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

2005/11/30 19:12 / 사진


낫 끝, 호미 끝 멈춘 계절의 논밭에서 내 반추의 내역은 그곳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세상의 어떤 짧은 사물보다 짧고 간결하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사람과 벤치 뿐만 아니라,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라 배운 약관의 나이로 부터, 만남의 새벽을 거쳐 이별의 석양을 윤회하는 이립의 나이까지, 세상을 경멸하던 처절함과 아름다움이 백지장으로 맞다아 있는 짧은 반추. 어떤 이의 눈물이 쓸려 오는 줄만 알았던 천년의 바람에 맞서서 모든 이를 이롭게 하지 못해도 거대하고 위압적인 바람개비는 세상의 경멸과 아름다움의 혼합. 인생과 관련된 모든 텍스트의 돌고 도는 동어반추.(제주도, 한림)


바람이 불어오는 곳 from 키슈페이퍼
2005/11/30 19:12 2005/11/30 19:12
DrunkenSTAR 이 작성.

이상한 국익과 휴가

2005/11/24 22:21 / 생각
좀 쏘다닐 요량으로 7일정도 휴가를 내려고 했으나, 현재의 Role 과 시점 상 적절한 휴가가 아니라며 반려 당했다. 그리고 쏘다니기엔 너무 부족한 4일. 주말을 끼워 내일부터 제주도, 다음주는 일본 정도 다녀올 수 있겠다 싶다. 현재의 Role 과 시점에 부적절한 휴가란 무엇일까?
경영자와 노동자, 그 계급적 경계가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경영자 > 노동자이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선 노동자 > 경영자 이겠다. 나의 입장도 여전히 후자지만, 이제 경영자이니 적절한 휴가 시점을 찾으라는 새로운 미션은 뒷맛이 씁쓰름하다. 일년동안 노동했으면, 한 7일정도 쉬는 건 매우 합법적이면서 윤리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매우 필요한 시간으로 봤는데, 경영자의 Role 이 주어지면 그게 안된다니, 이거 참 혼란스럽다. 안그래도 공평과 평등에 대한 사상이 뒤죽박죽인데다가 덜컥덜컥 세계화적인 결정을 하는 비겁함에 머리가 저려 빠진 머리칼을 줏어 심을 수도 없고...
내일 제주도에 가서도 자유로운 담론의 기회가 있겠지만, 박해 받는 계급에게 자유과 공평은 어디까지 주어져야 하는 가? 주어지는 자유와 공평은 결국 계급 우월자에게 나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월한 계급이 주는 똘레랑스로 자유와 공평을 배분하는 격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박해 받는 계급이 필요한 자유과 공평이 어느 정도 인지 알고? 지표라고 불리우는 기준은 제도 안에서 데이터를 토대로 세워진다. 그 지표의 결정은, 우월한 이데올로기가 아님에도 그에 순응하는 제도권, 절대로 우월한 계급의 희생을 전제하지 않는다.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노무현이 정권을 걸고 대연정 제안을 했을 때, 이점 우월한 계급의 희생을 높이 산 혹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희생을 박해 받는 계급의 대상이 아니라, 우월한 계급보다 더 우월한 쪽에 희생을 바치려 했기 때문에 사상이 의심스러운 것이 됐지만...
이런 면에서 본다면 황우석 교수 이슈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무엇을 하더라도 이건 넘지 말자는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가이드 라인 이란 것이 있다. 그걸 넘으면 당장은 큰일이 안나더라도 나중에 작게 침범했던 논리들이 집합을 이룬다는 것은 역사가 충분히 조망하기 때문이다. 생명연구를 통해 난치병을 고치겠다는 숭고한 뜻이 가이드 라인을 침범했다. 난치병을 알고 있는 환자, 그의 가족들이 되보지 않고 말도 꺼내지 말라는 자격 논리에는 반대한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 모두에게 입이란 기관은 필요 없다. 지금 황우석 교수는 국익이란 잣대를 가진 자들이 yallow paper 를 통해 만들어 놓은 히트 상품이 되버렸다. 어느 누구도 그의 연구활동에 도전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버렸다. PD 수첩이 역사에 반역자가 되버렸으니 이는 포퓰리즘을 넘어 집단 광기에 다름 아니다. 아직은 현실되어 있지 않은, 거의 현실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국익이라 밀어 부치는 정의가 겨우 경제적 판단에 근거했으니 이건 파쇼와 다르지 않다. 우월 계급자는 박해 받는 계급자의 자유와 공평을 판단할 수 없는 것 처럼, 황우석 교수는 난자 공여자의 난자 채취에 강압이 있고 없고, 동의가 있고 없고를 판단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가이드 라인을 지키라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가이드 라인은 윤리의 문제이고 보면, 그것은 그 어떤 국익보다 앞서야 하는 게 맞다.
다른 나라가 치고 올라와 행여 황우석 교수보다 더한 연구 성과를 내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국익에 반한다는 생각은 박해 받은 계급은 계속 박해를 받아도 된다는 것과 다른 점이 없다. 어느 소설에서는 나옴직한 치졸한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세상이 되간다.
2005/11/24 22:21 2005/11/24 22:21
DrunkenSTAR 이 작성.

