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2005/07/30 12:57 / 생각
하물며 붙어 있지 못해 안달인 도발적인 연인 간에도 서로를 피하고 싶은 한창 여름인데, 오직 노무현씨만 어깨동무를 못해서 안달이다. 그것도 우리가 보증 섰던 돈 때먹은 천하에 꼴통들 하고... 참으로 더워를 모르는 사람이다. 우린 더운데...
언제 쯤, 노무현씨가 우리가 타는 더위를 우리처럼 탈까?
2005/07/30 12:57 2005/07/30 12:57
DrunkenSTAR 이 작성.

Campballs 통조림

2005/07/28 22:25 / 생활
일주일에 한번씩 대형 마트에서 카트를 끈다. 집에서 밥을 챙겨 먹을 타입이 아니기에 일주일에 한번의 간격은 집을 온통 인스탄트 창고로 만들어 버린다. 3분 카레나 짜장은 이미 고전이고, 육계장이나 북어국팩은 알코올 복용 후처리로 요긴하다. 스팸이나 참치는 사이드 디쉬, 정체성을 부여해야할 생고기는 지양하고 후라이팬에 굽거나 수도물을 끓여 데치기만 해도 되는 쏘세지에 먼저 손이 간다. 만두소 사건이 있었을 때도 묵묵히 야식 꺼리가 되어 주던 냉동 만두는 거의 주식이고, 라면에 말아 먹을 햇반은 라면 끓인 냄비에 물을 붓고 10분만 끓여 놓으면 면을 다 먹을 동안 따땃하게 덮혀진다. 남산을 보며 홀짝 거리는 맥주 옆에는 간이 잘 맞아 자꾸만 손이 가는 돌김구이.

생각해보면 인스탄트 나쁘다면서, 그걸 알면서도 마이크로웨이브와 인스탄트는 독신자 생활 그 자체다. 수퍼사이즈미의 나라인 미국보다도 그 종류가 다양한 듯 하다. 엇그제도 인스탄트 사냥을 하던 중에 대충 그 위치 정보를 꾀고 있는 마트 구석에서 여전히 빨간 테그를 두른 campballs 통조림을 발견했다. 대표적인 미국식 인스탄트 통조림이다. 치킨 누들 스프, 크램차우더 스프, 머쉬룸 스프 등은 육계장이 간절하던 내 유학 생활의 눈물 같은 것이 었다. 사실 campbell 스프는 내용물이 부실하다. 스프 안에는 닭기름만 둥둥 뜨고 누들은 기름을 온통 먹고 불어 있다. 그래도 냉동 야채를 찬밥에 섞어서 볶음밥이라도 할라치면 마땅히 벅벅함을 달랠 꺼리가 없었을 때, 빛나는 조연이 되어 주곤 했다. 그 추억을 서너개 담아 왔다. 그런데 계산대에서 친절한(?) 미군이 건네주는 시레이션을 받아 드는 아이들의 보도 사진이 겹치면서 나도 그축에서 벗어나지 않는 난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온통 난민이다.
campbells 스프를 데워 먹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스프 먹고 슬럼프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얘기할 사람이 없다.
2005/07/28 22:25 2005/07/28 22:25
DrunkenSTAR 이 작성.

전태일 거리 동판

2005/07/22 19:24 / 생각
알고 있는 지식이 본래 나의 것이 아니라, 책의 것이었으며, 나의 사상은 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어떤 고금의 사상이었을 것이다. 나의 사상은 나의 머리속에서 오롯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나의 삶은 독립된 듯 하지만, 이미 오래전 누군가와 무엇으로 인해 빗지고 있다는 것. 그중에 전태일이 있다. 자본주의적인 삶 속에 신자유주의적인 결정을 수도 없이 내리면서 이단적으로 갈구하는 공평한 삶, 그리고 내 반성의 시작.
내가 돌아 갈 수 없는 어린 동심의 그곳에, 고여 있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그대가 만들어준 공평하고 사심없는 노동을 위해...


