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의 추억

2004/12/30 20:20 / 생각
예비군 동대장은 부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훈련장으로 예비군들을 끌고 다닌다. 수류탄 투척, 수색 매복, 응급조치, 지뢰 등의 훈련장에 예비군이 앉으면 조교들은 떠들고 그들은 졸거나 멍하다. 반대로 사격, 시가지훈련, 진지전술, 종합전술 훈련장에 가면 죽으나 사나 한번씩은 엉거춤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투털투털 불만이다.
늦게 군대를 갔다와서 저절로 늦게 예비군을 마친 나는 훈련장에서 보통 두마디 정도 말을 한다. 출석 체크를 할때, 맡긴 신분증을 찾을 때로 나의 말은 한정 된다.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 질 것 같지만, 전투복을 입고 있을 때는 그렇지가 않다.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유무의미성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관계의 형성은 말을 통해서 재정립 되지만 관계의 욕구가 진작되는 환경이 아니라면 말이란 필요없게 된다.
인간은 본래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는 서로가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가질 수 없을 만큼 떨어져 있는, 그 절대 자유의 공간속에서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따라서 관계가 형성되는 건 척박한 환경속에서 인간과 인간이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서로 말을 해야 하고, 그로인해 말의 유의미성이 나타나며 정치적이며 감성적인 관계가 맺어 지게 된다.
군대는 생과 사의 가장 철학적이며 극단적인 환경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말의 관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제어하는 통제적인 작대기 관계가 있게 된다. 그 혹독한 통제의 시간이 베어 있음을 증명하는 두가지가 예비군 훈련장에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적 두려움을 느낄 때와 군번과 총번을 줄줄이 외고 있을 때다. 전투복을 입고 있는 것은 같지만, 정규 군인과 예비군은 확실히 다른 점이 많다. 훈련의 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 밥도 사먹어야 한다.(동원예비군은 짭밥을 먹지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도 있지만, 그만큼 서로가 뭘 도와서 할만한 일도 없다. 같은 점이라면, 전투복을 입는 순간 체감온도가 10도 떨어진다는 것 정도.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훈련장에서는 대개 남이 하는 얘기를 듣는데, 그 대표적인 남이 예비군 동대장이다. 각 동사무소에 배치되어 해당 동의 예비군을 관리하는 예비역 직업군인인 그들은 우리와 반대로 말이 많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꺼내는 얘기는, 예비군 훈련을 어떻게 하면 안나오는 방법이 없을지 항상 고민하는 예비군들에게 향토 예비군 설치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과 처벌 시 벌금 등에 대한 판사의 권한을 추리하는 것 등이다.
딱히, 훈련을 잘하면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죄(?)로 며칠 나라에 봉사한다는, 사회인으로써는 매우 귀찮은 명목에 부흥이라도 하듯, 동대장은 얘기의 범위를 세상사로 넓혀가기 일쑤다. 그들에게 주적은 여전히 북한이고 운동권 대학생과 진보 언론은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내비친다. 진보는 곧 친북세력이라는 등식의 성립은 그들에게도 절대 수학인 셈이다. 그런 거북스러운 얘기를 듣고 있자면, 까닥까닥 조는 것도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간간히 동대장의 얘기에 동조하는 예비군들이 있는데, 그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에 즉각적으로 끼어들며, 조교들에게 반말과 욕을 일삼는다. 동대장의 주장이 거북한 이들도 있을 테지만, 말은 없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나는 그것에 반대한다.' 라는 개념인데, 그 말이 하기 어려운 건 행여 친북세력이 되어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분실이나, 밀실 같은 곳에 끌려가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움츠리기 때문이다. 법을 정하고 언론을 조정해서 개인의 상상을 조작하여 제대로, 제 사상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유전자를 키우는데는 고작해야 50년이 걸렸고, 예비군 훈련을 통해 반복 학습을 시키는데다가 추억이 되기까지 한다.
2004/12/30 20:20 2004/12/30 20:20
DrunkenSTAR 가 씀 jackrhee@gmail.com.

Trackback URL : http://drunkenstar.x-y.net/tt/trackback/140

  1. 병장 박재필...

    Tracked from HE's NICE 2004/12/31 17:00 Löschung

    입대 "충성!" 내가 6주만에 부모님을 다시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올려지는 거수경례에 스스로 깜짝 놀라야만 했다.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안녕하세요?" 하는 민간식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

  1. Comment RSS : http://drunkenstar.x-y.net/tt/rss/comment/140
  2. jack 2004/12/31 14:40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예비군 갔다 왔어? 12월에 예비군이라니.... 추웠겠군...
    난 집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 봤지롱....

  3. Billy 2004/12/31 14:4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근데 위에 답글...
    default가 jack으로 되어 있는줄도 모르고 썼는데
    지워지지도 않네..
    비밀번호도 입력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야...ㅡ.ㅡ

  4. Jack 2004/12/31 14:5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글쿤, 누가 사칭하나 했더니...ㅡ.ㅡ
    예비군훈련은 끝났지, 지난 10월에...

« Prev : 1 : ... 378 : 379 : 380 : 381 : 382 : 383 : 384 : 385 : 386 : ... 472 : Next »