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나다

2006/05/29 20:49 / 생활

2박3일동안 술을 마셨더니,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에 쉽게 걸렸다. 이제 이 정도도 못 버티는 구나 싶었는데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함부로 남의 인생에 끼어 들지 않는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부족한 내가 배우고 알아가고, 무엇보다 억지로 손목을 끌어 깃발을 들게 하지도 않으면서 나의 한발작 한발작 문턱을 넘는 조심스러움 탓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새벽 꼭두서니 빛을 맞으면 이제껏 토해놓은 온갖 담론들이 뱀파이어의 몸뚱아리처럼 분해되어 날아간다. 지금부터 아침을 맞이하는 이웃들을 위해, 그리고 다음에 만나 또 같은 담론을 꺼내어도 새벽까지 토론할 우리들을 위해, 날아간다.

낮술, 대담해졌다. 도봉산에서 생두부에 막걸리로 브런치를 흉내내며 대낮 날강도의 대담처럼 꺼리낌이 없다. 더군다나, 누구 들을까봐 눈치 씀씀이가 쓰이는 대화에는 전통적인 술법보다 신묘한 갑자를 발휘한 낮술을 권할만 한다. 하지만, 압구정이란 곳은 도무지 소스라치는 소나기와 낮답지 않은 어둠에 낮술을 할만한 곳이 못된다.

짝패를 보기 위한 낮술이 덜 된 탓도 있고, 사명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안국동 사막으로 스며드었다. 동갑내기 주인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좋고, 원룸 주방 같은 데서 내오는 맛없는 참치김치찌게도 그런데로 봐줄만 하니까, 그 스산한 골목을 찾는다. 무엇보다 도기다시 계단에 멋대가리 없이 발라놓은 타일을 볼때마다 앙금이 스며들고 상념이 침잔하기에는 이만한 데도 없다는 생각이다. 진짜 사막에 대한 눈물나는 추억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아도 멀리 바람이 바람끼리 부닥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를 그런 날이면, 실연한 사내가 꾸역꾸역 노래 두곡을 부르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런 곳, 누군가 지나다가 생각없이 찾아 들지 못하게 맨구석을 차지한 사막은 그냥 그대로 가슴 시리다. 이곳을 알게 된 것도 술자리 좌파를 못내 미안해하는 이 친구 덕분인데, 청계천 5가에서 전태일 동상에 제사 지내고 서로의 동판에 막걸리를 붓자는 약속을 기어이 술마시기 2박3일째 되던 날 지켰다.

다 잊어 버려야 편안했던, 나의 꿈을 대신했던 인스탄트 식품들, 멀어져가는 사랑들, 애써 무심해버린 식구들이 쉬이 부패하지 않던 것처럼 그렇게 타박을 해도 온전히 안녕한 내 글쓰기를 시작해야 겠다는 다짐은 잊어 버리지 못해 불편하다.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다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2박3일을 견디고 건조한 병에 걸렸다.

2006/05/29 20:49 2006/05/29 20:49
DrunkenSTAR 이 작성.

저급한 세대가 되다

2006/05/25 15:40 / 생각

싹슬이를 막아주십시오, 열린 우리당의 집단적 자존심은 부서졌다. 하지만, 열린 우리당의 집단 이성이 순수하게는 사상으로 실천적으로는 정책으로 표상되는 바, 부시에게 easy friend 라는 모욕감 넘치는 대사를 받고도 치지는 못할 망정 사인하라면 모두 사인하는 작태를 부려왔고, 그로 인해 여전히 립싱크중인 양극화 해소에 양극화를 복잡 심화시킬 한미 FTA 를 그 해소책이라며 아크로바틱을 해댄다. 초유의 탄핵을 막고, 과반수 이상의 국회를 맡기고 나자 열린 우리당의 권력 감정은 똥싼후 기분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집단에게 무엇을 맡겨야 하는 의무 부여는 넌센스다.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들이 다시 내동댕이 칠 의무를 맡겨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권리를 가진 민중들은 어딘가에 대의적으로 의무를 복무케해야 하는데, 도무지 마땅치가 않다. 이것이 딜레마다.