전태일거리 만드는 곳
2005/07/22 19:24 2005/07/22 19:24
DrunkenSTAR 이 작성.

시사츄나잇

2005/07/19 20:49 / 생각
이처럼 고도의 시대에 하루는 정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 분절의 단위는 내일에 종속되고 내일은, 또 내일을 참조하며 분절의 단위를 넓혀간다. 분절의 간격은 긴장의 밀도를 증발시킴으로써 '대충, 까이꺼' 로 희화된다. 하지만, 정밀한 하루동안 두,세번쯤 기절할만한 유머의 필요성은 그것이 그만큼 고단하고 삶의 단위가 하루로는 표현하지 못할만큼 단조롭기 때문이 아닐까? 뭉쳐야 뭔가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부터 하루는 일상의 단위로써 가치절하 된다.
하지만, 하루를 기꺼이 마무리하는 시점이 어떤 시간이라면 시사투나잇은 그 시점에 하닐없이 볼 수 있는 것중에 가장 거북스러운 것이다.

시사투나잇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욕망이 들끓는 자들 뿐인 듯 하다. 그 욕망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편협한 사고는 맥아더 장군이 굽어 보시는 인천 앞바다에 뜻도 이념도 없이 지 피와 내장을 쏟아낸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이름을 기억할 줄 알았던 자들, 이제는 노병이 된 그들은 그 이름을 죽여버린(노병들은 그들의 이름을 잊어 버린 듯)자를 향해 고도의 경례를 부친다. 고맙다는 뜻인지, 잘했다는 뜻인지 도무지 알길 없다. 병사는 죽여졌으며, 사라졌고, 노병은 정신이 죽었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고도의 변화를 겪는 현재의 병사들이(군대는 없어야 겠지만, 김일병의 제대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기에)사라지지 않는 노병들에게 배울 점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전장에 내 팽겨쳐져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름은 돌보지도 않으면서 맥아더 라면 비틀린 마음은 은폐, 엄폐하고 손가락은 왜곡된 애국심에 떨려온다. 그들의 애국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두고 온 이름 때문에 씁쓸 하다.

원자재론을 펼친 서울대 총장의 욕망 또한 욕망이 없던 자들에게 고하는 지루한 하루다. 교육에 있어서 현 정권의 개혁 성향은 '그때 그때 달랐다', 사실 현 정권은 교육 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에 적용되던 개혁의 사전적 의미를 유권해석 하면서 주어진 집권기를 모두 보낼 모양새다. 평등이 있는 것도 아니며, 경쟁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오십세주식 이데올로기로 일관한다. 그런 정권과 교육은 너무도 닮아 있다. 정치적 입지로써의 대학의 자율화를 통한 서울대 총장의 발언은 폭력과 성적에 시달리는 원자재에 대한 공포교육의 천명이다. 사회에 쓸데 있는 인간성와 교양의 양성을 고등학교에 무한 전가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이미 상아탑을 부수고 자본주의 윤리에 무한 복종하는 인간성 양성소로 변한 대학에서 사회적 양심을 가진 인간이 배출될리 없다. 되려 자본주의에 포커스된 지식은 사회에 나와 하나 쓸모가 없다. 그동안 좋은 원자재는 하나도 없었던 말인가? 욕망이 너무 지나치다. 현 정권이 욕망이 지나쳐 주먹구구로 타협을 하며 개혁의 유권해석을 늘려 가는 것 처럼 말이다.

하루의 마무리를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이부자리가 편할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사투나잇의 남자 앵커가 마지막에 '시사츄나잇' 이라고 웃기는 발음을 선보였다. 크래딧이 올라가는 동안 여성 앵커와 서로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어제 가장 재밌었던 유머였다.
2005/07/19 20:49 2005/07/19 20:49
DrunkenSTAR 이 작성.

