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만끽하던 밤은 언제부터 사라져 버린거지? 가지에 달랑 매달려 있는 입사귀를 보던 고요한 여유는 가을 내내 한번쯤 있었던가?
익숙한 Bar 와 익숙한 테네시 위스키, 자꾸만 말을 시키려는 바텐더에게 오늘은 왜 이렇게 손님이 없나? 한마디 물어보고 혼자 있게 해달라고 물리친 밤. 2시간째 혼자 술마시기, 분노는 불타오르지 않고 사랑은 뜨거워지지 않는 34살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두근거리는 건, 분노도 여전히 새차게 불타오르고 사랑도 데일만큼 뜨거워질 것 같은데 그걸 감당할 만한 나이를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심장을 진정시키는 일도 이제는 일이 되버릴 만큼 바뻐졌다.
술에 빠지면 빠질 수록 놓어버리는 기억에서 가까스로 건져 올리고 보니 내가 대서양을 처음 본 날이 오늘 같은 가을이었던 것 같다. 이런 한가한 생각들 때문에 술에 빠져버리는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조금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추억에 대한 예의' 라던데...
이 정도면 너무 예의 바른 거 아닌가 싶다.


그제서야 바텐더가 문 닫을 시간이라며 나타났다. 술이 취했나? 이 여자 대서양 만큼 깊은 눈을 가졌네... 일찍 알았더라면 말이라도 더 부쳐볼 것을... 언제나 이 정도지, 나 라는 사람에게 주어진 남루한 깨달음을 동반한 농밀한 슬픔 같은 것. 모자를 눌러 쓰고 밤을 삼킨 별을 바라보며, 이런 슬픔도 가끔은 유혹이 되기도 하는 가을 바람을 맞아 본다.
2004/10/30 15:00 2004/10/30 15:00
DrunkenSTAR 이 작성.

Chagall, Marc

2004/10/25 22:49 / 관심/페인팅
끝내 샤갈 전시회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를 주제로한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화를 떼어 왔을리 없는 전시회였을테니 별반 후회는 없다.(아니, 아주 없지는 않다.)
샤갈에 대한 잘못된 소문 3가지를 든다면, 하나는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이건 너무 기초적인 진상규명이겠지만, 태생과 성장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에), 하나는 표현주의 화가라는 것(이건 미술 평론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듯, 이를테면 라파엘로가 르네상스적이라기 보다 마니에리스모적 이라는 극단적인 견해와 비슷할 듯), 하나는 샤갈의 그림중에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 샤갈은(Marc Chagall)Russian-born French painter 이고, 표현주의라기 보다는 큐비즘에 가까운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작품은 없고 시인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란 시는 있다.
소문의 진상(?)을 밝히고 샤갈의 대표작중에 하나인 I and the Village(1911)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을 대입, 비교해 보았으나 억지 주장이 아니면 이 또한 관계가 없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시인이 샤갈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나 파리 근교의 몽파르나스에 가보고 기의 한 것인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나와 마을'의 눈꽃을 보고 시적 감흥에 매료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형상체로는 도무지 세계와 대입이 불가능한 어떤 정신적 붓질인 추상표현주의의 저널리즘적 억지 주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를 주제이긴 하다. 하긴, 표현주의, 큐비즘 등이 추상표현주의를 낳게된 주춧돌이라고 하니 아주 연관성이 없는 것도 아니겠다.
샤갈 특별전에 붙은 색체의 미술가라는 타이틀 또한 일종에 추상표현주의의 친구인 저널리즘의 횡포다. 샤갈의 작품이 색체에 있어서 공간의 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원근감 마저 색체에 근간(I and the Village / The Flying Carriage)을 두었다는 것에서 색체의 미술가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작품의 다양한 감상에서 색체의 고정관념은 샤갈의 태생과 성장에 있어서 착취와 억압의 배경, 그로인해 표현되는 슬픈 따뜻함의 역설(Self-Portrait with Seven Fingers), 통렬한 공간구조속에 놀라운 사랑의 설득력(Birthday) 등을 폭넓게 음미할 수 없도록 여백을 줄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anyway!!
명작을 진품으로 보는 기회는 일생에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니다.



1913-1914 [Self-Portrait with Seven Fingers]


1913 [The Flying Carriage]


1915 [Birthday]


1911 [I and the Village]
2004/10/25 22:49 2004/10/25 22:49
DrunkenSTAR 이 작성.

