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2005/10/27 19:59 / 사진

햇볕,
잘 살았구나, 노래질때까지.
바람
잘 돌아왔어, 누구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어주고.




잘 익었구나, 옥천면에 굶는 사람 없도록.
2005/10/27 19:59 2005/10/27 19:59
DrunkenSTAR 이 작성.

당부

2005/10/25 19:56 / 사진
[무인 운영되는 '아신역']

기차표를 쥐고 잠시 앉아 있던 여자는 이밥 연기 나는 고향을 바라보지 못했다. 아무도 모른다, 세상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이 여자는 2시간마다 한번씩 무궁화호가 지나가는 역사에서 붉은 침목이 될 것을. 영화같은 운명이란 없다. 있을 법한 것은 없는 것, 모든 없음은 모든 있음, 떠나온 곳에서 이 여자가 배운 유일한 욕심이다. 지금 여자의 욕심은 꼭 있어야 하는 것, 세상의 사랑이다. 여자는 모른다, 모두가 부족한 것을 욕심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여자의 운명이 있을 법한 것은 없는 것이 된다. 여기로 온 이상, 여자는 모든 없음이 되어야 한다. 거기서 여자는 잊혀질 것이고, 운명도 바뀔 것이다. 그때, 통에 넣은 차표를 다시 손에 쥘 것이다.


대신,

그때까지, 어디에서 든지, 계속, 살아주세요...
2005/10/25 19:56 2005/10/25 19:56
DrunkenSTAR 이 작성.

너는 내가 꾸는 꿈

2005/10/25 19:42 / 사진
[무인 운영되는 '아신역 대합실']


조막만한 볕에 노곤함을 느끼던 기다림이 오직 홀로인 곳, 바튼 잠이 다리를 움찔거리며 깨어 봄 직한 거울 속 벤치... 너를 꾸던 나의 꿈은 볕 곁에 내 놓은 벤치처럼... 홀로다.
홀로, 따뜻하게 밝다.
2005/10/25 19:42 2005/10/25 19:42
DrunkenSTAR 이 작성.

대상을 분해하길 원하는 눈은 내용의 눈이다. 내용의 눈은 감칠맛 나는 감각은 없지만, 숭고한 이해를 도모한다. 그런 눈은 남들이 웃는 코미디에서 눈물을 발견하고, 연애에 도움이 되는 미술관에서 자랑삼을 지식을 말할 줄 안다. 또, 단어 하나에 숨이 넘어가는 프로젝트에서 신선한 논리를 건설하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걸어 넘어지게 하는 궁극의 그것으로써의 문서는, 내용이 지켜지던 예술사조의 한 자락과 같아서 눈으로 만들어지고, 눈으로 평가된다. 다만, 모두가 내용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가 있다. 또, 문제가 있다. 내용은 형식의 틀 안에서 라는 진부한 섭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용의 눈에 대립항은 형식의 눈이다. 형식의 눈은 감칠맛 나는 감각을 지니며, 아름다움의 눈이라 불릴 수 있다. 형식의 눈은 저급하다 치부되는 hitting comedy 를 보고 웃을 수 있고, 마치 문외한인양 '알 수 없는 느낌' 을 음미한다. 형식의 눈은 형식주의의 수학과 다르다. 형식의 눈은 Form, 형식주의는 Formula, 그 각각의 의지가 다르다.


단어 하나에 숨 넘어가는 프로젝트에서 인식과 통찰에 관한 회의가 있었다. 어떤 조건에서 '인식'을, 어떤 조건에서 '통찰' 이란 단어를 쓰겠냐는 회의다. 지식인에 물어보는 것은 공유도 토론도 아니다. 인식의 전제는 '보는 것', 그리고 '그대로 아는 것' 이라 토론하고 통찰의 전제는 역시 '보는 것', 그리고 '다르게 아는 것' 이라 토론했다. 둘 다 보는 것에 대한 조건 성립은 결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컨설팅이 일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중략하고 '그대로 아는 것' 이 인식이다. 그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란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학습해서 아는 것, 학습한 것마저 잊고 아주 몸에 밴 것, 설명되어서 알게 된 것으로 분류된다. 인식한다는 것은 보고, 알기 위해 이미 알았던 것을 동원, 대입하는 것으로 내용의 눈이다. 속도가 문제이긴 하지만, 인식이란 단어와 더불어 per second 은 쓰지 않으니 인식은 거기까지, 세 분류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 뒤에 쓴다. '다르게 아는 것' 은 감수성과 조합에서 나온다. 감수성에 대해서 직관의 능력을 토로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역시 중략하고, 대상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 통찰이다. 통찰이라 하여 완전한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객관성은 없다. 그처럼 보이기 위한 형식이 있다. 그것을 조합이라 한다. 다름을 꽤뚫기 위한 장치는 여러 인지들의 조합이다. 형식에 대한 완전한 발견 또한 없다. 따라서 직관하기 위한 장치가 감수성이다. 감수성은 형식을 재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여러 인지들과 조합하여 객관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통찰이다. 인지보다 속도에 덜 구애 받는다. 그래서 당장은 알지 못하는 느낌으로 전달되는 형식의 눈이다. 당장은 알지 못하는 느낌이지만, 객관처럼 보이는 문장 뒤에 쓴다.


