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배반

2007/04/07 17:33 / 생각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존재에 대한 분열적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성(性)과 관계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은 치기어린 시절의 열병으로 앓고 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는 어디로 부터 왔는가? 라는 철학적 자극에 감흥 받지 못하는 대게의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로 부터 보편적 사고의 협소함을 시작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과 여성, 가족과 학교의 일원으로서의 위치, 사회적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신분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즉 정체성의 발현은 양심과 사고로 부터 나오지 않고 다분히 구조안에서 이루지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조인 자본주의, 실용주의, 물질주의는 정체성을 발현하고 실현하는데 있어서 인간 스스로 통제 해야 하는 개별적 가치를 사회구조적인 집합적 가치로 지향하게끔 만들고 있다. 즉 스스로의 자주성, 자유, 존엄성, 창조성을 근거해 그리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되는 마음의 소리로 부터 정체성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것, 대중이 합의하고 있는 것에 묻어서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곤 한다. 불해이도 우리의 사회는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는 핵, 그로 인해 개인이 자치할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가 아니라 고전 자본주의를 넘어 신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 자체라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번번히 조롱당한다. 개별적이며 보편적 인간 관계는 시장 가치적 관계로 전환되고 대게의 삶의 영역은 창조적 가치나 인간성을 부여 받지 못한체 공급과 수요의 법칙과 같은 가격이 형성되곤 한다. 행복이란 근본적인 가치는 그 가격이 얼마냐에 따라서 정체성을 확보한다. 인간 관계는 이익 관계로서 반드시 주고 받는 가격의 균등을 이루어야 비로서 형성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신념이나 양심을 통한 행위는 종종 그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점에서 냉소된다.

사람들은 자본의 양으로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파악하는데는 익숙하지만, 정신적 존엄이나 인간적 예의로서 서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는 서툴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은 실용성과 효용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개인의 정체성도 유용한지, 자본의 축적에 이로움이 있는지 편리한지 등으로 그 태도를 바꾸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윤리적인 면에도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익 관계인 인간 관계, 등가의 반대급부를 지녀야 움직이는 사회구조에서 발생하는 주장이나 신념 따위들은 자본의 효과나 신분적 성공과 일치할 경우에는 참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모두 거짓이 된다.

이러한 관계를 모순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사회일 수록 홍세화 선생의 말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배반하게 된다. 노동자이면서 자본가의 입장에 동의하고 개인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 하는 생각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러한 사회' 에서 스스로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회가 온통 현재의 자신을 규정하고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관심이 현재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며, 역사적 가치로 인식되어 온 플랫폼, 즉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정립될 수 있는 가치는 없다고 미리 단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스타벅스적 삶에서 상품으로부터 스스로를 규정해야 하는 스핑크스적 질문이 오늘날의 정체성이라고 한다. 국가의 운명이 아닌 개인의 운명을 가늠하게 하는 현안으로서 한미 FTA 에 대한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들이 미국적 삶을 통해 사고를 줄이고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만 파악하면 그만이라는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존재를 부정하고 미래가치에 대한 막연한 가능성에 집착하는 사회일수록 정신적 빈곤함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정체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는 사회에서 대중의 집단적 의견은 그렇게 되고 싶은 막연한 희망사항이거나 철없는 자부심 같은 것이다. '우리 국민의 위대한 자신감' 같은 정치조작에 매몰된 정체성을 들어 내는 여론 따위는 여전히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악랄한 다수결이며 민주주의의 퇴보를 의미한다. 모욕을 당한 욕망도, 혁신 없는 리더쉽과 가격이 매겨진 행복에 대해 저항 할 줄 모르는 정체성으로 무장되고 있는 한국사회는 루쉰의 아큐들이 망령으로 떠도는 사회일 뿐이다.

2007/04/07 17:33 2007/04/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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