인기블로그

2005/11/21 21:58 / 생각
인기 블로거는 아니지만, 인생의 이런 저런 돌이 쌓여 있는 심도의 바닥에는 사상이 있어 절제된 속물 근성이 있다. 어떻게 하면 블로그가 인기 있을까? 다른 인기 블로그 처럼 하루 평균 수천명이 유동하게 하는 방법은? 근성은 제 뜻에 맞는 의미 있는 항변을 내 놓는다. 하지만, 그 항변에 대해 나는 비교적 담담한 편이다. 내 블로그가 나의 대변자 역할을 한 이후로 최초로 가졌던 야성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써내려가기' 였기 때문이다. 내가 써내려가는 단어의 연속성과 형이상학적인 이상한 구조를 견디지 못하는 방문자의 면전 항변을 들을 때가 있다. 그 항변을 통해 내가 최초에 가졌던 야성은 이성과 정치로 변질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변질은 실패를 의미한다. 머리속에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생각을, 그 생각으로 오롯이 써내려갈 수 없는 좌절에 직면하게 되면, 뇌속에 없는 텍스트가 그저 블로그를 꾸미는데 집착하게 된다. 이 지점에 '그럼, 자물쇠있는 일기장을 사세요.' 는 참으로 반박하기 힘든 반론으로 성립된다.
고민하되 좌절하지 말 것을 스스로 당부하는 것은 블로그를 한다, 즉 블로깅의 행위 결정이 이미 내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더 이상 다락방에서 하지 않겠다는 유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의미성은 수많은 댓글과 방문자를 필요로 하는, 인기에 대한 무의식적인 근성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블로그의 트랜드는 자신의 생각의 단편에 달리는 댓글을 보고 복잡한 신경세포의 움직임을 통해 느끼고, 웃고 울고 화내고 자랑하며 댓글에 댓글을 쓰는 동안 정체성의 빠진 블록을 맞춰가는데 있다.


아무리 공평하고 사심없는 써내려가기를 한다며 야성을 외치더라도 불평등에 관한 멱수곡선(Power law curve)에 의해 수많은 블로그는 몇 사람에 의해 읽혀지고 소수의 블로그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멱수곡선에 의한 스타 시스템은 블로깅에 대한 최초의 기회평등을 가장한 블로그 시스템의 도발과도 같다. 다수결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가장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알고 있는 비평등주의자들에 의해 평범한 블로거들은 실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오직 누리꾼의 숫자에 의해 여론을 훼방하는 언론의 도움도 한 작용함으로써 퇴고에 의한 견고한 주장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댓글은 있되 트랙백은 없다. 왜냐하면 트랙백은 그 글에 대해 댓글보다 오래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에 의한 조망이 끊겠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고독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불안감이다. 댓글에 대한 의지로 인해 생기는 일종의 증후군이다.

인기 블로거들은 이런 증후군을 어떻게 관리할까? 일시적인 실존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글쓰기를 서두르는 것일까?
앤디 워홀의 관심 없는 말투가 생각난다. '미래에는 누구나 15명에게는 유명해질 것이다.'
2005/11/21 21:58 2005/11/21 21:58
DrunkenSTAR 이 작성.

축가를 들어야 할 때

2005/11/17 19:05 / 생활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1,2년씩 먼저 가본 친구들이 요즘 들어 내 처지를 정말 부러워들 하는 건지, '왠만하면 누구 소개 안시켜주고 싶어... 혼자 살아' 한다. 혼자 살아 좋은 것, 같이 살아 나쁜 것, 화려한 것, 남루한 것, 유치한 구분 없이 바쁜 정신으로 고여 있지 않으면 잘 사는 것이다. 때로는 살아 가는 작은 몸이 절실해 보여 늙어 가는 사고의 절편을 깨닫지 못하지만, 내 몸에 배인 짜고, 시고, 달콤하고, 텁텁한 맛을 혼자 느끼는 허무함 보다 차라리 내 옆에서 작은 몸이 더불어 늙어 가는 사람이 있는 편이 낫다.


예전에 정말 좋다라고 생각했었던 축가(빌리 결혼 때)가 생각나서 찾아 봤더니 역시, 동영상 쪼개서 올려 놓은게 있다. 혼자 늙는 내가 들어도 여전히 좋다. 이 계절에 내 늙은 뼈는 스웨터가 필요하지만, 네 뼈는 무엇을 필요로 하니? 바로 축가다.


