우선에 서지 않는다고 판단하게 됐고, 기득권에 기생하거나 경쟁적으로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야생적 패배주의가 만연한 사회로 만드는데 있어서 결정적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 그가 평가를 포기하고 평가 받지 않겠다는 토로는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면책하겠다는 알량한 포석일 뿐이다. 그가 이제 부터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립싱크는, 립싱크 자체다. 즉, 입닥치고 있는 것 뿐이다.
나도 그만 입닥치고 겸허하게 전략에 대한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겠다.
어찌 되었던 2006년을 각설하고 2007년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지각을 하였고, 미천한 내 직업관은 2006년 12월31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울함으로 가득했다. 한해의 첫날은 지난해의 모든 상념과 풀리지 않은 갈등만을 각설하지 않는 듯 했다. 올해의 첫날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가 오직 지난해의 삶만으로 각설될 수 없기에 하루를 사는 것은 지난 37년이 기억나지 않는 담담함과 무거운 시간의 속력으로 요약되어 달려오는 것을 온몸으로 받기 위해 단단하게 버티려는 신음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올해는 내년 이 시간에 각설될 38년의 순간들을 생각하며 힘을 쭉 뺀 한해를 보내는, 그야말로 가벼운 계획을 세워본다.
그러고보니, 정말 나에게 필요했던 영양제가 이 힘빼기 였지 않았을까, 한번도 힘뺀다는 생각이나 계산을 해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특별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기 위한 가식적인 노력들을 하지 않으면 그 에너지를 그동안 느껴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곳에 쓸 수 있겠구나 까지 염두에 두지 말고 ... ... 가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까지 깔끔하게 끊어 보는 힘빼기. 사실 뒷부분은 다소 정치적이다. 게다가 힘뺀다고 생기는 에너지가 생체적으로 분량을 가늠할 수 없는 열정 같은 것일 테고 그것을 어디 다른 곳에 써야 한다는 염두 자체가 갈등이다. 완전연소되는 매카니즘을 만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 완성을 위한다는 명분 때문에 담보물이 필요해졌을 때, 그때 나의 자세는 분명 힘빼기의 본질과 다를 것이다.
어차피 내 인생은 그렇게 앞서 가지도 잘나지도 않았다. 다만 누군가가 내 인생을 과대포장해주는 것을 말리지 않은 것은 암묵적 동의와 같고, 그 동의 앞에서 과대포장을 더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소스를 조금씩 떨어 뜨리는 행위는 마땅히 반성하고 비판 받아야 한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에 대한 어떤 접점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행여 남들로 인해 키워진 나의 사회적 어떤 명예가 있다면, 그것을 적정하게 제한하지 않은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과장된 지위를 이용하려는 속셈으로 귀결지을 수 있다.
나는 매우 정치적인 인간이다.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이 다른 개인이나 조직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다. 사건이 미칠 영향을 흘려 보내거나 이용하고 제한하는 활동을 함으로서 조직 내의 여러 사안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예측하고 관찰한다. 나는 이 모든 활동을 파워게임으로 규정하였고 그 동향을 예의 주시하여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가치를 판단하고 분류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 나의 촉수는 온힘을 다하였다.
생각해보니 나의 인생은 대체로 사회적인 관점에서 지각생이다. 대학도 늦게 갔고, 군대도 늦게 갔다. 게다가 금융기관에서 조차 거래를 꺼려 하는 미혼인데다가, 이념적으로도 지각생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가열찬 관념보다는 더 배울 것이 많다는 낭만주의에 아쉬운 소리를 할 참이다. 지각생이니 많은 부분이 독학이다. 하지만. 부처가 아니니 깨닫지도 못했고, 공자가 아니니 고개를 숙이지도 못했다. 힘을 빼면 자연히 비워지고 뻣뻣했던 것들이 물렁해질지는 아직 모른다. 겨우 각설한 한해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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