1963년,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당시 대통령인 윤보선과 벌인 제 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의 무기는 사상검증이었다. 박정희가 영관급시절 남로당의 비밀연락책으로 활동했던 전력에 대해서 윤보선은 그가 빨갱이라며 민중을 선동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 좌익 활동을 하다 투옥된 사람들 조차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박정희를 찍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박정희의 좌익 경력과 그래도 윤보선 보다는 청렴한 인상이 퍼지면서 연민을 느꼈다고 한다. 박정희가 여순반란 사건 때, 그의 동지였던 비밀조직을 배신하여 모두 사형케 했던 일은 희석되고 역사의 패착을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보수, 기득권 계급은 윤보선을 좌익, 노동자 계급은 박정희를 지지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군복만 벗은 겉으로만 민정이양이 이루어졌다. 잘 알다시피, 그로인해 막연한 연민이 부른 결과는 지지층에 대한 폭압으로 이어졌고 역시 미국의 정책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민족으로 전락하게 된다.

열린 우리당이 가장 잘못하는 것, 아니 열린 우리당 내부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 사고를 조금이라도 집단적 이성으로 표상하지 못했던 시간은 결코 곱게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 아니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그 사고의 매개가 일관했던 국제관계의 얄팍한 이해와 민중의 목소리에 보낸 조롱 섞인 눈웃음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은 중도우파를 개혁진보세력으로 기득권화 시키고 지지층이었던 진보세력을 갈등으로 분열시켜 개혁우파, 또는 뉴라이트로 변질시킨 책임이 있다. 게다가, 진보라고 믿는 무모한 민중들과 역시 진보라고 믿는 자본교환적 학생들, 역시 진보라고 믿는 막연한 젊음들은 이 길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기득권은 애초에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니 제 계급만이라도 유지하려면 뉴라이트라도 되어야 하는 딜레마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40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민중의 낙후된 정치 의식도 단단한 몫을 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모두 같음에도 불구하고 제 정체성을 찾지 않는 의식은 자신의 계급적 현시에 반성은 하지 않고 더 나은 계급으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에만 몰두하게 한다. 딜레마라도 있는 자가 반골인 사회에서 보통은 의심 없고 호기심 없고 오로지 자기와 가족 그리고 돈의 이동과 구성에만 관심을 쏟는 사회가 되버렸다. 속한 집단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어 속히 집단과 같은 소리를 내는 정체성의 매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사고의 봉건주의화는 결코 시대착오가 아니라 명백한 견해로 봐야 한다. 즉, 정책을 보려해도 대세론에 끌리게 되고, 주체적이고 싶지만 미국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자신과 민족의 발견이란 오늘날 어렵지 않다.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분명히 목격하고 있는 현상들은 본래 위정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생활에 대한 문제이다. 월드컵도 좋지만, 그 블랙홀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역사로 부터 월드컵에 빠져 저항해야 마땅한 사안을 무시하고 민족의 못난 부분을 미워해본 적이 없는 저급하고 성찰 없는 세대로 불리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미, 열린 우리당은 민중을 배신하기 위해 스스로 변했으며, 민중은 우파, 매파가 되기 위해 줄을 선다. 이제 그들의 어용 투쟁에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희석시킬 파쇼의 데시벨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

2006/05/25 15:40 2006/05/25 15:40
DrunkenSTAR 이 작성.

엄기봉씨,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인물. 그를 도와주라고 대중이 난리다. 인간이 불쌍한 사람을 불쌍하다고 도와주는 것에 잘못이 있겠냐만, 동정으로 쏟아 내는 난리법석은 그야말로 부산스러운데다가 동정이 열병처럼 번지는 이유가 대중의 善 과는 관계가 없기에 불편하다. 대중의 관심이란 것은 대체로 상황에 맞게 열정을 뿜고 거두는데 용이할 때 일어나고, 대중의 선은 관심의 소실점에서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대게의 경우 남에게 열정을 전가시킬 수 있는 사안일 수록 빛을 발한다. 엄기봉씨를 도우라고 제작사와 신현준씨한테 떼를 쓰는 대중은 열정을 전가시키고 쉽게 빠질 수 있는 사안인데다가 인간적으로 기봉씨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동정을 펼쳤다는 자기안심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사안이 있을 수 없겠다.