생일

2005/07/14 20:50 / 생활
생일인데 여전히 노동 중이다. 내가 낼 수 있는 근력만큼, 내가 쪼일 수 있는 뇌의 꼬임만큼... 딱 그만큼만으로 지탄 받지 않는 노동이고 싶다. 자본주의가 그런 해묵은 바램을 넋놓고 지켜볼리 없다. 정직한 노동을 하는 자에게 빗속을 뚫는 무지개를 볼 수 있게 하고, 파도가 물거품을 삼키고 바다가 되는 이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사람도, 들꽃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자본주의는 없다. 오늘이 생일이건, 무엇이건 간에...
욕망이 사라진 거리를 지루하게 쏘다니다가 문득 동작대교에서 차를 세웠다. 나, 무엇때문에 싸돌아 다니다가 여기 서 있는 걸까? 더군다나 불러볼 이름도 없다. 연애가 하고 싶다. 갑자기 당신이 죽도록 그립다. 보잘 것 없는 내가 다시 덜컹거리며 동작대교를 건넌다. 하나도 즐겁지 않은 생일이 지나간다. 내 존재가 위태하던 시절이 그립다. 내 존재가 당연한 지금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
2005/07/14 20:50 2005/07/14 20:50
DrunkenSTAR 이 작성.

I 社 와 K 에게...

2005/07/12 22:04 / 편지
내가 대학교 때, 국제경제학 교수였던 호테크 선생은 이런 말을 했었다. '여기에서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배운 국제 학생들은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 배운 것들을 부단히 써먹어야 한다. 비즈니스는 여기서나 제군들의 고국에서나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말씀에 감동을 먹고 네셔널리티에 한껏 고무되어 막연한 애국심이 불탔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한마디로 'Yellow, Go home!' 아닌가?

나도 정통부 기준 기술자 등급에서 고급인 사람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식 비즈니스의 정치라면 할만큼 해 봤다는 얘기 되겠다. 그래서 약아 빠진 속물로 봤다면 정중히 충고컨데 좀 더 떡을 썰고 찾아 오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예의를 갖춰 좀 더 솔직해 지면, 감동 어린 말이나 글이 없다는 뜻이다. 그대들이 무슨 말을 해도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냉소적인 사람이란 뜻 되겠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나를 소개할 때는 이정도는 순수해진다. 게다가 나는 잘못하지도 않았잖은가...

부당하거나 그릇된 것이 있다면 그렇다고 말하고, 혹여 그것이 용기를 백배해도 어렵고, 또는 홍길동식 비즈니스 정치의 미덕에 어긋난다면, 그대들은 충실한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기에 하지 말라는 짓을 서슴 없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백보를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잘못한 사람이 사과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인더스트리에서 충분히 그대들의 역할이 출중하여 성장했던 역사에 대해서 못 인정할 부분은 없다. 대략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그 탑에 명예라는 돌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잘못을 한 것 치고는 너무나 가증스러운 그대들의 입장,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것 치고는 너무나 얕은 술수, 거기에 치졸한 비즈니스, 비겁한 자기 방어, 방만한 도덕, 순수하지 못한 자존심, 그리고 이어지는 뻔뻔한 생활까지... 이종격투기 판이 되어도 좋을 각본은 모두 갖추고 있는 일이라면 그대들의 거친 숨을 들으며 피를 묻혀도 좋다. 그대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특히 K, 그대의 경력으로 밥은 굶지 않게 해야 겠다는 나의 걱정은 그대들이 처절하게 나이브 하다고 가르쳐주고야 말았다.

그대들이 한 행위에 대한 나의 관대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대들은 나의 걱정을 자괴심으로 바꿔 놓았으며, 그대들은 명예를 훼손 당한 사람에게 주어진 회복의 시간을 그대들의 비열한 정치적 시간으로 사용하였다. 모르지 않았으나 내 참고 지켜봤다. 난 담담하게 그대들의 최초의 잘못된 행위 뿐만 아니라, 그대들이 30여일 가량의 시간 동안 보여준 허튼 행위 자체를 더러운 쥐오줌으로 규정한다. 그대들은 볕이 드는 구멍이라도 할당된 쥐새끼조차 못된다.

