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할 대선구도

2007/11/23 18:26 / 생각
단순히 볼세비키 무력 혁명 쯤으로 폄하되는 러시아 혁명은 사실 가장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된 무혈 혁명에 가깝다. 혁명은 하나의 파괴의지와 하나의 건설의지로 자의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혁명의 자의식은 무엇보다 다수의 민중이 민주적 결정을 하기 위해 동의와 비판의 역사적 동력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사나운 에너지가 되거나 해프닝이 된다. 혁명은 분명히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의지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현재의 어떤 사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정치적 연설과 정책 그리고 읽을 거리에 대한 놀라운 집착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공화적 대의 정치에서 선거는 제도적인 혁명에 가깝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의지 뿐만 아니라 정치 조직적 에너지와 사회 전반의 담론이 집중되어 폭발하기 때문이다. 사실 OECD 가입국으로 사회 깊숙히 세계화가 점진하고 있는 나라에서 잘 살기 위해 주식을 하고 부동산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혼자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 남으려는 시도는 완전한 시대 착오이다. 장기적으로 개별 자본은 집적된 자본으로 이동하고 단위 노동력을 가진 대게의 민중은 잘 살기 위해 노력했던 추억만이 남을 뿐이기 때문이다. 잘 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물론 자신의 생각도 바꿔야 하지만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왜, 노력했는데 못사는가? 제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는 현대 정치에서 그나마 합리적인 제도 개혁인 셈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오늘날 저항해야 하는 것은 군부독재나 파시즘이 아니라 자본이라고 계몽하는 이유가 독재자도 언젠가는 죽는지라 한계가 있지만 자본은 한계도 물리적 임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잘 살라는 유혹으로 인간의 영혼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고 기생하며 정치의 폭발적 증후가 시작되는 선거에도 예외 없이 흡혈한다. 잘 살려면 시스템, 즉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 물론 잘 사는 것은 모두 굉장히 잘 사는 말도 안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모두 조금씩 잘 사는 체제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혁명을 누가 꿈꾸고 있는지 놀라운 집중력으로 살피지 않고서는 자본과 자본의 이익에 투철한 프로파간다와 진정성을 구별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구별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대선 구도는 차선도 아닌 차악의 선택이 당연시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공분해야 할 참담함이다. 온갖 범죄의 지명수배자들이 나와바리를 놓고 패싸움을 벌이는 구도에서 유권자는 선거법의 정신적 구속으로 인해 조난 신호조차 보낼 수 없다. 지지와 비판을 공유할 수 없는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로 인해 유권자의 모든 권리는 선거일의 한표로 요약되어 버렸다. 유권자가 권리의 보유자가 아닌 인간으로 서 투영되어야 할 교양이나 태도 따위가 개인 문제로 치부되면서 우리는 시스템을 바꿀 현실적 기회를 잃어 버리고 있다. BBK 와 이명박만 남아 있는 이러한 선거는 한국 정치의 수치다. 이런 선거를 치뤄봤자 어떤 합당한 결과나 잘 살 수 있는 환경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민주화를 가장한 반민주주의 세력에 패배했고 부패의 순환고리에 지쳤다. 혁명은 커녕 공멸할 선거만 남았다.
2007/11/23 18:26 2007/11/23 18:26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Trackback URL : http://drunkenstar.x-y.net/tt/trackback/542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 Prev : 1 : ... 92 : 93 : 94 : 95 : 96 : 97 : 98 : 99 : 100 : ... 47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