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과 이사의 발견

2005/03/29 22:56 / 생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그건 오랜 시간이야' 의 범주 안에서 독신자라는 지위로 살다보면 세상에 귀찮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귀찮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님을 알게 되면, 정말 귀찮은 것,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하고 싶은데 안하는 것,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것, 안해도 되는 데 굳이 하는 것, 하고 싶은데 하도 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등등... 비교적 구획이 명확해진다. 말하자면 지몸 하나 간수하는 독신자가 지몸 하나를 이동시키기가 어렵고, 지몸 하나를 간수한다는 생각이 자신을 은연중에 귀족화 시키기 까지 한다.
이사라는 것이 그래서 어렵다. 생각이야 열심으로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서서히 속물이 되어 간다. 지몸 하나의 귀족감에 젖어 자기 관리의 우선 순위나 결정의 계기가 희박해져 가는 것이다. 가정의 윤택, 자식의 교육, 배우자의 상황 등으로 계기와 순위가 있는 이사의 고민을 독신자는 거추장스럽게 생각 할 뿐이다. 그 계기와 순위가 정해질 동안 지지고 볶을 삶의 부대낌이 남루하게 조차 느껴질 뿐이다.
화려한 싱글이란 없다. 화려함이란, 타인이 조망하는 존재의 정의이다. 화려함 속에는 나를 스스로 정의하는 너그러움이란 없다. 대신에 타인이 함부로 규정하는 경박함이 있다. 나를 조망할 수 있는 독신자의 삶이란, 느닷없는 웃음소리도 잠을 깨우는 구들장 구르는 소리도 없는 고독속에서 이루어 지며, 타인의 조망이 끊기고 여운만 남아 있을 때, 비로서 화려함을 때고 지극한 외로움과 우울로 점철되버린다.
싱글에게 화려함이란 경계의 대상이다. 타인에 의한 조망에서 독립적이지 못할 때, 화려함은 외로움과 우울로 부폐한다. 싱글에게 독립적 고독이란, 정신적 유목 상태로 개척의 비타민으로 삶에 작용할 때를 말한다. 결국, 야망을 가진 독신자에게 고독은 투쟁의 대상이다.

투쟁은 고사하고, 이사조차 못가고 망설이다니...
망설임의 이유는 대략 이렇다. 제한된 자본, 고증적 의미의 위치, 반대로 실사구시적 위치, 진일보한 혜택, 기회비용의 감소, 추억에 대한 숙제 등으로 미사여구를 부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이건 오랜 독신 생활로 인해 몸에 밴 '해야 되는데 서글픈 것' 으로 생각된다.
오랜 독신 생활? 이 부분도 나에겐 새롭게 설명되어질 필요가 있다. 추억과 약속이 있으므로 나는 여전히 독신이 아니다. 고독의 연무가 나를 강심으로 끌고 갈 수 없는 날개 같은 것이 있기에, 오랜이란 아득함과 독신이란 표류 때문에 내 발자국을 보려고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이사, 그것은 서글프지만 여전히 고독을 가지고 갈테니 눈물까지 흘릴 청승은 부릴 필요가 없고, 여전히 내가 날아 가고 있는 사랑은 신기하게도 조금의 탈 속에 여전히 찬연하다.
이미 많이 갔다고 부정 했다면 너무나 미안하게도 나에겐 그때처럼, 지금도 소중한 사랑을 모래 주머니에 간직하고 태양으로 나른다. 모래 주머니가 무거워서 날지 못할 것 같으면, 내 이빨을 모두 뽑아 버리면 되지.
어떤 것도 늦지 않았다, 이제 겨우 봄이 시작됐으니까...
2005/03/29 22:56 2005/03/29 22:56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Trackback URL : http://drunkenstar.x-y.net/tt/trackback/186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 Prev : 1 : ... 347 : 348 : 349 : 350 : 351 : 352 : 353 : 354 : 355 : ... 47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