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매체의 발달은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고정관념에 지배되어 있던 말과 글을 해방시켰다. 보조 수단이었던 이미지와 멜로디는 거추장스러운 부연과 서술 없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토대로 계층적 지배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매체의 혁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본능적 순수함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어는 인간과 인간이 가까이 있게 됨으로써 기원되었다. 루소의 '언어기원의 시론'에 의하면 인간의 객체가 적었을 때, 상호간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객체가 늘어나고 비로서 인간과 인간이 하나의 일을 하며 협동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필요하게 된 도구가 언어이다.
협동의 기표이며 기의인 언어의 형태로써 말과 글은 속지적이며 즉시적이다. 협동과 거리의 관계로 언어를 전달하는 수단의 발전이 있었다면, 목적과 파급의 관계로 언어를 표현하는 수단의 지배관계가 변화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장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를테면 상대방에게 고의적인 영향을 의도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말과 글과 이미지와 음악의 지배관계에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간과할 수는 없다.
협동의 장르에서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 형태는 지금까지 정의한 4가지가 복합적으로 결합, 분해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협동을 통해 어떤 산출물을 내는 목적성에 따라서 구별되기도 한다. 영상이나 광고가 목적이라면, 이전에 협동의 언어는 그것을 밑그림하길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의 기원적 속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속지와 즉시의 성질은 산업화의 '블루 웨이브 협동'에서 지식화의 '화이트 웨이브 협업'으로 변화되었어도 변질되지 않고 있다. 매체와 각종 도구의 첨단화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협업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단절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속지성과 즉시성을 가진 말과 글을 대체하진 못하고 있다.
협업 언어는 즉시성이라는 문제가 암묵적으로 고찰되었기 때문에 그 특징이 변하지 않을 수 있었고, 말과 글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과학의 발전이라는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언어의 기원과 달리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객체가 늘어 나고 거리에 대한 복구가 요원해지면서 음성과 텍스트를 나르는 도구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촉매로 산재될 수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 협업의 언어가 특징적일 수 있었던 이유를 제도와 특수제도의 구조로 파악할 수도 있다. 즉, 제도안에서 말과 글은 1차, 2차 집단에서 오랜 세월동안 선택권 없이 인간에게 주입되었지만, 이미지와 음악의 부수적인 언어의 특징은 제도의 특수제도에서 습득되어 질 수 있기 때문에 협업의 언어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시도로 받아 들여지는 말과 글의 주입적 교육의 상태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 선택권이 넓지 않다는 - 전제의 논리로 인해 인간 개개인을 규범적 동원체제로 만들었다는 이론으로 공격할 수 있다. 말과 글의 속지성이 그것인데, 태생적인 지역성으로 인해 모국어의 선택은 자유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 계급적 지위에 의해 다국어의 선택이 극도로 제한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도의 기저로 비판 받을 수 밖에 없다. 박탈된 선택권으로 얻은 말과 글의 즉시성이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에 의해 속지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과 글의 협업 언어는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협업의 궁극적 단계인 산출물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상식적이며 고전적인 도구 임에도 불구하고, 즉시성을 위해 선택권을 상실해야 하며, 속지성을 극복하기 위해 계급투쟁을 해야함을 가르친다.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본능적 순수함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어는 인간과 인간이 가까이 있게 됨으로써 기원되었다. 루소의 '언어기원의 시론'에 의하면 인간의 객체가 적었을 때, 상호간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객체가 늘어나고 비로서 인간과 인간이 하나의 일을 하며 협동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필요하게 된 도구가 언어이다.
협동의 기표이며 기의인 언어의 형태로써 말과 글은 속지적이며 즉시적이다. 협동과 거리의 관계로 언어를 전달하는 수단의 발전이 있었다면, 목적과 파급의 관계로 언어를 표현하는 수단의 지배관계가 변화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장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를테면 상대방에게 고의적인 영향을 의도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말과 글과 이미지와 음악의 지배관계에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간과할 수는 없다.
협동의 장르에서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 형태는 지금까지 정의한 4가지가 복합적으로 결합, 분해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협동을 통해 어떤 산출물을 내는 목적성에 따라서 구별되기도 한다. 영상이나 광고가 목적이라면, 이전에 협동의 언어는 그것을 밑그림하길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의 기원적 속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속지와 즉시의 성질은 산업화의 '블루 웨이브 협동'에서 지식화의 '화이트 웨이브 협업'으로 변화되었어도 변질되지 않고 있다. 매체와 각종 도구의 첨단화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협업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단절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속지성과 즉시성을 가진 말과 글을 대체하진 못하고 있다.
협업 언어는 즉시성이라는 문제가 암묵적으로 고찰되었기 때문에 그 특징이 변하지 않을 수 있었고, 말과 글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과학의 발전이라는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언어의 기원과 달리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객체가 늘어 나고 거리에 대한 복구가 요원해지면서 음성과 텍스트를 나르는 도구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촉매로 산재될 수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 협업의 언어가 특징적일 수 있었던 이유를 제도와 특수제도의 구조로 파악할 수도 있다. 즉, 제도안에서 말과 글은 1차, 2차 집단에서 오랜 세월동안 선택권 없이 인간에게 주입되었지만, 이미지와 음악의 부수적인 언어의 특징은 제도의 특수제도에서 습득되어 질 수 있기 때문에 협업의 언어로 대체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시도로 받아 들여지는 말과 글의 주입적 교육의 상태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 선택권이 넓지 않다는 - 전제의 논리로 인해 인간 개개인을 규범적 동원체제로 만들었다는 이론으로 공격할 수 있다. 말과 글의 속지성이 그것인데, 태생적인 지역성으로 인해 모국어의 선택은 자유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 계급적 지위에 의해 다국어의 선택이 극도로 제한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도의 기저로 비판 받을 수 밖에 없다. 박탈된 선택권으로 얻은 말과 글의 즉시성이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에 의해 속지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과 글의 협업 언어는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협업의 궁극적 단계인 산출물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상식적이며 고전적인 도구 임에도 불구하고, 즉시성을 위해 선택권을 상실해야 하며, 속지성을 극복하기 위해 계급투쟁을 해야함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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