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 당신이나 나나 살아봐야 한 10년, 15년 살라나.. 그러니 미국쇠고기 먹고 안먹고 우리 한테 뭐가 중요해, 우리 자식들하고 손주들한테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야, 광우병은 10년 넘어서야 발병한다자나, 그러니 당신들 안먹는거 하곤 아무 상관 없다고 했어, 암튼 미국산 쇠고기는 들어오면 안돼"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칼국수를 드시고 오신 내 어머니 얘기다. 내 어머니는 한나라당 모 의원 여성후원회 회장으로 선거 개표날이면 한나라당 지역구 사무실 맨 앞자리에서 개표 상황을 시청하신다. 어머니와 나는 노무현정부 때부터 정치적으로 앙숙이다. 나는 노무현을 지지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머니는 나를 '노빠' 로 아셨다. 노빠, 당시 나로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정체성이었기에 시시콜콜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성토했지만 어머니는 노무현의 막말을 안다리 걸어 노빠로 규정된 나를 넘기려 안간힘이셨다. 그래도 어디서 노빠는 빨갱이라고 얘기하는 자리에서 당신도 같이 노빠는 빨갱이라고 얘기하시진 못하셨단다. 그렇게 되면 아들이 빨갱이가 되고 아직 당신들의 기억에 빨갱이는 노빠로 쉽게 규정 내리기 힘든 어떤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빨갱이가 될 수 없는 사회적 계급 속에 빨갱이가 되려고 노력중인 종족 쯤으로 치부하고 산다.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지금의 이념이나 정치성향에 관계 없이 전쟁과 남한 사회의 스팩타클한 정치적 현상을 모두 겪은 세대에게 아직은 그날의 가난과 두려움이 남아 있고 그것을 오늘날의 신자유주의가 깨끗이 보상해주지도 못한다. 우리는 어쩌면 외적 가난과 두려움에서 조금은 비켜서 있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내적 가난과 두려움 때문에 항상 불안한 분열증과 싸우고 있다. 광우병이 우려 되는 미국산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은 그러한 내적 증후를 외적 실체로 승화시킨 강력한 사회적 현상이다. 역사가 중대하게 기록할 이 현상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여전히 정치를 내세우고 데모꾼들의 배후를 싸잡아 5공 때처럼 린치를 걸 태세인데다가 뉴라이트 계열 조직과 극우보수주의자들이 드디어 빨갱이론을 내세워 촛불의 빨감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주의자이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며 이명박을 찍었던 세대일지라도 해방전후 한국 사회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었던 순수한 세대는 이 문제를 빨갱이나 정치의 문제로 절대 인식하지 않는다. 어려운 시대에 자식을 온몸으로 지키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지금의 순수한 보수 세대들은 이 문제를 자식을 지키는 일로 생각한다. 아무리 이명박을 지지해도 자식들보다 지지해줄 수 없는 노릇인 것이 바로 이 광우병 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문제라는 것을 너무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촛불을 빨갱이로 물아 부치는 일부 보수주의자들을 이 순수한 보수주의자들은 '니들은 자식 안지키냐' 라는 한마디로 물리친다. 미국산쇠고기 문제는 윗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고 반응하는 조건 반사가 아닌 것이다.

"어머니, 이명박이 조금만 잘해서 경제가 살아나고 정치를 조금만 세심하게 잘 하고 물러나면 다음 타자인 김문수, 원희룡, 오세훈이 나와서 또 집권할까 봐 나는 그게 더 두려워"
"잘해야 그런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인데..."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못했다. 어머니도 그런 좋은 세상이 오려면 이명박이 잘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미덥지 못하신 듯 말끝이 먹힌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0년, 15년 밖에 못 사실 세대나 그 보다 더 살아 이 사회를 이롭게 끌어 갈 모든 세대가 다같이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얘기하는 중이다.

2008/06/05 18:03 2008/06/05 18:03
DrunkenSTAR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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