KTX 여승무원들이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농성을 해야만 하는가? 포탈을 서성이는 네티즌만큼 많은, 서울역을 오가는 대중들은 그들의 얘기를 경청한 적이 있었는가? 사람들이 무리이룬 대중이라면, 그리고 그안에 선이란 것이 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열정이 책임이 되고 그때가 되면 용이하지 않아 걸음을 재촉한 자들이 행여 기봉이를 도우라며 떼쓰고 인간적인 자기위로를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2006/05/24 21:43 2006/05/24 21:43
DrunkenSTAR 이 작성.

번지 점프를 하다

2006/05/24 18:56 / 사진
철새들도 머문다. 텃새가 빈병에 소주를 조금씩 따라 한병을 만들며 발가락을 한개씩, 두개씩 잘라 가는 것 처럼. 철새들이 나알아~ 간다, 구름이 바닥친 하늘에 뿌연 햇빛 먼지가 배가 하얀 철새떼에 갈리고 나면 유행가 소리가 틈을 비집는다. 한탄강에서 자라는 씀바귀, 그 길 지나는 고독에게 나누는 말씀은 없고 노란 먼지 훌터 나알아간 철새며, 뛰어 내린 요절한 사내의 사연만 한움큼이라던가? 내가 나와 나눌 풍경이 점점 늘어 나는지, 점점 줄어 드는지? 모르는 야생초 이름 만큼 내일이면 또 모르는 야생초 이름의 씨앗이 풍경속에 자라겠지. 이렇게 풍경을 거니는데, 내 어린 날의 꿈도 고소 공포증의 이유도 만나질 못하니 나의 폭은 여전히 협소하다.
뛰어 내린 자가 외로워 보인다. 외로워야 한다면 차라리 고독해야 함을 알아 챈다.


이음말..
사람이 정말 싫어질 때마다, 뛰어 내리고 싶어진다.
논개정신으로다가... 대신, 난 번지고 넌 알아서 하시고...
2006/05/24 18:56 2006/05/24 18:56
DrunkenSTAR 이 작성.

어제 장충체육관에서 조갑제씨가 "2007년 우파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좌익들은 보트 피플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 했다네요. 조갑제씨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자꾸만 생각나는 당신의 책이 있습니다. 1986년에 쓰여진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입니다. 그 책의 머리말을 보면,

"어느 사회의 양식을 가늠해보는 한 기준은, "그 사회의 소수파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이라고 한다. 장애자를 위한 정부예산은 그 국가의 국민총생산(GNP)에 비례하지 않고, 그 국가의 민주화 정도에 비례한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민주화란 것은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고통받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수의 사람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이겠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조갑제씨가 어느 시점부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보트에 태워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만들 다짐을 하게 되었는지... 최소한 1986년 까지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가 술어하는 말에는 한가지 핵심적이면서 아날로그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지령 입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해방 한반도의 신탁이 결정되면서 북은 지령문을 남은 포고문을 내린 것에서 시작되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북한에서 쓰는 즉, 그 단어만으로도 공산당을 함유하는 단어중에 하나겠지요. 조갑제씨는 이 지령에 노이로제가 걸리신 분이 분명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그가 좌익이라고 목청 높여 부르는,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공산당, 국가 반역 세력들이라고 합니다.

지령이라고 하면 어디선가 받아야 하는데, 모 천하의 김정일이라고 해도 줄 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꾸만 머리속에선 띠띠딕 하는 모르스 부호 타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조갑제씨? 이게 텔레파시로 지령을 받고 있는 것인가요? 요즘에 제가 라디오에 빠져서 MP3 같은 것 다운로드 받지 않아도 음악도 듣고 개그에 웃고 하는 한발짝 뒤로 물러선 로망에 즐거워 하고 있는데 지령이라는 말에 건전지를 고무줄로 묶고 긴 스테인레스 안테나를 삐쭉 내밀고선 허름한 여인숙 이불속에 들어가 지령을 받는 공벌레 자세를 취해야 할지 말지 고민되게 하십니다.

아니면 다빈치 코드도 개봉했겠다, 저 같은 회사원이 퇴근해서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거나, 대추리에 가는 것은 천인 공노하게도 근무시간에 탐독한 오마이 뉴스나 프레시안의 기사속에 지령 코드가 들어 있어서 저도 모르게 국가 반역 세력으로 그 현장에 있게 된 것인가요? 오마이 뉴스 오연호 대표, 축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신묘한 재주가 있으셨네요. 기회되면 한번 물어봐야 겠습니다.

