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2005/03/18 18:02 / 생활
담배 22개비, 맥심모카커피 5잔, 아침햇살 1병, 카페테리아 점심 3,200원, 택시비 8,900원, 가끔 소주 2병, 내 일상을 이루는 타일들은 이런식으로 숫자와 짝을 이룬다. 숫자는 그것들의 어떤 범위나 가치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일상의 숫자들은 시간과 편린을 의미한다. 시청앞 잔디광장이 보이는 옥상에서 담배 22개비를 소모하는 시간동안, 방금 잔디를 스치고 솓아 오른 바람속에 사람들이 흘려놓은 수천개의 눈물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택시비 8,900원을 지불하면 30분정도 눈에 촛점을 없애고 너덜너덜해진 네온사인에 구부정해진 세월을 널어 놓을 수 있다. 나는 일상의 같은 타일 위에서 기어다니는 도마뱀 같아 보이지만, 에셔의 상승원리의 판화처럼 도마뱀에서 개구리로 개구리에서 비둘기로 매일매일 다르다.
일탈이란, 사소함을 깨는 것. 사소함은 일상의 타일, 타일을 깨는 일은 때론 목숨의 담을 넘을 수도 있다. 담배 22개비를 깨고 살았을 때, 그것이 그리워 길 건너에 서 있는 공중전화에서도 그리워, 그리워 통화음이 들릴 것만 같아 후다닥 건너가고픈데 마주 달려오는게 보일리 없다. 그래서 늘상 있는 일은 단지 그것만으로 소통하고, 그 안에서 사념없는 노동을 하고 간결한 성공만 있기를 꿈꾼다. 욕심이 지나친 윤택을 만들지 않고, 일탈이 목숨을 담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 였던 와인바에서 유학을 결심했으나, 나는 그 결심이 상상과 약속의 일탈이란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빨갛게 타오르는 우체통에 귀퉁이가 슬픈 편지를 넣고, 우체부의 자전거가 굴러가는 상상을 오래도록 할 것이다.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았을 편지를 속절 없이 기다리는 일탈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니라고 내팽개치지는 않으련다.
오늘, 담배 22개비를 소모하는 옥상엔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불어오는 바람속에 눈물의 습기가 며칠 전 같지 않다. 지난 몇개월 동안 내 마음에서 마음은 쉬지 못해 어느덧 시체가 되었는데,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엔 묻어 나지 않는다 한다. 춤추던 겨울은 찬물로 몸을 헹구고 감옥에 들었다. 봄이 오면 도마뱀은 꼬리를 끊고 꾸역꾸역 강심으로 사라진다. 봄이 오면 한번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짐승을 위한 노래를 불러야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타일들을 위해서 옹알거리던 짓거리를 도마뱀의 등에 태워야지, 이 녀석들의 꼬리는 당췌! 믿을 수가 없다.
2005/03/18 18:02 2005/03/18 18:02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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