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2004/12/31 15:53 / 생활
앞으로 당할 고통이나 질병을 대신하여 미리 다른 가벼운 고난을 겪는 것이지만, 앞으로 어떤 액운이 있을지 모르고 치루는 땜은 매번 그 주제와 분수를 넘어선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바꿔던 핸드폰을 송년회에 지친 정신이 놓아 버리고 말았다.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을 잘 잃어 버리는 편은 아닌데, 적잖이 타격인 것이 덜컥 70만원 가까이하는 일명 가로본능이라 알려진 기계를 샀기 때문이다. 18개월할부가 위안이면 위안이지만, 300여개의 전화번호는 고스란히 날렸고, 저절로 사람들이 정리되는 기분이기도 하다. 올초에 구입한 소니 클리에 TH-55 는 도무지 제 역할을 못하고 오늘도 리셋중이다. 차라리 오늘 회사에서 준 가죽 커버를 댄 다이어리가 쓸만 하다는 생각.

액운을 지레 짐작하는 비관적인 관측.
사물을 냉소적이고 무정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
정확히 말하지 않는 정치적 말투
사랑을 앞에 두고 조급해 하는 근심
칭찬하지 않고, 격려해주지 않는 성격

?? 또 버리고 고쳐야 할 것이 있나??
한해가 다 갔는데, 그냥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은 이 멍청한 기분이란... 뜨거운 것이 정말 뜨거워지지 않고, 불타는 것이 정말 불타지 않는다는 기분이 이런 건가보다.



새해엔 좀 부대끼며 살고, 구차하지 않게 살고 싶다.
2004/12/31 15:53 2004/12/31 15:53
DrunkenSTAR 이 작성.

예비군의 추억

2004/12/30 20:20 / 생각
예비군 동대장은 부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훈련장으로 예비군들을 끌고 다닌다. 수류탄 투척, 수색 매복, 응급조치, 지뢰 등의 훈련장에 예비군이 앉으면 조교들은 떠들고 그들은 졸거나 멍하다. 반대로 사격, 시가지훈련, 진지전술, 종합전술 훈련장에 가면 죽으나 사나 한번씩은 엉거춤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투털투털 불만이다.
늦게 군대를 갔다와서 저절로 늦게 예비군을 마친 나는 훈련장에서 보통 두마디 정도 말을 한다. 출석 체크를 할때, 맡긴 신분증을 찾을 때로 나의 말은 한정 된다.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 질 것 같지만, 전투복을 입고 있을 때는 그렇지가 않다.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유무의미성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관계의 형성은 말을 통해서 재정립 되지만 관계의 욕구가 진작되는 환경이 아니라면 말이란 필요없게 된다.
인간은 본래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는 서로가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가질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는, 그 절대 자유의 공간속에서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따라서 관계가 형성되는 건 척박한 환경속에서 인간과 인간이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서로 말을 해야 하고, 그로인해 말의 유의미성이 나타나며 정치적이며 감성적인 관계가 맺어 지게 된다.
군대는 생과 사의 가장 철학적이며 극단적인 환경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말의 관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제어하는 통제적인 작대기 관계가 있게 된다. 그 혹독한 통제의 시간이 베어 있음을 증명하는 두가지가 예비군 훈련장에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적 두려움을 느낄 때와 군번과 총번을 줄줄이 외고 있을 때다. 전투복을 입고 있는 것은 같지만, 정규 군인과 예비군은 확실히 다른 점이 많다. 훈련의 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밥도 사먹어야 한다.(동원예비군은 짭밥을 먹지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도 있지만, 그만큼 서로가 뭘 도와서 할만한 일도 없다. 같은 점이라면, 전투복을 입는 순간 체감온도가 10도 떨어진다는 것 정도.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훈련장에서는 대개 남이 하는 얘기를 듣는데, 그 대표적인 남이 예비군 동대장이다. 각 동사무소에 배치되어 해당 동의 예비군을 관리하는 예비역 직업군인인 그들은 우리와 반대로 말이 많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꺼내는 얘기는, 예비군 훈련을 어떻게 하면 안나오는 방법이 없을지 항상 고민하는 예비군들에게 향토 예비군 설치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과 처벌 시 벌금 등에 대한 판사의 권한을 추리하는 것 등이다.
딱히, 훈련을 잘하면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죄(?)로 며칠 나라에 봉사한다는, 사회인으로써는 매우 귀찮은 명목에 부흥이라도 하듯, 동대장은 얘기의 범위를 세상사로 넓혀가기 일쑤다. 그들에게 주적은 여전히 북한이고 운동권 대학생과 진보 언론은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내비친다. 진보는 곧 친북세력이라는 등식의 성립은 그들에게도 절대 수학인 셈이다. 그런 거북스러운 얘기를 듣고 있자면, 까닥까닥 조는 것도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간간히 동대장의 얘기에 동조하는 예비군들이 있는데, 그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에 즉각적으로 끼어들며, 조교들에게 반말과 욕을 일삼는다. 동대장의 주장이 거북한 이들도 있을 테지만, 말은 없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나는 그것에 반대한다.' 라는 개념인데, 그 말이 하기 어려운 건 행여 친북세력이 되어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분실이나, 밀실 같은 곳에 끌려가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움츠리기 때문이다. 법을 정하고 언론을 조정해서 개인의 상상을 조작하여 제대로, 제 사상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유전자를 키우는데는 고작해야 50년이 걸렸고, 예비군 훈련을 통해 반복 학습을 시키는데다가 추억이 되기까지 한다.
2004/12/30 20:20 2004/12/30 20:20
DrunkenSTAR 이 작성.