조갑제씨, 라디오에서 지령 나오는 로망에 빠져 계신다면 장충체육관에 바쁘신 어른들 모셔 놓고 "직위도 있고, 나이도 있는 만큼 가족과 주변을 바꾸라" 는 시대 착오적인 연설일랑 하지 마시고, 라디오로 그분들께 지령을 전하시는 것이 어떠시겠어요? 요즘 포드 캐스팅이라고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아서 MP3 플레이어로 들으면 걸어 다니면서도 당신의 지령을 들을 수 있는데, 매력적이지 않으세요? 오마이 뉴스처럼 신묘한 코드를 넣으면 더 좋겠지만, 다시 장충체육관에 어른들 모셔놓고 인터넷 접속하는 것부터 가르치려 수고하시지 않을까 걱정되서 한말씀 드립니다.

참, 마지막으로 저도 제가 쓴 글을 모두 모아두고 가끔 보곤 합니다. 그때 생각들을 다시 불러 들여 반성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제가 책 한권 권합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입니다. 저자는 조갑제 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죠?
2006/05/19 17:27 2006/05/19 17:27
DrunkenSTAR 이 작성.

정말, 빨갱이

2006/05/18 15:51 / 생각
그는 말 끝마다 양극화 해소를 얘기한다. 민중들이 그를 탄핵의 수렁에서 건져 준 직후,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2005년 6월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한다. 그를 구해준 국민들까지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 여보와 한 이불 덮을 수 없다는 본능적 배제에 부딛치게 된다. 그의 권리가 모두 정지된 한달동안 칼의 노래를 읽으며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필시 대연정 제안 후 그가 떠난 중남미 순방 중에 진지하게 그 자신과 맞닥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6년 1월, 그는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고 미국이 요구하는 길을 차분히 밟아 나간다.

그는 그가 믿어 왔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념들을 버리고 그가 경멸해 마지 않았던 역사를 추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원칙을 버린 그가 여전히 오롯한 것은 개혁이다. 액면 그래도 받아 들이자면 그렇다. 그는 무엇으로도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미군 기지에 둘러싸여 생존이 위협 받는 종속에서 벗어 날 수 없고,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에 맞설 사상의 연대는 현실에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제 입으로 양극화 해소를 립싱크하기로 마음 먹는다. FTA 가 양극화 해소라고 개가 웃을 개그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근본적으로 그가 믿는 것을 감추고 수단을 강구하기로 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FTA 를 통해 양극화를 대단히 심화 시킬 불온한 의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모든 비난과 모멸감을 감수할 준비를 했다.

그의 캐비넷은 구체적 징후가 아니라 실체적 현실로 FTA 를 바라보며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음을 얘기한다. 그가 준비한 것은 오직, 완전한 무엇을 이룰때까지 비난을 감수하는 마음의 준비 뿐이었다. 그로인해 미국은 안심하고, 보수 언론은 환영한다. 한때 그와 함께 진보에 복무하던 동지들에게 배반자, 개새끼로 남아도, 그는 완전한 개혁을 모색하며 정권이 아닌 목숨과 영혼을 내놓은 트로이 목마를 감행하고 있다.
그의 모반은 다름 아닌 계급 혁명이다.


그는 양극화를 극한으로 심화시켜 민중이 스스로 혁명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정말 빨갱이일지도 모른다.
2006/05/18 15:51 2006/05/18 15:51
DrunkenSTAR 이 작성.