내 감수성이 그대들의 역사를 묻어 더러운 쥐오줌이 핀 벽지를 새로 도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로 인해 내 정서에 흠집이 생겨 사랑을 좀 더 아름답게 할 수 없고, 무지개 너머 넓은 세상을 꿈꾸지 못하더라도 나의 정직한 노동은 팽겨치고 왜곡되어도 좋다.
비열한 행위 자체에 대해서 묻기도 전에 사회 구성원인양 인간 실격의 자세를 보여주는 생활은 여기서 멈춰주어야 한다. 그 생활을 하는 동안 명예라고는 조금도 알길 없는 그대들은 피해자를 파렴치하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을 테니, 그대들의 역사를 묻어 비록 원수가 되어도 좋다.
내가 더욱 철저해지고 피가 차가워지기 전에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인생만 있는 것이 아님을 부디 깨닫고 무릎 꿇기를 바란다. 또 다른데 가서 타인이 고생한 것을 훔쳐 지것인양 행세하면서 세상에 쥐오줌이나 비비지 말고... 그대들이 줄타기하던 운은 나를 만나 여기서 끊어질 것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노라.
2005/07/12 22:04 2005/07/12 22:04
DrunkenSTAR 이 작성.

삶의 목소리

2005/07/07 23:18 / 생활
눈이 진심으로 아프다고 말한다. 세상의 욕망을 보아왔던 눈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아프다고 말한다. 등허리에 태엽을 달고 하던 일을 한다. 눈은 계속 말한다.
오래 오래 냄새가 났었던 소굴에서 벗어나 생긴 증후군으로 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꿈을 꾸다 일어나서 남산을 본다. 아픈 눈을 위해서 침대를 사야겠다. 다시 태엽을 등허리에 달고 눈을 위해 조금만 감는다. 이제 세상에 나가면 내 팔은 태엽에 닿지 않는다. 조금 감았던 용수철은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의 제도에 의해서, 의지하지 않고도 팽팽이 당겨진다. 35년 걸렸다. 내 태엽이 눈을 아프게 하고 팔이 닿지 않는 이치에 대해서...
눈을 위해 집을 지키는 침대는 소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몹쓸 사물들이 채워지고 내 눈은 욕망을 바라본다. 그렇게 세계가 붐비고 나면 내 욕망의 몸집은 커졌지만, 몹시도 가벼움을 느끼게 되고, 새의 흰배를 바라보며 떠올렸던 희망은 지루하다.
내 삶이 진지하게 말한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2005/07/07 23:18 2005/07/07 23:18
DrunkenSTAR 이 작성.

어떤 노동

2005/07/01 10:23 / 생활
여의도에서 다동으로 오는 길에 잠시 착한 하늘이 뚫렸다. 바닥만 바라보던 어떤 노동은 잠시 허리를 편다. 어떤 노동은 먼저 어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노동은 먼저 댓가를 보여주지도 가치도 비추지 않는다. 어떤 노동은 먼저 그 갈구의 간절함만큼 지쳐야만 한다. 얼마나 지쳤니? 최선을 다했다고? 어떤 노동은 곡괭이 얼굴에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비치는 착한 하늘이 아니라, 바위에 찍혀 귀퉁이가 번쩍 찢겨져 나간 흔적이다. 얼마나 지쳤니? 그게 어떤 노동의 끈덕진 물음일뿐... 최선은 간결한 노동의 배반, 길을 알고 파는 노동은 사심이 들어가기 마련.

너무 끈질기다. 어떤 노동의 물음.
2005/07/01 10:23 2005/07/01 10:23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