그러고 보니, 빌리네 결혼 기념일이 다가오네...


"축가를 들어야 할 때(볼 수도 있다 ㅋ)
2005/11/17 19:05 2005/11/17 19:05
DrunkenSTAR 이 작성.

이제, 익어주세요.

2005/11/16 22:59 / 사진
경기도 양평, 팬션 주인할머니


적빈한 자 아니거든 가만히 겸손해라, 존중 받아 마땅한 인간에게도 오래도록 발효되는 장독이 필요하다. 설익은 김치에 서걱서걱 소리나듯, 노동 없이 말로 지배하려는 기생충알 같은 인간들이 득실대는 세상을 반대한다. 노동은 노동 자체로 신성 받아야 하는 것. 그 어떤 이데올로기 보다, 그 어떤 다수결보다, 그 어떤 권리보다, 노동 그 자체가 앞서야 한다.
2005/11/16 22:59 2005/11/16 22:59
DrunkenSTAR 이 작성.

대나무

2005/11/15 19:13 / 생활
힘들다, 말하지 않았던 우리 아버지들의 단단히 여민 삶조차 전통적인 가부장제라 밀어 넣는다면, 극복의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힘들때 쓰러지고, 센치할 때 참지 않는 것일까? 구겨지는 것을 달갑게 받아 들이는 삶의 위대한 지각이 품위를 가장한 격차림이 되어 참고 쓰러지지도 않는다. 철갑을 두르고 속 빈 대나무 같은 알량한 선비 근성때문에 매사에 강하고 겸손해야 하는 삶이, 아름답게 센치해지는 삶을 막아 선다.


이런 나의 천박한 글쓰기도 막혀져야 함을 안다.
2005/11/15 19:13 2005/11/15 19:13
DrunkenSTAR 이 작성.

철없는 공상

2005/11/11 19:47 / 생각
월간 Web 에서 주최한 송년 좌담회에서 던진 세가지 화두는 Post Web 의 형태와 그에 따른 구축 대응, 중저가 시장과 웹의 라이프 사이클 확대를 위한 운영 마켓에 대한 공략, 목적별 에이전시간 M&A 시도에 대한 시각 이다. 하지만, '좌담' 을 하면서 화두와는 관계 없는 리쿠루팅, 클라이언트, 영업, 구축 프로세스 등의 마이크로적인 담소로 이어져서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내가 던진 세가지 화두 중, 중저가 시장, M&A 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전개를 준비중이지만, Post Web 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MS 의 독점주의를 비판하지만, MS 최적 뷰를 양산하는 집단에서 그 비판은 힘을 잃는다. 따라서 Post Web 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MS가 2007년도에 브라우저를 없애고 메신저 기반의 월드와이드웹 을 선보이는 마음속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Post 의 '기대'는 사뭇 긴장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 기대에 있어서 근접한 공상을 할 수 있는 서비스와 플레임워크를 가지고 있는 곳을 찾겠다면, 단연 구글이다.

Google의 이미지 타이틀을 이슈마다 바꾸는 센스 있는 브랜딩에 대한 열광은 구글이 바라보는 세계의 변화에 비하면 천박하기 까지 하다.(그걸 따라하는 포탈들의 수준을 점검하게 해준다.) 네이버, 야후, 다음, 엠파스, 싸이월드 등이 검색엔진과 커뮤니티를 플레임워크로 그 운영은 UCC(User Created Content)에 의존하는 형태론적 가치관은 언듯 생산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데모크라시처럼 보인다. 물론, 구글이 ~처럼 보인다는 냉소적인 데모크라시를 진정성 있는 데모크라시로 바꿔줄 수 있는 초현실적인 서비스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구글은 자본주의의 실현을 극대화하는 서비스의 한 형태이기까지 하다. 다만, 국내 포탈들이 UCC 에 기대어 얻어 내는 이익의 관점이 여전히 거대 저자의 입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점이 구글과 다르다. 간단히 정리하면, 국내 포탈의 관점은 '더 많은 사람들이 기여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논리에 입각한 계급이 부여되는 세계' 에 있다. 따라서 그 계급에 따라 세계의 기여도를 포탈 스스로 정하기를 원하고 있다.(예를 들어 그들 입맛에 맞는 뉴스 편집 등)
따라서, 몇년 쓰고 버릴 서비스(서비스라는 명명이 맞을 지 모르겠으나)가 뻔하게 나오는 것은 모자란 그들의 먼 시각과 노동이 결합한 결과이다. 오염을 경험과 성숙이라 생각하는 철든 그들에게 필요한 건 냉정함과 연대한 '철없는 공상' 밖에 없다.


