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다

2005/02/25 12:45 / 생활
이 어둠에서 저 어둠으로 강물이 흐릅니다. 낮동안 새끼를 잃었는지, 사랑을 잃었는지... 크고 둥근 바퀴 같은 찬강에 는개가 축축하게 젖도록 우는 소가 있습니다. 둥근 눈망울, 고운 얼굴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어둠 건너에서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연애소설[마지막편지]

가서는 후회 않고 고백하며 살겠습니다.
2005/02/25 12:45 2005/02/25 12:45
DrunkenSTAR 이 작성.

조카녀석

2005/02/22 20:28 / 생활
오래전에 계획했다가 차일피일 미루던 '고래가 그랬어' 정기구독을 명절전에 부랴부랴 치루고, 또 이것저것 앞가림이 바뻐서 받을 사람한테는 말도 못해줬는데, 2월호를 받았는지 조카가 글씨를 쓴 8절 도화지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핸드폰으로 컬러메일을 보내왔다.

"삼촌, 책(하트표시 안에 '책') 고맙습니다. 참 재미('미'자는 유난히 크고) 있어요. (화살이 뚫고 지나가는 하트표시)사랑해요."

명절날 새뱃돈 만원을 줘어주는 요식행위만 했던 삼촌이란 작자가 조금은 미안하고 조금은 생색내는 듯, 내년에 1학년이 되는 녀석한테 보내준 선물에 대해서 녀석이 보여주는 표현은 나의 속된 행동에 비해 과분하리 만치 살갑다.
사랑하면서도, 그리워하면서도... (어찌됐던 후회할 꺼면서)눈금자를 꺼내들어 결국 미련함을 표현하는 것은, 잘 판단하라고 있는 눈금자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7살짜리가 8절 도화지를 펼쳐 가르쳐주는 듯 했다.

녀석 : 삼촌, 1시간만에 다 읽었어...
나 : 재밌어?
녀석 : 응, 되게 재밌어... 삼촌, 어떻게 알았어? 나 종이접기 좋아하는데...
나 : 그런것도 있어?
녀석 : 응... 되게 잘 접어져...

녀석이 눈물겹게 고맙고... 어쩔 수 없이 귀엽다.



관련 POST : "고래가 그랬어... 그래?"
2005/02/22 20:28 2005/02/22 20:28
DrunkenSTAR 이 작성.

상행선에서...

2005/02/19 13:29 / 생활
옆에 타고 있는 사원 K 에게 '나는 스피드가 싫다' 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워크샵을 가는 내내 난 투덜거렸다. 미친듯이 내렸다는 눈도 볼 수 없는 밤 9시 30분의 영동고속도로가 싫었고, 먼저 도착해서 돼지고기를 굽고 있을 군불도 싫었고, 도착하면 퍼석하게 굳어 있을 갖은 고기들도 꼴보기 싫어서 투덜거렸다. 난 그랬는데, 실은 봉평이란 동네가 좋다. 좋은 걸 그냥 좋다고 하지 못하는 진절머리나는 시니컬 때문에 사원 K 는 스피드가 왜 좋지 않은지? 조차 물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사원 O 에게로 부터 사원 K 에게 전화가 왔지만, 사원 K 는 무서워서 말도 못 부치겠어요, 라고 나직히 얘기하고 있었다. 난 사원 K 를 비롯해서 사원 O, 사원 C, 사원 L 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내 사랑 방법은 누구에게나 거부감 투성인지도 모르겠다.
말이 씨가 되려나, 군불이 꺼져 있고 고기는 맛은 고사하고 씹기 조차 민망스럽게 변해 있었다. 거푸 술을 마시고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 마인드를 조절하다가 어느덧 잠이 들었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솔찮이 내리는 눈을 보았다. 멀리 태기산이 내준 허리, 거기에 불사조 공원의 슬로프가 있었고 눈안개가 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냉큼 담배를 비벼 끄고 시동을 걸었다. 왠지 이곳이 슬펐다. 다시 고속도로. 상행과 하행의 엇갈림, 나는 상행에 있다. 길 위에 있다는 것이 왜 이렇게 슬픈 것일까...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팔아 치워가면서 섬득섬득 불길한 느낌이 든다. 보험은 들어놨지? 먼지 먹은 증서를 털어내보고, 깨끗이 깨끗이 몸을 닦아가면서 설명할 수 없는 가파른 고립감에 시달린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인데도, 그것을 탓하는데 너무 익숙한 자세는 무모하리만큼 날 방어하려고 한다. 빌어먹을... 심장이 뛴다. 아직은 살고 싶은 게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젠장... 살고 싶은게 너무 슬픈 게다... 이렇게 엇갈린 고속도로에서 그래도 살고 싶은게... 슬픈게다...
2005/02/19 13:29 2005/02/19 13:29
DrunkenSTAR 이 작성.

다다름

2005/02/08 19:02 / 생활
간결하고 사념없는 여행을 마치다.
2005/02/08 19:02 2005/02/08 19:02
DrunkenSTAR 이 작성.

대만 구상

2005/02/04 22:15 / 생활
프로젝트를 들어 갈 때마다 "저번 프로젝트에서는 이렇게 안했는데요" 라고 말하는 팀원이 있기 마련이다. 저번 프로젝트에서 수행했던 어떤 것이 합리적이 아닌 논리적으로 성립 되지 못한다면, 프로젝트는 Unique 하다는 간단한 진리로 팀원에게는 건의요, 나에게는 불평으로 들리는 의견은 묵살 된다. 하지만, 나는 곧잘 반대의 경우로 가정의 오류를 발생시킨다.
프로젝트는 Unique 하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프로젝트 처럼 초기에 바쁘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가정의 심각한 오류는 스스로 작성한 빽빽한 일정을 보는 와중에도 능구렁이처럼 솟아 오른다.
게다가 비전 설계의 일환으로 회사의 다른 부서까지 맡아서 일처리를 하다 보니 여간 정신이 없고 바쁘지 않을 수가 없는 데다가, 설이 끝나고 바로 있을 전사적 워크샵에서 새로운 부서에 대한 운영계획과 비전에 대한 발표자료요청이 있은지, 한 일주일... 이것 저것 극적 타결을 보고 나니 청와대가 훤히 보이는 건물 꼭대기 팬트 하우스격 프로젝트 룸에 혼자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 불을 끄고 퇴근을 할 작정이다. 근처 회사에서 친구가 제안서 리뷰를 하고 있는데, 지금 전화해서 끝났으면... 간단히 새삼스럽지도 않은 소주나 한잔하고 훌쩍 가야 겠다.
내일은 일찍 서둘러 대만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난데없이 대만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지만, 그동안 전략적으로 생각했었던 구상을 정리하고 올 생각이다. 거창한 듯한 액면에, 일이나 나의 어떤 과거에 대해서 포괄적인 구상은 목로의 술집에서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 이면을 비롯하여, 2005년이 시작되기 직전에 2005년 1월을 2004년 1월로 때때로 잘못 표기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그야말로 기우가 되어버린 벌새의 날개짓 같은 작금의 바쁨에 있어서 대만처럼 무미 건조한 여행지가 최적의 탬포 조절용이라는데 나와 내 영혼은 적절히 동의하기 때문에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노파심은 쉬지 않는다. 이를테면, 나는 여행을 잘 하지 못한다는 본능이 있다고 어렴풋이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에러일까?
2005/02/04 22:15 2005/02/04 22:15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