사랑

2004/12/29 19:03 / 생활
사랑은 공명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전이 되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사랑은 견딜 수 없는 바램이다.
사랑은 화려한 비탄이다.
사랑은 댐이다.
사랑은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연히 상자를 여는 것이다.
사랑은 마지막 편지를 읽어 주는 것이다.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사랑은 수식하고 은유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냥 하는 것이다. 사랑은, 골다공증 걸리신 어머니가 말 없이 자취방을 청소하고 빈 냉장고를 채우시고 가신 것이다.
2004/12/29 19:03 2004/12/29 19:03
DrunkenSTAR 이 작성.

허무한 것들

2004/12/29 17:27 / 생활
몸버린 여자, 돈과 여권을 뺏기고 인도 어느 지방을 열흘간 끌려다닌 남자, 실종 신고를 했더니 거들떠 보지도 않는 인도주재 영사관, 갑자기 경찰서에 끌려가서 이유도 모른체 6개월간 감금 당한 회사원은 어떻게 됐을까?
편견일지 모르나, 인도여행은 썬글래스 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하거나 한가하게 토속술을 마시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되는 거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는 사교육부터 처방을 내리지 않으면 성장도 없고, 고용도 없고, 자영업은 쇄퇴하고 부동산은 오르고 사교육비의 지속적 증가가 임금인상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어 파업의 악순환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얘기를 하고 나온 지난 송년회, 3년전 30~40명이 모여 치루던 IT 송년회가 이제 겨우 대여섯명이 모여 뭘 해도 안되는 것들에 대한 리버스 플레이를 하는 장이 되어 버렸다. 비단, IT 의 동향에 있어서 그 안되는 것들이 몰려 있지만은 않지만, 꿈을 돈으로 살 수 있는 형편 조차 못되는 현실이 온전히 무엇인가를 꿈꿀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눅눅한 찌그래기를 남긴채 송년회는 10시쯤 끝이 났다.
신념에 찬 사상이 없기 때문에 난 NGO 나 정치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최근 국회에 계류중인 개혁입법중에 국보법, 사학법 등이 경제라는 먹고 사는 개념에 공격을 받을 때면 먹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사는 권리를 위한 개혁법안을 통과 시키기 위해서 먹는 것은 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부루조아적인 권리의 질적 향상을 위해 먹는 것에 절대 한눈을 팔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담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오락가락 한다.
국가 총체적인 문제로써 청년실업과 신용불량자들에 있어서 그들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는 JOB 이 없거나, 제대로된 JOB 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송년회때 사교육비가 주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다분히 부루조아의 사고인 셈이다.(관점에 따라 옮고 그름의 판단이 다르겠지만,) 일부, 성장론자들에 의해 신뉴딜정책은 JOB 과 성장을 관계 시켜서 5%이상의 성장을 통해서 JOB 을 늘린다는 계획인 것 같다. 미국의 예를 통해서도 지난 20년간 2.5%의 경제성장에서 1% 가 늘어날 수록 실업률이 0.5% 씩 하락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의 기준은 2.5% 인데 반해 우리는 5% 라는 것인지 아니면 5%에서 1%씩 성장했을 때 현재 전체 실업률에서 몇 퍼센트씩 하락하게 될 것인지, 우린 알지 못한다. 불경기에 찍어낸 화폐와 지속적인 성장으로 인해 행방불명되었던 화폐가 시장에 나와 그것들과 섞이면서 빗어질 인플레이션은 어차피 지속되지 않는 실업률이론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린 알지 못한다.
안되는 것들만 늘어놓은 송년회에서 새로 맥주를 시켜놓고 이제 될만한 것이 무엇인지 얘기해 보자고 했으나, 그걸 알면 리버스 플레이를 하겠냐는 사람들... 허무하다.
장기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우린 허무해질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애니웨이,
내년엔 이런 송년회를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송년회들을 여러개 마쳤다. 허무하게...
이런 관계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솔직히 허무하다.
2004/12/29 17:27 2004/12/29 17:27
DrunkenSTAR 이 작성.