의자에 앉은 인생

2004/10/24 23:57 / 생활
부모님이 짤스부르크에서 찍어오신 사진을 보다가 작년 이맘때 다녀온 피렌체나 이런 곳에서 한 2년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으로 칼국수를 먹으며 어머니는 올해도 넘기는 거냐? 하신다. 대구로 내려가서 프로젝트를 할 것 같다는 계획은 얘기 했지만, 갈림길에 선 다른 사회적 상황이나 궁금해하실 결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밤 10시쯤 부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데 철모르는 내 머리속엔 고딕한 짤스부르크의 직선과 피렌체의 색감이 디졸빙 되다가 파리에서 4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원형 탁자가 2개정도 자리잡을 수 있는 예술서적 전문 책방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탁자 곁에 마련된 마호가니 목재의자를 끌어 당길 때마다 끄르륵 소리를 내는 소박한 인생들과 내가 살았던 서울, 나를 움직였던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의자에 앉아 액자에서 튀어나온 그들과 나의 단출한 예술에 대해서...
그때가 되서 젊어서는 시린게 가슴뿐인줄 알았다며, 시인 이정록의 '의자'를 모국어로 흥얼거리기라도 한다면 그저 담담하게 저무는 계절에 침묵할 수 만은 없겠지...

시인 이정록 '의자' 에 앉아보기..

2004/10/24 23:57 2004/10/24 23:57
DrunkenSTAR 이 작성.

신화가 될 판결

2004/10/22 14:08 / 생각
헌재는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에 있어서 근거의 서두가 관습헌법이라는 무영의 표상이라고 판결했다. 길거리에서 치기어린 쌈박질로 법과 맞닥들였던 일개 시민인 나는 피식~ 비웃음이 나왔다. 고매하신 지식과 영롱하신 지혜를 가지셨을게 분명하다고 믿었던 재판관나으리가 "보이지 않는 것도 믿으면 헌법" 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봉건시대 대청마루에서 마당쇠에게 이르는 추상과 별반 다르지 않음이다. 결국 우리들은 우매한 마당쇠가 돼 버렸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하고 무관의 제왕이라는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배웠다. 관습법이 성문헌법의 우위 개념이라면 판결문은 굳이 쓸 필요가 없겠다 싶다. 구문의 관습처럼 말씀으로 하시면 될 것을 말이다. 그래도 이것은 근거로 남겨야 되겠다 싶으셨는지 또렷 또렷 판결문을 읽고 배포하심은 영롱한 지혜의 돋보임이라 하겠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개 시민이지만, 민주의 의미는 절차와 근거의 주의이고 공화는 도덕적 권리의 출현 주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공화주의가 결핍의 민주주의를 보완한다 점에도 동의한다.

서울이 수도여야 하고, 부동산 값 안정이라든가, 기타 등등의 사회적 논의 대상을 배제했을 때, 아니 헌재는 그 사회적 제한을 판결의 기준에 포함시키는 순간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하는 다른 헌법기관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되물어 봐야 할 것이다. 헌재가 수호해야 할 것은 서울은 수도다 라던가, 부동산 시세가 아니라 6월 항쟁으로 이룩한 제6공화국의 100여 조항에 달하는 근거가 있는 글자 헌법이다.

믿어왔던 관습이 성문헌법에 우위라는 생각은 판결문으로 먹고 살아오신 고매하신 지식이 실제로 고매하신지 까뒤집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을 뿐이다. 기초 언어학에서 의미를 가진 것은 오직 가시적 현상에 의한 본질 뿐이다. 믿어왔던 것은 존재한다고 믿고 있을 뿐이지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언어적 의미를 가지고 사회적 합의점을 낼수 있는 근거는 기호이지, 믿고 있는 어떤 존재감에 대한 신화적 해석은 결코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수도이전의 합리성과 불합리성을 논하기 전에 헌재의 생각은 매우 신화적이다. 그것은 달달 외우실 헌법조항을 다시 한번 조명하기는 커녕 정치적 이슈에 매달려 근거없는 봉건적 관습주의로 미봉하게된 근거이다. 이 결정은 명백히 피로 이룩한 6월항쟁의 명예를 회손한 것이고 절차와 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민주주의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이나라에 대해 사표를 던지고 싶게 만드는 고매하고 영롱한 판결되겠다.
2004/10/22 14:08 2004/10/22 14:08
DrunkenSTAR 이 작성.

月下獨酌

2004/10/20 19:52 / 관심/텍스트
월하독작
이태백

天若不愛酒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어찌 하늘에 술별이 있으며
地若不愛酒
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
地應無酒泉
어찌 술샘이 있으리요
天地旣愛酒
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
愛酒不傀天
술을 좋아함을 어찌 부끄러워하리
已聞淸比聖
맑은 술은 聖人에 비하고
復道濁如賢
흐린 술은 또한 賢人에 비하였으니
聖賢旣已飮
성현도 이미 마셨던 것을
河必求神仙
헛되이 신선을 구하는가
三盃通大道
석잔술은 大道에 통하고
一斗合自然
한말 술은 自然에 합하거니
俱得醉中趣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物謂醒者傳
깨인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月下獨酌 其二 보기

2004/10/20 19:52 2004/10/20 19:52
DrunkenSTAR 이 작성.

