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과 지식인

2006/06/30 16:45 / 생각

지식인의 지식이 세상의 객관적 인식론과 지식인 자신의 주관적 관념론의 총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보관 개념으로 한정되어 있을 때, 지식인에게 이념이나 제도가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지식을 보관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지식인이 사회의 문제에 한정적으로 접근할 때, 그리고 최근 수정주의? 계량주의로 인식되는 근본지향적 지식의 역할이 진보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타협점으로 수입된다면 역시 보관하는 개념에서 한발자국도 진보하지 않은 것과 같다. 요즘의 지식인들이 항쟁의 역사를 되풀이 하자는 선동을 하지는 않지만, 현장성 있는 생생한 참여는 불구하더라도 저항의 제스쳐마저 립싱크로 대신하는 심심치 않은 현상은 역시 진보는 그 좌적인 생리상 섬세하고 섬세한 논리 정연으로 자멸하고 마는 역사만은 온전할 수 있겠다 싶다. 이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자멸, 공멸에 가까운 정책 입안은 그 비판거리에서 한참을 빗겨나간 사안이라 볼 수 있다. 어찌됐던 수많은 지식인과 수백, 수천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의 정책에 대해서 공청하고 토론하고, 깃발과 함께 저항을 일삼고 있음에도 사회의 현안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이른바 풀뿌리 지식인의 산실인 대학은 정치적 언론 플레이와 부당함을 상식으로 여기는 비겁함을 소실점으로 삼는 분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 정계 개편의 서막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그들만의 정치공학은 혹독한 선거 결과를 견디는 그들만의 무기가 되었을 법도 하다. 한나라당의 치졸한 법안 연계 처리의 작태는 입에 담다가도 토해 낼 역겨움이지만, 토양을 보고 씨를 뿌렸어야 했을 노무현 대통령과 그 일당들이 정권을 통해 추구한 변질의 시대는 다른 토양을 다른 판을 짜기도 힘들게 만들었다. 이 지점에서 다른 토양, 다른 판이 될 수 있는 지식인의 산실에 매우 주목할만한 정치적 사안은 사학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이 교육 전반의 개혁을 가져올리 만무한데다가, 사학이 이를 통해 투명한 인사, 회계는 물론이고 교육이 인간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로써의 다양성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또한 의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이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성을 내포한다. 의문이 있다는 것은 현재의 부정으로 말미암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정계 개편의 서막은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니다. 불행이도 그는 이미 그 포지션의 유지를 위한 동상에 불과하다, 즉 그는 불신임 되었다. 정계든 지식인의 토양이든 개편의 꼭두서니에 사학법이 서 있다고 보는 것은 정권이 말한 개혁과 우파 야당이 말한 보수가 그 지점에서 가장 첨예하기 때문이다. 저 멀리 있는 그들이 얘기하는 정치공학적 개편은 그 맨끝에 서 있는 사학법에 손을 대느냐 마느냐에 있는 것이다.

사학법 개정안의 통과로 동국대 강정구 교수나 강남대 이찬수 교수 처럼 천부당만부당한 지성의 후퇴가 갑자기 전진의 깃발을 찬란히 휘날리리 없겠지만, 최소한 그 교수들이 당한 봉변을 판단하는데 누가 비겁하고 누가 반지성적이며 누가 반사회적인지 가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해본다. 물론, 법을 지키며 개혁의 요구에 노력하는 사학에 대해 그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공동체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겠다는 교과서를 더듬거릴 시간 조차 없다. 우파의 속절 없는 뭇매에 장사가 되지 못한 사춘기인 좌파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결국 다음 대선까지로 한정된다. 여전히 최장집 교수의 정당정치에 대한 현실감각이 이를테면 더 천천히 바꿔가기 식의 섬세한 논리정연보다 상쾌한 이유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현안적인 한미 FTA 에 찬성하고 반공주의 같은 편협한 사고의 매몰이 주체적 지성에 반동적이라는 지식도 아닌 역사의식을 숱한 지식인들이 결국 모른체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단지 비겁할 뿐이다. 비겁은 권력을 숭배하며 기생하는 것. 정권을 회피할 줄 모르는 비겁이라는 지식인의 반지성은 그 권력이 추구하는 이념이 자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역시 관계가 없다. 남은 시간은 2년이다. 권력이 과연 제대로된 좌파 사회주의로 바뀌게 된다면 그 반지성적 지식인들의 청산이나 뼈를 통해 요구 받을 혁신은 권력의 입장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어차피 그들은 구체적인 사안에 구체적인 대응과 구체적인 진실을 알릴 지식인도 아닌데다가, 진정한 사회적 책임은 모른체 하고 그들이 숭배하는 이사장의 자본이나 예수의 불관용과 편파에 종사하는 대중의 맨끝에 선 자들일 뿐이다.

그 반대편 맨끝에 사학법이 있다. 실은 국가보안법도 동무를 하고 서 있어야 되는데, 그 맨끝에 선 자의 가슴 시림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이 좌파의 할 일이다. 반은 좌파라고 주장하는 좌파신자유주의자들에게도 당면과제로 인식될지, 정계 개편을 하려는 것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2006/06/30 16:45 2006/06/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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