송년회

2004/12/24 16:01 / 생활
올해, 내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다. 어떤 선물을 살까?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진 만큼 설레임도 없어졌다. 다만, 현재가 바로 선물 이라는 선동적 개념의 책인 Present 의 입장에서 일자리의 선택과 그 과정이 보유한 메가톤급 스트레스가 연말 선물로 있을 뿐이다.
현실이냐, 비전이냐 하는 문제는 일자리 앞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민거리고, 방황하는 직원들에게 또는 컨퍼런스 스피킹 때 비전에 대한 능수능란한 발언으로 그 선동의 앞잡이를 자청 했으나, 내 앞에서 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일자리가 노동을 전제로한 생계의 목적과 정체성의 중대한 수단이긴 하지만, 단지 그런 수단의 일자리가 경제학적 개념만 지닌 건 아니다. 이를테면, 어제 그룹 송년 파티 때 우울한 경제적 개념 앞에서 유쾌한 이야기에 왁자지껄한 인간 관계와 고르는 고민을 포기 했으나 받는 기쁨을 만끽 했었던 만년필 선물은 그것을 설명할 딱딱한 논문은 없고 그저 설레임이 가득한 한편의 에세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송년회 간판 까지 걸고,



올해는 펼치지 않고 처음부터 깔끔하게 위스키로... 하자는,



과장들끼리 군대, 학창시절 수다 중



역시, 할일 없는 과장들 모여서 수다, 사원들은 바뻐서 좀 늦고...^^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을 들고 다 같이 목하 흥분중...


감당이 가능할 만큼 한해를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의 나는 여전히 갈등과 욕심으로 번민하고 사랑을 잃었다. 그정도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불유쾌한 나의 모습은 1월을 맞는 드라마틱한 시간이 자꾸만 통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싫다. 올해의 아우라는 어김없이 작동하는 소멸로 치달아, 방종에 가까웠던 슬픔과 외로움에서 맑고 깨끗한 자유의 여백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2005년이 되면 다시 사랑한다 말할 수 있고, 다시 해보자 말할 수 있고, 다시 도전해보자 라고 말할 수 있기를... @2004.
2004/12/24 16:01 2004/12/24 16:01
DrunkenSTAR 이 작성.

어머니 생신 때, 6살 된 조카가 아동용 책을 들고 와서 얼큰히 술이 취한 작은 삼촌인 나에게 낸 퀴즈가 생각난다.
조카 : 삼촌, 늑대는 언제 우는지 알아?
나 : 음... 술 마시고 괴로울 때...

이 녀석한테 뭔가 해주고 싶은데, 내 앞가림에 치여 한번도 마음에 있는 걸 물질로 표현해주지 못했었다. 그래도 애들의 기억엔 '마음은 그렇지 않아' 보다는 껴 안고 잘 인형이 더 오래 남지 않을까, 싶다.

부모의 교육 원칙 상, 고 나이 또래의 유치원생들이 지치도록 다니는 무슨무슨 학원 같은데도 다니지 않고 신나게 놀기만 하는데도, 곧잘 한글도 깨우치고, 그림도 수준급인데다가, 지 엄마와 20분동안 잘잘못을 얘기하고 수긍할 줄도 아는 조카한테 야간비행의 역작 '고래가 그랬어' 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정기구독해 주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삼촌처럼,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처럼 되는 동안, 자신만의 오롯한 생각과 의지로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와 진실를 선택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다음에 만날 땐,

조카 : 삼촌, 전쟁이 왜 나쁜 줄 알아?
나 : 글세...
조카 : 전쟁은, 이러이러저러저러해서 나쁜거야...
나 : 누가 그래?
조카 : 고래가 그랬어!
나 : 그래... !!

기대해 볼 수 있을까?

2004/12/21 20:20 2004/12/21 20:20
DrunkenSTAR 이 작성.