칠성상어의 동경

2004/10/19 22:04 / 생각
남해의 완도군 보길면 예작도에 살고 있는 이항제씨는 마지막 상어 낚시꾼이다. 주낙이라 불리우는 낚시바늘을 이른 새벽에 바다에 던져넣고 셀로판지 같은 태양이 수평선에 오그라들 무렵이면 이네기라 불리우는 칠성상어의 거친 몸부림을 기대하며 주낙을 걷어 올린다. 대략 2 미터쯤 되는 상어를 두사람이서 잡는데 쓰는 도구는 상어의 콧등을 쳐서 기절시키는 몽둥이와 아가미를 잡아서 걷어챌 쇠꼬챙이가 전부다. 칠성상어가 사람을 해치는 상어는 아니라고 하지만, 시꺼먼 수면을 기어이 박차고 솟는 육중함은 저 심연의 밑바닥에서 잠자던 공포이기에 충분하다. 그런 공포의 콧잔등이를 보잘 것 없는 나무 몽둥이로 수차례 내려치는 이항제씨의 굵은 팔뚝은 이미 어부가 아니라 엑소시스트다. 상어는 이내 펄떡거리던 생존 의지를 반납해버리고 만다.
폭풍이 이는 날이면 자유로운 심연을 허덕였고, 날이 선 작두 지느러미를 별에 비춰보던 밤, 조류에 내맡겨진 몸이 천수로 썩어 모래바닥에 눕혀지길 동경하던 칠성상어의 생의 마지막에 보는 것이 이항제씨의 몽둥이였다니...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디를 가야 할지 조차 모르고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를 절대공간의 바다, 제 아무리 속력을 내더라도 꽉 막힌 현실에 부딛치지 않았던... 하지만 상어는 기껏해야 시속 5노트로 그리도 고단하게 퉁퉁거리며 오고서야 겨우 닿은 곳이 소금기 얼룩진 춘추복 상의를 툭 털면 밀려오는 비릿한 냄새의 예작도 포구.
살 한덩이는 준경이 시집가는데 잔치 음식으로 쓰이고, 살 한덩이는 마을 노인정 경로잔치에 쓰인다고 끌려가고, 꼬리 지느러미는 특별히 이항제씨가 챙겨 빈 쌀독에서 삭혀지고...

더 이상 날생선의 푸른 동경은 없을지언정... 나는 반포동 킴스클럽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자반고등어처럼 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펄펄 뛰는 활어는 아닐지언정... 나는 어느 날 포구 어귀 좌판에 늠름하게 펼쳐져 있는 칠성상어 일테다.
2004/10/19 22:04 2004/10/19 22:04
DrunkenSTAR 이 작성.

책방과 서점

2004/10/17 18:07 / 생활
종로서적이 없어졌을 때, 나는 그곳에 두고 온 몇가지 추억이 소멸될까봐서 서둘러 김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와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을 산 적이 있었다. 그렇게 추억을 간직했다 싶었는데 도리어 가뭄이 들었던 것은 부려부려 갔었던 서점으로의 발길이었다.
요즘도 책방에서는 책구경만 하고 실제 책을 사는 것은 10% 할인을 해주는 인터넷 서점이고 보니, 80년대 초 고모가 살던 원효로의 골목 처럼 없어졌다가 나타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도사리는 계단을 비집고 올라가서 노트에 텍스트 몇줄을 배껴 오는 살가운 책방을 느낄 수 없게 된 시절의 안타까움은 내 스스로의 탓도 있다.


무슨 책을 살까 정해놓지 않고 책방에 들렀을 때라도 무슨 책을 살까? 고민 했다기 보다, 이 책은 왜 소설이고 시 일까?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유니폼을 입고 책값도 치뤄주고 안내도 해주는 직원들이 꽂아 놓은 대로 인식되는 저건 소설책, 저건 시집이 왠지 이상하게 느껴지는 대형 서점. 하지만, 책방은 여전히 학창시절 법과대학 도서관의 빽빽한 고서 냄새로 단잠을 꾸었던 추억의 연장선처럼 나의 안식처임엔 틀림없다.
독서의 비중이 소설과 시에서 멀어졌을 때, 계간 창비(창작과 비평)의 꾸준한 단편과 현학적 비평의 소름과 비닐 커버가 뜯어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집의 자유열람은 사소한 즐거움 이상의, 그 무엇의 비상飛翔 같은 것이 된다.
그래서 두서없이 책 몇권을 10% 할인 없이 산다고 투철한 경제논리와 개인적인 긴축재정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이성복]문학동네

피렌체 찬가
[레오나르도 브루니]책세상

프로젝트 관리의 전략적 계획 수립
[해롤드 커즈너]가남사

그림 속으로 난 길(미술관 밖의 미술 이야기 1)
[강홍구]아트북스
2004/10/17 18:07 2004/10/17 18:07
DrunkenSTAR 이 작성.