내용을 이해, 형식을 감각으로 규정한다면 반대되는 눈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전하고 다르니까... 논리의 비약일 수도 있다. 예술과 일의 공통된 천박함은 무지가 아니라 무력에서 나온다. 사전으로 알지 못하고, 사전을 살피지 않아 무지로움이 아니라, 자신으로 부터 시작된 논리가 설득이 된다. 모두가 정확하게 아는 지식은 별로 없다. 통찰력 있는 논리가 설득되고, 설명되어서 알게된 인지가 된다.
2005/10/24 21:20 2005/10/24 21:20
DrunkenSTAR 이 작성.

결정로그

2005/10/21 15:36 / 분류없음
간단한 카테고리 추가로 '결정로그' 를 포스팅하기로 했다. 공사 다망하게 결정한 내용에 대한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역사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오늘 워크샵을 갔다와서 다리품 좀 팔아서 집구석에 작은 사진 갤러리? 아니 '사진널게' 를 만들어야 겠다. 블로그에도 심심치 않은 '샘네일 널게' 도 업데이트 해야 겠다.


~ 했다, ~ 해야 겠다. 결정로그의 주된 조사되겠다.
2005/10/21 15:36 2005/10/21 15:36
DrunkenSTAR 이 작성.

언제, 무엇이 중요하지 않고 그저 인생을 곰씹어 약속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이 계절쯤 되면 하찮게 여겨지는 꼭두서니 새해의 다짐들도 그렇고(뭐, 좀 있으면 또 새로운 다짐을 할테니), 누가 찾아와서 내 블로그를 보겠어, 본다해도 내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겠어 그러니 가장 편한 묘사로 나로부터 흉금없는 세계를 블로깅 하겠다는 약속 또한 온데 간데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모든 것은 왜곡된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타인으로부터 부여되는 존재감에 대해서 고민한다. '작품을 텍스트로, 작가에서 독자에게로' 의미를 던진 롤랑바르트의 시도는 순수성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내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학문적 연구나 사상의 깊이를 논할 수 조차 없는 나에게는 철저히 타인의 시각을 존중하며 '써내려가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한 써내려가기는 '약속하지 않는 것' 이라 말 할 수 있다. 어떤 써내려가기가 묘사로 이루어진 흉금없는 세계로 이루어졌을리 없고, 흉금없는 세계의 왜곡이라면, 그 세계가 꼭 흉금없이 보여야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써내려가기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타인에 대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 부담 없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이런 부담 없는 텍스트는 자유상상의 브릿지 이다. 부담의 부재는 누구에게나 자유를 음미하게 하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적인 오류에 기꺼이 빠져 본다면, 약속을 하지 않고 써내려가기를 하는 사람은 부담없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부담없는 텍스트는 자유를 의미하기에 자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약속이 없는 부담없는 텍스트이며, 그런 사람이고... 등등 등등, 우리 세계가 온통 동어반복이라는 사실은 굳이 증명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진중권선생의 가벼운 글쓰기만으로도 쉽게 증명된다.

동어반복적인 세계의 일부인 계절에 이르러 이처럼 스웨터가 필요한 때에는, 약속의 의미가 희석된 부담 없는 텍스트는 오로지 공기중에 분해되는 말로 귀결되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묘사의 부족함을 느낀다. 계절이 온도의 부족함을 강요한다는 것 만으로 나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나의 가장 강력한 우성인자인 외로움 같은 것을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흉금없는 세계를 묘사하지 못하여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주 한두병에 젖은 홍대에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역시 나의 왜곡은 계속된다. 나의 일부분이 결핍을 느끼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은 부족함을 느낀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결핍과 적빈의 차이, 둘중 하나를 채우기 위한 시도의 첫걸음은 약속이다. 또는 그것을 맹세로, 강한 호흡의 맹세로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서툴고 아직은 다른 사람에게 그 호흡을 내기가 쉽지 않다. 나의 문제는 어렵지만,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누구도 행간을 가늠하기 어렵게, 나 스스로만 풀 수 있는 문체로 말이다. 그래야 왜곡하기로 마음먹은 써내려가기에서 약속함 없이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
그러니 사랑... 스웨터의 계절에 너무도 부족한...
사랑...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10/12 22:02 2005/10/12 22:02
DrunkenSTAR 이 작성.