2004, 크리스마스

2004/12/21 13:13 / 생각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는 유인물을 건넨다. 인생은 막연한 사유와 망각의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 되어야 한다, 는 막연한 생각이 있듯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철폐를 촉구하는 유인물을 건네는 몸부림에 무관심한 망각이 있다. 시간에 지배된 어떤 인생이 실존의 삶으로 점철되기 위해서는 막연한 사유가 구체적인 행위나 실천이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비전이나 가치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행위를 하기 위한 그 어떤 사유가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고 보편적인 진실이 지닌 아픔에 접근하지 못하고, 망각을 전제로한 이미지와 박제된 텍스트에만 열광했을 때 보여지는 행위는 미개한 슬픔이다.

2004년, 아르헨티나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계신 외삼촌은 존경 받는 목사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교회' 를 믿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선 그의 수많은 제자들을 믿지 않는다. 성경을 한번도 읽어 보지 않은 자가 무엇을 믿고 안 믿고 선택하거나 도리어 그것이 어떻다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딜레마다.
그리스도에 무지한이 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가 지금의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무지한의 시각에는 그리스도가 보여준 보편적 진실의 전파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그리스도라는 한 개인(제자들의 입장에는 신이겠지만)은 막연한 사상이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보편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선각자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인정하지 않은 하느님의 뜻을 전파하며 '나로 인해 세계가 변할 것' 이라는 절실한 인간의 믿음은 갈갈이 찢긴 육신조차 막을 수 없었다. 오늘 우리가 그 믿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보편적 진실(배고픈 자에게 교회에 나와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그에게 주어라 라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같은 권력에 기대어 휘두른 고문과 폭력 앞에 당당히 굴복하지 않고 흘린 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민족을 거부하며 세상의 평화를 제한하는 미국에 기대어 국가보안법 사수와 학부모가 학비를 냈고 국가가 지원하는 학교를 자신이 세웠다는 것만으로, 비리의 온상도 내맘대로 한 것이라는, 미개한 우격다짐을 바로 세우겠다는 개혁법안을 빨갱이 법안이라며, 미국국기를 내걸고 우국 기도회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건 그렇지 않은 동시대인들이건 오늘날 크리스마스가 지니게 된 기호는 몇가지로 분명해진다. 산타클로스, 선물, 과도한 열광, 꽉 막힌 대로, 기적 같은 사랑...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의 믿음으로 세계가 변화되리라 했던 그리스도는 오늘 그의 제자들이 기름을 뺏기 위해 타민족에 극한의 폭력을 가하는 미국과 이웃의 생각이 자기와 다르다고 하여 그 차이를 굴복시키는 법률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손가락이 짤린 이주 노동자들과, 교육제도에 핍박 받아 자살을 하는 어린 학생들과, 절망에 휩싸인 노숙자들에게 내밀던 손을 거둬들이고, 다른 동시대인들은 고가의 선물과 연예인들의 스캔들 얘기로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육신이 광란을 벌일 수 있을지에 골돌하는 세계의 변화를 예견이나 했을까?

그리스도가 2004년 현대인들에게 과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2004/12/21 13:13 2004/12/21 13:13
DrunkenSTAR 이 작성.

instant Pig by clazziquai

2004/12/17 17:08 / 생각
음악을 듣긴 하지만, MP3 를 구은 구닥다리 가요나 오페라 아리아를 차안에서 아무 생각없이 틀어 놓거나, 회사에서 역시 구닥다리 이어폰을 끼고 약간의 잡음을 감내하며 불법 MP3 를 듣는 정도. 올초에 Asoto Union 이라는 벤드의 think about'chu... 한동안 이 경의로운 비트에 푸닥거리를 했었다는, 헌데...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 공연한 라이브 think about'chu 는 이게 내가 열광했던 비트였단 말인가? 대단한 실망, 그리고 해체됐다는 최근의 소식까지...
아무일도 안하고 간단한 프로젝트 spec 파악 보고서 업무와 영업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요즘, 거의 돼지나 다를바 없는 생활에 클래지 콰이의 instant Pig 앨범은 음반시장의 침체로 봤을 때, 분명 내 주머니에서 만삼천원쯤은 꺼리김 없이 경제활동을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한 음악이다.

2004/12/17 17:08 2004/12/17 17:08
DrunkenSTAR 이 작성.

자살, 그리고 삶

2004/12/16 18:34 / 생활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라는 것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意味)야 말로 가장 절박한 문제인 것이다.