죽도록 마셔도...

2004/10/14 16:38 / 기억
반가웠으나...
잔인한 날...
너무 술을 마셔서, 너무 취해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두번이나 쓰러진 새벽,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주일동안 시동 한번 안건 차안...
내 모습이 이렇게 불쌍할 수가 없고... 나, 왜 이러니...??
모든 세포가 녹슬어 버린 듯 움직여주질 않고, 술취한 나를 보듬고 있던 라디오만 새근거리는 아침... 연자맷돌처럼 뚫려버린 가슴, 마음이 울어 부은 눈을 비비우고 나는 다시 제안설명회를 하러 12시30분 대구행 KTX 를 타야한다.
잔인했던 시간은 뒤로 보낼 수 있으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술로 적셔도 치유되지 않는...
2004/10/14 16:38 2004/10/14 16:38
DrunkenSTAR 이 작성.

대구출장기

2004/10/12 21:11 / 생활
KTX 에서 자고,
무거운 제안서 들고 낑낑거리고,
그 넓고 사람많은 역사안에서 제안서를 질질 끄는 이사님한테 가오안선다고 머라하고,
짜장면 먹고,
너무 반갑게 고객 만나고,
바로 1시간동안 구라치고,
다시 택시타고 동대구역으로,
바람 부는 방향에서 담배피우다가,
KTX 에서 자고,
다시는 4시간동안 운전 못할 만큼 좁아진 그곳...


짧은 거리에 남지 않는 기억.
2004/10/12 21:11 2004/10/12 21:11
DrunkenSTAR 이 작성.

1500년 ~ 1700년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생활의 소리로 인해 죽었던 감성의 고막이 트인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는 실은, 네덜란드의 화가 요한슨 베르메르(Jan Vermeer)가 그린 그림에 대한 얘기다.
어디를 찾아봐도 얀 베르메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로 표현된다. 영화에서도 묘사되는 것처럼 내성적이고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소심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피렌체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르네상스의 물결이 닿지 않고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술의 패트런들, 즉 영주나 교황과 친분이 없었던 것도 그가 잘 알려지지 않게 됐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산치오 라파엘로 같은 인물은 수많은 제자를 거닐고 다니면서 교황청과 성을 오가며 사교를 즐겼다는 것을 보면 대비가 가능하다. 게다가 당시, 네덜란드에는 불세출의 꽃의 화가 램브란트가 있었다는 것도 그가 그늘에서 그림을 그리게된 동기가 아닐까? 평생 35점의 작품을 남겼어도 21점을 오직 한명의 패트런을 위해 작품활동을 한 점도 한몫했을 수도 있겠다.(영화에서 베르메르의 패트런은 색광에 파렴치한으로 나온다.)

빛이 투영하는 색깔의 범위를 붓의 몸짓으로 표현한 베르메르는 화풍으로 본다면 바로크적인 빛과 르네상스적인 색깔의 화가였던 것 같다. 상당수의 그림이 시점만 달리 할뿐 그의 아틀리에를 배경으로 그려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인지 영화의 도입부는 '화가의 아틀리에' 라는 작품을 연상케하는 소품들이 가득하게 펼쳐진다. 가냘프게 빛이 스며드는 모자이크 창문과 그에 반은 어둡고 반은 먼지가 얻혀진듯한 네덜란드 지도, 헝겁들이 널려 있는 탁자와 상젤리제, 이젤... 오페라를 보기전에 아리아를 듣고 가는 것처럼 그림을 한번이라도 보고 간 사람이라면 절로 탄성이 나올만 하다.

진주 귀걸이를 할 그리트에 대한 베르메르의 연민이 중세 특유의 생활의 소리와 퀄트 되면서 예술과 예술의 소품에 대한 신비감에 도취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튜브에 담겨진 물감이 없는 당시 색을 만들기 위해 식물, 광물질들을 섞어서 만드는 과정과 필시 잔 강에서 기어올린 물로 붓을 닦아내는 장면들은 예술이 '물질에 투영된 정신세계'이며 그때 존재하는 질료들에 의해서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가난했던 고흐가 가질 수 없었던 베르메르의 상대적 부유 같은 것 말이다.

트레이스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가 원작이긴 하지만 헤이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영화속의 그림, 베르메르의 작품은 '터번을 두른 소녀' 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역시, 해석하기 나름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의 어떤 아름다운 부정, 절제, 연민의 정을 보고 있자면 왕가위의 '화양연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최근 열린 부산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한 왕가위의 신작 '2046' 이 화양연화의 연작이라고 하니 그도 꽤 볼만하겠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 터번을 두른 소녀]



[화가의 아틀리에]
2004/10/10 20:11 2004/10/10 20:11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