구글의 철없는 공상 Flash 보기
2005/11/11 19:47 2005/11/11 19:47
DrunkenSTAR 이 작성.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숭고한 사람들이 잠시 그런 공포스러움을 버리기 위해 틈틈이 모여드는 파주 헤이리에 가면, '씨앗을 뿌리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자연이다' 는 푯말이 있다. 뿌린 씨의 정체를 갸우둥하기도 전에 공기가 다른 자연속에 가장 모던한 건축물들은 육중한 강압처럼 느껴진다. 특히, 일전에 갔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바라보는 건축물이 위대한 예술의 자연스러움과 어울어지는 유일한 통로(대체로 문이나, 입구로 일컬어지는 물체)는 이걸 통해도 되는지, 차단하려는 육중함을 굳이 열고 소통해야 하는지, 쉬 분간되지 않는다. 씨는 뿌린자가 거두워야 제법 공평해진다. 헤이리의 건축물은 바라보기엔 멋드러져도, 씨는 뿌리고 나오보지 않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불편함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행여 그러겠냐만)
지어진 것들과 지어질 것들을 평균내더라도 한참을 벗어나 있지만, 헤이리는 나무 등걸의 예술가, 박수근를 닮았으면 좋았을 걸, 일부 아쉬움이 다시 헤이리를 찾게 한다. 박수근의 그림이라면 가장 빈곤한 질감에 가장 평범한 노동과 가장 보편적인 가난의 터치로 일컬어 진다. 다시 말해 '가장 힘들어 보이는 평범' 에 대한 시각이다. 대상들은 그냥 앉아 있거나, 돌리고, 이고 간다. 그것이 바로, 밥벌이가 가장 숭고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로써 작용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그릴게 참 없었나보다며 박수근을 위로하기도 한다. 간편한 소통, 박수근의 그림이 오래도록 놓고 보아도 밥 맛처럼 이도저도 아닌 느낌으로 남는 이유다. 자연에 모더니즘의 씨를 뿌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박수근을 빗대어 위대함의 경중을 따지는 건 상대적 가난에 시달리는 동시대인의 피곤을 가중시킬 뿐이다. 모든 사는 건, 맷돌을 돌리며 구깃구깃 해지는 과정일 뿐, 뿌린 자가 거둔 밥이라면 그 맛이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나... 그리 밋밋한 맛이 한대를 가고 두대를 이어가는 맷돌 돌리는 삶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가...


구삼 미술관에서 구입한 '맷돌 돌리는 여인' 박수근, 1940, 하드보드 유화,
판화로 300점 한정 중 13번째 작품
2005/11/07 17:59 2005/11/07 17:59
DrunkenSTAR 이 작성.

헐거운 무장

2005/11/02 01:53 / 생각
언젠가 그런 투서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인권을 침해 당하고 있다' 투서는 그 역할을 했고 발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침해 당하는 이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들보다 나는 존중까지는 아니어도 덜 침해 당하고 있었던 건 분명했다. 투서는 인간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아니었다. 나는 두려웠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처럼 침해 당할까봐, 두려웠을 뿐이다.


제도권에서 모든 결정은 누구를, 또는 무엇을 침해한다. 알려진 경영의 법칙 중에 Trade off 는 침해에 대한 면죄부이다. Trade off 는 모질고, 모진게 그것 뿐이겠냐만, 모질어서 불편하다.
어쭙잖은 좌파 정신 때문에 제도권에서 마땅하다가 일컬어지는 의지가 부질없는 갈등이 되는 것은 아닌지, 수도 없이 생각한다. 아름다운 비행을 보며 고인 눈물의 댓가로 ARS 를 누르고, 두세달에 한번씩 노동자를 후원하는 단체에 지로용지를 끊으며 내 노동의 공평함도 함께 이뤄주길 위임한다. 하지만, 현실의 궁극에서 자본주의의 모든 권리는 분배의 평화와 관계 없는 무장을 서두른다. 겁나게 소주를 마시며 양민인양 취해가며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부터 존중의 저 심연까지 배설해도 내 와이셔츠 안에는 수퍼맨의 쫄티가 있다.


내 결정의 두려움은 오직... 언젠가 나도 그렇게 침해당할 막연한 예언이 속삭인다는 것. 나는 무슨 결정을 했던가? 아무 결정도 하지 않았다고 선언할 수 있는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무장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알량한 것조차 쥐어주지 못하고 담즙처럼 흐르는 이기심에 도취되어 존중이 무엇인지, 까닭없는 질문만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사는 동안 내내 두려울 것을 알면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우파도 좌파도 아닌 헐거운 무장이 오늘따라 더욱 소리를 낸다.
2005/11/02 01:53 2005/11/02 01:53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