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전문가' 를 '자본주의의 특정 도구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이' 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전문가는 도구 사용의 노하우를 알고 있는 자이며 노하우가 발휘되는 도구는 자본주의에 종속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경쟁이 있는 곳에 전문가가 있다는 말과 같다.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란 입지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의된 도구가 지닌 복잡성과 불연속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구의 전문가가 사상의 전문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도구의 작동원리에 대한 진지한 사상을 가지고 통찰력을 이끌어 내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말한다.
지식인의 통찰력은 복잡한 도구의 사용성이나 자본주의적 생산성과의 연관성이 아니라, 도구의 사용성이 인격의 유지, 공공권리의 보장, 보편적 인간애 등에 어떻게 작용하여 궁극의 사용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촌철의 살인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의 통찰력은 그 사상적 배경이 무엇이기 때문에와 연관이 있다. 이를테면, 한 지식인의 사상이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팽창에 있다면 그의 통찰력은 그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선에서 발휘될 것이다. 우파는 우파, 좌파는 좌파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발휘되는 통찰력이 가장 이상적인 지식인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중도, 양비의 선언은 통찰력과 거리가 멀다.
사상의 가치는 이념 안에서 가장 가치가 있다.
민족적 비난의 대상이 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승조씨는 그 이념 안에서는, 또는 과거 지식인들이 그랬듯 적군의 울타리 안에서는 가치있는 선언으로, 가치있는 지식인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가 그 이념안에서 보여준 통찰력은 통찰력으로써의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어디 가치가 그뿐일까?
그가 주장하는 통찰력은 나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다른 이데올로기, 사상을 가진 사람, 지식인, 또는 양비론자 에게도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진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그의 것보다 훌륭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하는 공공의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이다.
나는 한승조씨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제2의 임라일본부설 같은 그의 주장에 털끝도 동조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적 가치는 그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그렇다하여 표현의 자유조차 부정해서는 안된다. 엥똘레랑스에 대해서 엥똘레랑스로 대응한다는 가치가 이데올로기 안에서 가치가 되고 보편적이며 공공선의 가치가 되려면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 는 전문가의 사용성 노하우에 앞선다. 사상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는 사상에 앞선다. 한승조씨가 우리시대에 매국노, 공공의 적이 된 것은 어떤 사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가에 있을 뿐이다. 한승조씨는 그의 사상을 표현했고 그 사상에 대해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을 것이며, 그는 마땅히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함으로 비난을 견딜 것이다. 그 사상의 적은 엥똘레랑스로 표현 할 것이고 그 자유는 쌍방간에 지켜져야 하는 절대 가치이다.
표현의 자유에도 퀄리티는 있다. 따지자면, 한승조씨는 표현의 자유에서 High quality 였지만, 한승조씨의 주장을 옹호하는 지만원씨의 표현의 자유는 저질이다.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고 지만원에게 조차도 평등하게 부여되는 것은 군부가 광주를 짓밟았기 때문에, 박정희가 국민을 상대로 인격의 상실화를 강요했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성심성의껏 막아줬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군부와 박정희와 미국은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가장 억압하고 간섭하고 있는 세력이었고 세력이다. 그러한 간섭과 억압의 폭력 앞에 굴종하는 노하우에 대한 전문가가 지만원씨라는 것을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되겠다.
'한교수는 국제잡지에 격조 있는 글을 썼습니다.' 한승조씨의 사상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표현의 자유는 지만원씨의 말대로 격조가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표현의 자유가 동반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대다수 Low Quality 의 덧글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이 Low Quality 덧글과 달라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당신은 우파 전문가가 아니라 우파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통찰력은 복잡한 도구의 사용성이나 자본주의적 생산성과의 연관성이 아니라, 도구의 사용성이 인격의 유지, 공공권리의 보장, 보편적 인간애 등에 어떻게 작용하여 궁극의 사용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촌철의 살인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의 통찰력은 그 사상적 배경이 무엇이기 때문에와 연관이 있다. 이를테면, 한 지식인의 사상이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팽창에 있다면 그의 통찰력은 그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선에서 발휘될 것이다. 우파는 우파, 좌파는 좌파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발휘되는 통찰력이 가장 이상적인 지식인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중도, 양비의 선언은 통찰력과 거리가 멀다.
사상의 가치는 이념 안에서 가장 가치가 있다.
민족적 비난의 대상이 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승조씨는 그 이념 안에서는, 또는 과거 지식인들이 그랬듯 적군의 울타리 안에서는 가치있는 선언으로, 가치있는 지식인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가 그 이념안에서 보여준 통찰력은 통찰력으로써의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어디 가치가 그뿐일까?
그가 주장하는 통찰력은 나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다른 이데올로기, 사상을 가진 사람, 지식인, 또는 양비론자 에게도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진 이데올로기와 사상이 그의 것보다 훌륭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하는 공공의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이다.
나는 한승조씨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제2의 임라일본부설 같은 그의 주장에 털끝도 동조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적 가치는 그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그렇다하여 표현의 자유조차 부정해서는 안된다. 엥똘레랑스에 대해서 엥똘레랑스로 대응한다는 가치가 이데올로기 안에서 가치가 되고 보편적이며 공공선의 가치가 되려면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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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에도 퀄리티는 있다. 따지자면, 한승조씨는 표현의 자유에서 High quality 였지만, 한승조씨의 주장을 옹호하는 지만원씨의 표현의 자유는 저질이다.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고 지만원에게 조차도 평등하게 부여되는 것은 군부가 광주를 짓밟았기 때문에, 박정희가 국민을 상대로 인격의 상실화를 강요했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성심성의껏 막아줬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군부와 박정희와 미국은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가장 억압하고 간섭하고 있는 세력이었고 세력이다. 그러한 간섭과 억압의 폭력 앞에 굴종하는 노하우에 대한 전문가가 지만원씨라는 것을 본인만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되겠다.
'한교수는 국제잡지에 격조 있는 글을 썼습니다.' 한승조씨의 사상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표현의 자유는 지만원씨의 말대로 격조가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표현의 자유가 동반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대다수 Low Quality 의 덧글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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