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가 아무리 시간 혁명을 주도하고, 에어버스 A380 이 무려 555명에 달하는 손님을 한꺼번에 유럽과 미주로 실어 나른다 해도 다른 곳의 일은 다른 곳의 일이 됩니다. 적당한 이기심은 나한테, 내 집에서, 내 식구한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면 그 시공간이 어찌됐든 내일처럼 간주해주지는 않지요. 이기심을 적당히 접고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다 보면, 이렇게 바쁜 세상에 네 앞가림이나 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목하 토익과 고시에 매달린 학생들, 염려는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2월27일 단의원이 울고불고 저항해도 어쩔수 없었던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시끄럽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요즘 학생들 조용합니다.조용한 걸 보면, 내일이 아니라는 도그마가 팽배한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한 대기업이 특정 학교 학생들 뽑지 않겠다(K대학교 던가요?)루머를 흘리면 요즘 학생들 금새 풀이 죽습니다.(기업이 학문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취업이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그렇지요, 생존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이야 말로 그대들의 생존과 직결하는 법적 장치인데도 내일처럼 여기지는 않는가 봅니다. 설마, 토익과 고시에 열심히 매달린 본인들이 비정규직은 되지 않을 거라 근거 없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학생들의 저항을 보며, 합리적 관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투쟁적 관심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민주주의의 의식과 행동의 선두에는 실천지식인으로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엔 기업논리를 강조하는 짝퉁 개혁진보세력들이 강철대오를 짜 놓았습니다. 그 대오에는 통계적 방식의 진보, 합법성을 가장한 기득권의 수성이 있을 뿐, 노동의 신성함은 없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의식을 배우지 않나 봅니다. 의식은 고전, 토익은 미래가 된 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천박한 무리들이 사회와 제도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상업주의의 중금속이 이제 천천히 학생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을 중독시키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한 성찰은 하지 않고 '돈이나 벌지'라며 체념을 하고 맙니다.
우리의 비정규직법안은 지금 학생들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취업준비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자신이 무엇인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사고해보지 않고 제도권으로 쓰며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자본교환적 피의 수혈 입니다. 그것도 2년 단위로 쪼개서 말입니다. (정체성은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록 정체성과는 멀어집니다.)
그러한 비정규직법안이 날치기로 통과 되어도 전혀 불쾌함 없이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기성세대의 자발적 복종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썩었습니다. KTX 승무원의 파업으로 왜 내가 불편해야 하는지 푸념하는 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대통령이 나서서 제도며 인프라를 왜곡해가며 인간성을 실추해 놓고 자신감 운운하는 반 칸트적인 선언을 일삼는 사회에서 특별히 깨우쳐야 하는 의식은 기대하지 못할지언정, 현안을 제대로 보는 교양 정도는 갖추고 나이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목하 토익과 고시에 매달린 학생들, 염려는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2월27일 단의원이 울고불고 저항해도 어쩔수 없었던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시끄럽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요즘 학생들 조용합니다.조용한 걸 보면, 내일이 아니라는 도그마가 팽배한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한 대기업이 특정 학교 학생들 뽑지 않겠다(K대학교 던가요?)루머를 흘리면 요즘 학생들 금새 풀이 죽습니다.(기업이 학문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취업이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그렇지요, 생존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이야 말로 그대들의 생존과 직결하는 법적 장치인데도 내일처럼 여기지는 않는가 봅니다. 설마, 토익과 고시에 열심히 매달린 본인들이 비정규직은 되지 않을 거라 근거 없는 기대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학생들의 저항을 보며, 합리적 관리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투쟁적 관심이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합니다. 민주주의의 의식과 행동의 선두에는 실천지식인으로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엔 기업논리를 강조하는 짝퉁 개혁진보세력들이 강철대오를 짜 놓았습니다. 그 대오에는 통계적 방식의 진보, 합법성을 가장한 기득권의 수성이 있을 뿐, 노동의 신성함은 없습니다.
이제 학생들은 의식을 배우지 않나 봅니다. 의식은 고전, 토익은 미래가 된 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천박한 무리들이 사회와 제도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상업주의의 중금속이 이제 천천히 학생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을 중독시키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한 성찰은 하지 않고 '돈이나 벌지'라며 체념을 하고 맙니다.
우리의 비정규직법안은 지금 학생들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취업준비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자신이 무엇인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사고해보지 않고 제도권으로 쓰며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자본교환적 피의 수혈 입니다. 그것도 2년 단위로 쪼개서 말입니다. (정체성은 사회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록 정체성과는 멀어집니다.)
그러한 비정규직법안이 날치기로 통과 되어도 전혀 불쾌함 없이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기성세대의 자발적 복종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썩었습니다. KTX 승무원의 파업으로 왜 내가 불편해야 하는지 푸념하는 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대통령이 나서서 제도며 인프라를 왜곡해가며 인간성을 실추해 놓고 자신감 운운하는 반 칸트적인 선언을 일삼는 사회에서 특별히 깨우쳐야 하는 의식은 기대하지 못할지언정, 현안을 제대로 보는 교양 정도는 갖추고 나이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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