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다

2006/02/14 22:49 / 분류없음
칸트의 형식미학은 몬드리안의 대상의 본질적 구성과 칸딘스키의 대상의 분해의 유희를 낳았다.
하지만, 오늘 서울은 아름다움의 미학을 견적화시켜 추정하는 계량주의 미학이 창궐하고 있다. 서울은 아름다움을 대하는 순간 쪼개고 분류하여 아름다움에 투입한 성분과 각도를 분석하고 곧바로 각 분류별로 비교 가능한 견적을 계산하는 미학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 시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젊은 것이 아름답고 그래서 더 젊어져야만 하는 필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햄릿 처럼 껍질을 깨고 자기를 포기하여 다른 것으로 변화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서울은 더 젊은 피부에 열광하고, 더 젊은 피를 숭배한다.
따라서, 서울은 진보적이다.
따라서, 규범적으로 받아 들여야만 하는 생김새를 부정한다. 철학과 관계하고 있는 어떠한 진리에 대해, 그에 대한 지배적이고 특정한 관념에 투쟁할 수 있는 것은 그 내용을 담은 형식이 우연적이든, 필연적이든 변하거나 깨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에선 사랑하지 않는 것은 범죄가 되지 않지만, 젊지 않으면 범죄가 된다.


젊은 서울은 어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된 어른이 없다. 황아무개씨는 큰 사기일 수록 짜릿함을, 조아무개씨는 전쟁으로써의 쏙아냄의 미학을, 전아무개씨는 파쇼와 고문의 함수관계에 의한 현실적용의 가능성을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젊고 변화를 추구하는 조선일보 무리가 싱싱하게 전달해준다.
어찌나 싱싱한지, 형식을 바꾸지 않아도 젊은 사람들이 결혼도 안하고 애도 낳지 않는다. 서울은 계속 젊고, 형식적으로 범죄가 점점 줄어 든다.


젊고 형식적으로 젊어지면서, 젊지 아니한 사람이 줄어든다. 대신에 나이로 젊지 아니한데, 나이가 있어서 허둥지둥 소리를 지르고 논리가 없어서 윽박을 내지르고 원칙이 없어서 손찌검을 하는 늙은 사람들만 넘쳐난다. 하지만, 서울은 이렇게 늙은 사람을 범죄로 다루지 않고 도리어 관대해진다. 규범적으로 늙은 것은 보호해야만 한다는 공허한 예의가 껑충 뛰어 올라 두꺼비처럼 자리 잡는다. 서울에선 형식적으로 젊었다가 급격히 늙어야, 범죄가 되지 않고 예의로 보호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젊지 않아, 점.잖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기회, 인간을 존경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 서울은 존경스러운 점.잖다 로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말 것인가?



[점.잖다] : '몸가짐이 가볍거나 까불지 않고 례절있게 듬직하고 의젓하다. [조선말대백과사전 : 점.잖다(점지 않다, 점다 : 젊다의 옛말, 점지 않다 : 점지 아니하다]
2006/02/14 22:49 2006/02/14 22:49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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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홍반장 2006/02/15 20:13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또 한잔 해야되는디..

    • jack 2006/02/15 22:06  편집/삭제  댓글 주소

      요즘 재미있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외롭다는 건 술이 친구여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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