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에서 강의를 한게 겨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동시대를 살면서 언제나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그것이 무엇이냐는 개념적 논리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전형적 담론의 방식조차 수구적인 것으로 일단 미뤄두는 사람들이 사이버 꼬뮨을 건설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멋진 생각을 해내버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두고두고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여름휴가마저 투자하고 싶게 만든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일반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들이 내는 논평의 줄거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될 수 있는 한마디 슬로건일 수도 있다.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박원순 변호사께서 만드신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라는 멋진 말이 회원카드에서 10년동안 잠자고 있었던 케이스만으로도 그동안 참여연대로 대변되는 시민단체가 정작 시민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해왔고,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딘지 감시하고 대안을 찾아내며 세계를 바꿔왔는지 알리는 일에 소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중동과 같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들을 통해 시민단체에 시민이 있는가? 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손쓸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멍하니 바라봐야만 하고 괜한 소주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 고작 대응이었다면 대응이었다. 굳이 대응이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알리지 못했을까? 라는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였으며 그리하여 오늘 모임의 담론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한 전략의 방식이 아닌 방법에 대한 방식은 다시금 생각해볼 꺼리다.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라는 곳이 고작 만명의 회원이라는 입 벌어지는 사실은 고사하고 만명의 개별적인 회원의, 개별적인 꿈을 평등한 공간에서 내보일 수 있게 하고 공평하게 사유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크다 못해 거대한 문제다. 여기서의 해결 방식은 일반기업들의 일반적인 홍보 방식에서 부터 출발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기존 매체를 이용하고 매스적으로 퍼트리는 방식은 담론도 함께 꾸는 꿈도 아니다. 주입이 아닌 담론이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더 다양한 세계와 생각들을 공유하게 하는 공간, 즉 경험의 공간을 통해 알림과 전달을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 나의 주장이다. 계급적으로 응당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 진보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 즉 담론의 형성 방식에서 오늘날 가장 저렴하고 파괴적인 방식은 역시 온라인이다.
진중권씨가 논객으로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온라인의 저급한 파괴성과 집단 권력의 저열함 때문이었겠으나, 아직도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해야 하고 현장을 지켜야 하는 신념어린 활동가들에게 온라인은 하나의 희망일 수 있다. 더 이상 모르는 사람들로 부터 자신들의 활동이 폄하되는 일이 없고, 솔직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사회악의 존재인양 취급되는 모양을 더 이상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막사이사이상 정도 수상한 박원순 변호사님이나 진중권씨 정도면 모를까, 알려야 하는 문제는 너무도 시급한 사안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알려야 된다는 관념에 지나치게 편집될 필요는 없다. 주체는 있되, 주도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주도하려고 하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안그래도 조금씩 전진하기 조차 힘겨운 마당에 담론까지 주도하려면 매분초가 극기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도 아니다. 소통의 공간이 구체성을 띄어야 했던 과거의 소통은 피아를 확인하는 것조차 많은 시간과 이동이 필요했다. 온라인에서 진보는 널려 있다. 그들 스스로 서로 알게 하면 된다. 거기에서 참여연대의 주도는 마쳐야 한다. 어차피 서로를 확인한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이고 그들이 함께 꾸는 꿈은 참여연대가 고민한 세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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