술자리 좌파

2006/05/16 18:10 / 생각
강남좌파라는 부류가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기득권이나 혜택은 내놓지 않으면서 진보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부류라고 한다. 헐거운 무장으로 생활은 신자유주의적으로 생각은 좌파로, 그리하여 술자리에서 사회를 비판하며 한껏 취하는 나를 빗대어 얘기한 술자리 좌파와 수미상관이다. 그리하여 내가 권하는 사회는 나의 모든 진정성에서 나온 희망이 아닐 수 있고 어줍잖은 계몽의식의 초고에 불과한 의적행위로 반성하는 순간, 실은 이 순간은 최근 나의 모든 결정과 판단에 관계하고 있고 나를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반성이 끊임 없이 행위되어야 하는 당위는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보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자격 논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중대한 범위는 실은 생각의 권리와 범위이지 오로지 사적재산의 범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멈춰있지 않고 바쁘고 자유로울 때, 물질은 가야 할 곳, 공평한 쪽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나의 생각이 일단 그러하지 않고는 유물론적 가치관은 공평하지 않고 극히 사심에 의한 복무에 열중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도 현실과 괴리를 가지고 생각하는 방식은 이상주의의 조달이거나, 근본주의의 회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먹물의 기득권이라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기득권이라 규정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나는 사상과 글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새로 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이 터지는 것은 믿음을 가진 몇몇 선각자의 일이 아니라 같은 생각을 가진 민중들의 소통과 교통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일개의 민중으로 부터 내가 해야 할 일과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보잘 것 없고 어줍잖은 노동을 보태려 할 뿐이다. 내가 제도권에서 어떤 위치의 인간이냐는 입바른 명예욕과 경계지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주의가 오직 진보의 전유물은 아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가장 역사적인 철학은 이기심이다. 이로서 '여유있을 때, 세계을 둘러보겠다' 는 경제적 접근 방식이 현대를 지배하는 술어가 되었다. 세상을 둘러보는 물리적 여행과 세계를 둘러보는 사색과 의식의 범위를 쉽게 동질시 하는 안락한 금가르기는 만행에 가깝다. 인간이 오로지 이기적임을 규정하고 부터 시작하는 경제학의 토폴로지가 그 자체로도 불가능하며 우리는 편리함에서 수고스러움으로 가벼운 전환을 해야 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그것이 현대의 가장 원형적인 이상주의인 것은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그 만족이란 것에 접근할 수 없고, 단 한번의 붓그리기로 세상의 문법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본능적인 이기심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나의 담론은 선동적일 수 없다. 불평등한 기억에서 평등한 선동으로 맘 편하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령처럼 떠도는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를 붙들고 거대 담론을 타파하기 위한 선동으로 술자리를 이끌어야 하는 충분한 성량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감수성과 이성에 걸쳐 자본이 해결해준 것이 무엇인지, 자본의 순환고리에 매수되어 짐짓 외면 했던 이웃들의 제스쳐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모여 하나의 활동이 되고 현상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나마 좌파라며 떠들 수 있는 술자리를 조금씩 줄이면 소비가 기여가 되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첫걸음을 기반삼아 행여 큰 활동이 되려 노력하거나 강시처럼 이마에 경제적 면죄부를 붙이고 다니지 않고, 세상을 찬찬히 면밀하게 둘러보고 보잘 것 없는 손을 내미는데 그 노력을 거둬들이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2006/05/16 18:10 2006/05/16 18:10
DrunkenSTAR 이 작성.

노래를 불렀다

2006/05/13 13:34 / 생활
인사동 '천강...' 에서 사람들과 술에 취해 낮게
노래를 불렀다.
소금인형, 사랑하게되면...
탁자에 마주 앉아 우리는 낮게
노래를 불렀다.


탁자에 앉아 얼굴을 보고 노래를 부르면
금새 그 사람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진다.
그 사람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 같아 진다.


브라운관에 뜨는 가사를 보고 부르던 노래는
이제껏 노래가 아니었다.


그렇게 사람들과 낮게
노래를 불렀다.
우리 마음이 섭섭해진다. 그래서 그리워진다.
우리 마음이 그렇게 착해진다.
2006/05/13 13:34 2006/05/13 13:34
DrunkenSTAR 이 작성.

이체

2006/05/12 16:43 / 생각
Persona Non Grata (페르소나 논 그라타) 기피인물 또는 비우호적 인물 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지난 90년, 폭로된 보안사 사찰대상 디스켓. 개인번호 169번 문정현. 그의 "개인특성"은 다음과 같다. 전북지역 대표적 문제인물. 외고집에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저돌적 성격으로 "깡패신부"라 불리움. 3,4공화국시 반정부활동하다 실형 수형... 그랬다. 그는 늘 이쪽 편에 있었다. 한낮 땡볕 아래 민초와 함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유신철페, 반독재의 목소리가 수그러들고,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던 DJ가 대통령이 되었어도 그는 여전히 남은 자가 되기로 했다. 가진 자에게 있어 그는 늘 페르소나 논 그라타. 깡패신부 문정현, 그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일까? Pro Vobis Et Pro Multis!(프로 보비스 에트 프로 물티스, 너희와 모든 것을 위하여)
[노순택]


힘내세요... 그렇게 적어서 보내드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길꺼라고 보내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제 용기가 부족합니다. 촛불 몇개 챙기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빠르고 적극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우리땅 1평 지키기 모금계좌(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2006/05/12 16:43 2006/05/12 16:43
DrunkenSTAR 이 작성.