알베르트 카뮈는 시지프를 통해 신의 형벌에 저항하는 방법이 자살이라고 외쳤다. 어떠한 철학적 사유나 위대한 사상이라도 그것을 담고 있을 육신이 사라진다면, 실존의 의미는 영원히 없는 것이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삶의 의의에 대한 확신은 일련의 가치, 어떤 선택, 우리들의 기호를 전제로 하고 있다. 길이 막힌 채 인생을 고작 이것 밖에 안되는 것으로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한 삶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만족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가장 잘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판단은 단호히 거부된다. 경험의 양(量)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순히 생각해야 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온 두 인간에 대해서 세계는 언제나 같은 양의 경험을 제공한다. 문제는 그것을 의식화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의 삶과 반항, 그리고 자유를 느끼며 취득하는 것이다. 그것도 될 수 있도록 다량을 취득하는 것, 이것이 산다는 것이며 또한 될수록 많이 산다는 것이다. 이것들을 명석히 식별하게 된다면 경험의 질(質)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라지게 된다. 끊임없이 깨어있는 의식의 영혼앞에서 현재와 현재의 연속, 그 안에서 살아있다는 것이야 말로 부조리한 인간의 이상이다.
2004/12/16 18:34 2004/12/16 18:34
DrunkenSTAR 이 작성.

나는 생각한다.

2004/12/15 18:35 / 생활
벤쳐 정신을 가지고 일하자, 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벤쳐 라는 말이 언제부터 진부성을 띄게 되었는지 가늠은 안되지만, 난 요즘 벤쳐 정신이란 말을 프로젝트 중에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2년 8개월 동안, 나는 프로젝트성 마인드를 주사기에 넣어 중독에서 깨지 못하도록 쉴새 없이 투여 했다. 기획은 협소한 개념에서 출발해서 끝내주길 원했고, 관리의 모든 대상은 간트차트에 지배되어 업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벤쳐 라는 말을 상실했던 것 같다.
상실한 단어는 자아의 결핍을 동반하여, 처음 보는 어떤 것 또는 처음 만나는 어떤 것으로 분류된 단어가 다시 출현했을 때 적당히 거부감을 가지도록 만든다. 내 입 속에서 혀와 뇌세포가 공동으로 작업한 단어가 아닌, 벤쳐 라는 단어를 불쑥 들었을 때, 나는 결핍된 자아를 동원하여 그것을 거부했다.
이를테면, 영혼이 깃든 어떤 것에서 그 영혼이 관리가능한(Manageable) 어떤 대상이라면 그것이 깃든 어떤 것은 일정을 설계할 수 있고, 질적 보장이 가능하며, 예산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란 가정이다. 바꿔 말하면, 벤쳐 정신이 깃든 어떤 것에서 벤쳐 정신, 즉 벤쳐 라는 것이 관리 가능하다면... 으로 대입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관리가능한의 판단은 Historical Data 와 축적된 올바른 경험, 객관적 분석 자료에 의한 것이다.
정부나 신문, 또는 정부의 의견을 보도한 신문에서 벤쳐라는 것을 떠들때면, 나의 거부는 이렇다. 벤쳐밸리다, 벤쳐인력확충이다, 라는 토양만 만들어 대면 벤쳐 정신은 어떻게 깃들게 할 것이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기나 할 것이며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판단이나 하겠는가, 벤쳐가 마치 웹 마스터인양 선전하던 문민정부의 아둔함으로 그 많던 마스터는 어디로 갔고, 마스터는 안오고 IMF 가 오는가 말이다.
회사 CEO 가 벤쳐라는 것을 말할 때면, 나의 거부는 이렇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가 그것도 지금 규모가 얼만데 어설프고 한물간 벤쳐를 들이대, 조직이란 걸 생각해보고 지금 조직에 필요한 펀더맨탈이 무엇인지 생각 좀 해보라고, 벤쳐를 무슨 야근 수당 안주면서 밤새 일하는 것으로 내모는 마인드로 생각하지 좀 말라고.

하지만, 지금 난 벤쳐가 관리할 수 있는 무엇, 또는 비지니스적인 무엇이 아니라 오롯이 정신의 무엇으로 생각되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처음 벤쳐 정신이란 것을 가졌었기나 했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불타는 열정이 정말 불타는 열정으로 사방으로 태우는 가솔린이 되었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이 고민의 끝에서 나는, 가볼 수 있는 길, 갈 수 있는 길, 가야할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혹은, 내 기록에 두줄이 북북 그어질 막다른 길에서 그나마 그 정신을 찾았다는 것에 행복해 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자살할 한강다리를 답사하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난, 아직 가슴이 뜨거운가?
2004/12/15 18:35 2004/12/15 18:35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