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좋은 노래만으로 드림걸즈의 천박한 상업주의와 성급하게 봉합해버리는 화해 무드를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랑루즈 이후에 OST 욕심이 생겼다는 점과 트럼펫이야 말로 있을지도 모를 내 음악적 감수성이나 비주얼한 장치면에서 그나마 그럴싸하게 들어 맞는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다스리기 위해 거들먹거리는 가족이란 테마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실, 가족이란 관계는 형식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러한 형식안에서 혈연이나 가족간의 사랑 따위의 내용은 차라리 탄압에 가깝다. 가족이란 관계는 모두가 그럴 것이란 고리타분한 정의가 아니라, 어쩌면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적 형식이고 그 형식안에서 개인의 상실을 강제한다는 염연한 현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볼모로 사회적 관계마저 가족의 테마로 묶으려는 시도는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상업적 필요에 의한, 다루기 쉬운 조직속의 개인으로 존재를 약화시키려는 악랄함을 목격하게 한다. 드림걸즈의 커티스의 역할이 대변하듯 이러한 악랄함을 자행하는 남성이라는 집단이 오랜 세월동안 마치 성적 자부심인냥 취급해왔던 가부장의 의미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밀접하게 결탁해왔다. 돈이나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한 가장의 측은함을 위로하기 전에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자부심을 부여 잡고 온갖 타협들과 타협했던 패배주의를 질책 받아야 옳다. 드림걸즈의 멋드러진 흑인 음악이 백인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토대로 흑인들의 꿈을 마치 백인 우월 사회와의 진출인양, 또는 흑인 음악의 저항성을 들먹이는 태도는 옳지 않다. 사실, 드림걸즈에서 음악을 빼고, 카리스마가 가신 비욘세의 아름다움을 빼면 차, 포 땐 장기판처럼 긴장감이란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성공한 나쁜놈인 커티스를 통해 가족과 상업주의가 긴밀히 협작하는 문제적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걸즈가 드림을 실현하는 영화적 시나리오를 벗어나 커티스의 이런 태도는 오늘날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당한 사람이라도 나중에 살살 달래 주면 언제든지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꿈을 실현하는 사회란 참으로 천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성공하고 싶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돈의 양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드림걸즈의 메세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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