무지의 소산

2005/10/07 22:08 / 생각
대체로 사람들은 정확한 문제 인식을 통해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은 역시, 문제를 바라보지도 못한다. 그래서 문제 제기를 막기 위해 부당한 권력을 사용하거나 그도 안될 것 같으면 고함부터 지른다. 보통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문제 제기를 통한 건전한 견제에 대해서 콤플랙스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누군가를 돕는다 생각하고 하는 일이 실은 자신을 돕는 일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과 기득권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를 이끌기 위해 남을 돕는다고 자기 쇄뇌를 하는 긴 시간을 참아오기 때문에 그 집착이 폭발하는 모든 남용에 있어서 고함 정도는 우숩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게의 경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윤리와 도덕은 남을 돕는데 하등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기다림을 더 기다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효과적이든, 효율적이든지 간에 윤리와 도덕을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남을 돕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집착일 뿐이다. 경영을 공부했다는 대게의 사람들이 배웠다는 입으로 말하는 것이 고작 효과적인 것과 효율적인 것 뿐이다. 그 입은 경영을 먹고 소화한 입이 아니라 핦은 입일 뿐이다. 대체로 그 입의 윤리와 도덕은 인간의 퀄리티를 낮추는데 기여한다. 모두가 무지의 소산이다.
2005/10/07 22:08 2005/10/07 22:08
DrunkenSTAR 이 작성.

감정노동

2005/10/01 17:48 / 기억
청계천에 새물이 흐르기 전부터, 그러니까 청계천 고가가 철거되던 날, 고층빌딩에서 이명박을 에워싸고 있는 경찰들과 멀리서 함성 지르던 철거민을 보고 있었다. 엇그제 진정 새물을 흘린다는 청계천을 새벽 1시에 나가보았다. 나는 내려도 카메라를 내릴 수 없이 비가 왔다. 평화시장은 전태일의 흉부상에 네온싸인과 유행가를 쏟아 내고 있었다. 어디서 짜내는 섬유들인지, 지게에는 온통 한 더미씩 쌓여, 지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무게다. 모자를 눌러 쓰고 5가에서 6가를 채 걷지도 못하고 돌아 왔다. 빗방울 몇개에 어깨며 다리는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 몸이 다음날 밤이 되면 코카인에 중독된 모냥 일시적으로 살아나 소주 세 네병을 마시고 차는 어딘가에 버려두었는지 눈을 뜨면 1인용 침대 위다. 좁은 내 침대는 내가 가진 어떤 좁은 것보다도 용케 중독된 나를 떨어 뜨리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집트로 떠나신 날, 나는 많이 중독됐고 아팠다.
이제는 문학을 몰라 기대지 못하는 진정성과 감수성이 거슬려 아팠고, 차마 떠나지 못하던 현실이 마치 '하루끼'의 먼 북소리처럼 어느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아팠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나와 얼마나 아파했는지 조차 모르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너도 나도 이제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잘못 걸린 전화에도 흠짓 놀라 몇 시간을 생각하다 비로서 되걸어보는 소심함은 네 앞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차마, 사랑은 여윈 네 얼굴 바라보다 일어서는 것,
묻고 싶은 맘 접어두는 것, 말 못하고 돌아서는 것
하필, 동짓밤 빈 가지 사이 어둠별에서,
손톱달에서 가슴 저리게 너를 보는 것 문득,
삿갓 등 아래 함박눈 오는 밤 창문 활짝 열고 서서
그립다, 네가 그립다, 눈에게만 고하는 것
끝내, 사랑한다는 말 따윈 끝끝내 참아내는 것

- 홍성란 '따뜻한 슬픔'



단조로운, 잔잔한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것은 역시 나를 위로하기 위함으로, 천천히 나를 스쳐가는 바람속의 말에 너를 그리다, 나의 꿈은 오로지 하오의 솔섬에서 붉게 자라는 우묵가사리의 정막함뿐이다. 네가 행복하게 부르는 휘파람 소릴 들을 수 있도록 붉게 자란 정막함이 오로지 나의 꿈임을...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천양희 '어떤 일생'



태양의 서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빌리를 따라 통통배에서 바다낚시를 하다보면 그곳이 서쪽일까? 삶이 서쪽에서 요약된다면 태양과 같고 하루와 같고, 어느날 무릎사이에 파 묻은 고단한 머리가 눈을 뜨고 보는 단풍나무와 같고, 가는 날짜마다 샘을 하는 내 인생의 남루함과 같다. 늙고 붉어진 빈 소주병이 쪼그리고 앉은 화려했던 술판과 같다. 10월, 다시 술판이 시작된 내 인생은 지난 날의 절망의 내용을 다 까먹어 버렸다. 오로지 잘못이 없는 사랑의 추억만 고스란히 부표를 타고 서쪽으로 홀로 떠다닌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 기형도 '10월'
2005/10/01 17:48 2005/10/01 17:4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