바야흐로 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영리한 혹자는 경기 시간대와 빼앗긴 광장으로 인해 거리 응원인파가 분산 되고 저조한 참여로 4년전만 하겠냐는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안으로 밖으로 빼앗긴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구가 싫어서가 아니라 지나친 열광의 대열에 끼어 광분의 도가니에 스멀스멀 녹아 내리기가 내키지 않고, 무엇보다 무분별한 민족주의에 기댄 기업들의 자본 창출의 분위기에 휩쓸려 입맞추기는 더더욱 마땅치가 않습니다. 다만, 내 정성껏 응원을 할 터 입니다.
4년마다 쏟아지는 막연한 애국심으로 인해 우리가 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취된 애국심으로 인한 증세 논란의 일축?, 붉은 연대의 승화를 통한 아픈 이웃들 챙기기?, 좀 비꼰듯한 것이 사실이지만 후반전 종료 휘슬이 울리면 이겼을 때와 졌을 때 다른 광기만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엄밀하게 우린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에서 탈퇴 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답니다. 반운동권의 총학 집권(?)의 공약이었다고 하네요. 약속을 지키는 모습, 좋습니다. 하지만 거기 꼬리표로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독재의 염증을 자본으로 풀려고 하는구나...
붉은 악마가 집단 응원을 통해 축구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면서 건강한 응원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중의 응원단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포괄적으로 이 주장에 동의 합니다. 그리고 지금 조급하지 않더라도 대안 체제는 반드시 등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행이도 붉은 악마는 정치적으로 독재이기 때문이지요.

서울대의 한총련 탈퇴도 마찬가지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지역 대학들이 90년대 후반부터 한총련 산하 서총련을 탈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도 그 즈음 탈퇴를 했다지요, 한총련에서 운동과 집회를 결의하면 서총련으로 그리고 각 대학 총학으로 지령이 하달 되어 혹 다른 생각을 가진 총학이라도 막연한 대열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낭만과 정치를 버리는 시대 전환에 대학의 간성이 NL-자주를 오롯하게 주장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념과 저항의 주체가 확실한 시대의 전대협과 그 바통을 이어 받은 한총련에 놓인 탈근대적 시대는 분명히 다릅니다. 게다가 학생을 대변하는 집단이 전대협에서 한총련으로 이어졌을 뿐, 대안은 없다는 역사, 그것은 엄밀히 독재 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반운동권이라고 해도 노선(이건 생각의 방향 정도로 이해)이라는 것이 있을 터인데 무엇인지?
그래서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총학생회의 약속은 "위대함은 당연함에 깃드는 법입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 이라네요. 논쟁의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위대함은 당연함에 의해 변질되고 당연함은 시대에 의해 변질되지요. 따라서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관점에서 판가름 되기 마련입니다. 서울대 총학은 학생정치세력과 분리를 선언함으로서 그 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인문 개념과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겠기에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대환영할 선언은 분명하고 당연하겠지요. 설마, 언론이 이 분리선언을 순수한 공약 실천으로 보아 넘기겠거니 순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아무튼 어떤 노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당연한 자치를 당연하게 만들겠다 정도로 해석하겠으나, 정치와의 분리가 운동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을 제한하겠다는 말처럼 들려 솔직히 씁쓸합니다.

부탁합니다. 스폰서를 직접 핸들링 하시든, 한총련과 분리를 선언하시든, 학교가 기업의 자본주의를 먼저 답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개혁진보라고 부르는 좌파신자유주의자의 권력감정과 사대주의를 통한 국익 도모에 서울대가 모범을 보이는 사례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마감되었다고 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크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 직시가 부당한 폭력에 대한 굴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경제의 통계만으로 현안을 바라보는 우안이 되지 않기를 소박하게 바랍니다. 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대학생에게 짐지우냐고 때쓰지는 마십시오... 대학생은 사회의 지식인입니다. 지식인은 사회에 그 정도 책임은 있어야 합니다.
2006/05/11 23:19 2006/05/11 23:19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